[2017하반기*함께가는여성] 민우ing_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민우ing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이서(홍문보미) | 여는 민우회 여성노동팀
차별금지법 괴담.
SNS에서 ‘차별금지법’을 검색하면 세간의 다양한 유언비어들을 만날 수 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교사가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는 트윗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처벌받는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역차별이다.”
•삼촌이 이런 말을 했다고 분개하는 트윗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혼이 허용되어 여자들은 남편과 아이를 잃어버린다. 여성단체는 인공임신중절권을 말하기 전에 차별금지법부터 반대해라.”
•스터디 단톡방에 이런 글이 올라와 괴롭다는 하소연 ‘차별금지법은 국민통제법이며 종교탄압법’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했을 때 첫화면을 뒤덮는 문구들도 비슷하다. 주목할 것은 이런 루머들이 교회 커뮤니티를 넘어 지역맘카페 등 친목커뮤니티에도 출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적으로 퍼져나가는 이러한 루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찬반=동성애 찬반의 도식을 만든다. 그 결과, 근거 없는 선정적 문구에 혀를 차는 지각 있는 사람들조차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들만의 이슈’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다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와는 상관없지만’ ‘탄압받는 그들을 위해’ 필요한 일로 여기며 전단지를 받아드는 분들이 있다. 관용의 미덕이 없는 한국사회를 탓하며 제정운동을 응원하는 분들도 있다. 그 마음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용이나 시혜가 아니라 평등이다. 정치의 시작은, 민주주의와 페미니즘의 시작은 평등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평등에 있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평등한 사회를 바라지 않는 이들은 평등을 지연시킬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한때는 그것이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지금은 혐오의 이데올로기를 들고 온다. 공격용 단어를 ‘빨갱이’에서 ‘동성애자’로 바꾸면서,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다진다. 루머와 괴담 속에서 혐오스러운 타자를 발명해내면서 ‘차별’이 몇몇 특수 대상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한다.
그러나 올해 초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재출범 기자회견문에서 밝힌 것처럼, 살아가면서 차별을 받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극소수이다. 남성이 아닌 많은 이들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경험한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은 많은 이들이 학력차별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한두 살 많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다. 설령 운 좋게도 이 모든 차별에서 다 비껴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평등의 가치가 위협받는 세상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다.
십년 째 제정이 좌절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출신학교,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이다. 악의적 루머처럼 한 개인을 처벌하고 잡아 가두는 법이 아니다. 고용이나 교육, 법 집행 과정에서, 주거나 교통과 같은 일상시설을 이용하는 문제에서 차별로 피해 입은 이들을 구제하고 우리 사회 전체가 평등을 실현해가기 위한 법이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을 법으로 없앨 수 있나?”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다보면 “이건 무슨 차별을 금지하는 거예요? 성차별? 장애차별?”이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답하면 다소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한 분은 “이게 실제로 가능한 법인가요? 차별을 어떻게 법으로 없앨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 그렇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모든 차별이 사라질 수 없다. 그러나 차별금지법도 못 만들면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 실패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의지가 과연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고 어떤 분이 말한 적 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겨울 광장에서 그 열망을 목격했고 변화를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차별금지법 제정을 말하자. 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가치이다’라는 기본대원칙에 대한 확인이다.
평등에 예외는 없다
규범적으로 볼 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도 간명하다. 헌법 제11조에 차별금지에 대한 조항이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이며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헌법상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법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의 평등을 말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기득권 세력의 반대 속에 계속 좌절되어 왔다. 최근 차별금지법 토론회장 질의응답시간에 한 청중이 이러한 발언을 했다.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는 어려우니 위험조항은 일단 빼고 가면 어떻겠는가. 통과가 어려운 이슈는 나중에 천천히 하자” 2007년 법무부가 ‘성적지향, 학력, 병력, 가족형태’ 등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려 했던 것도 이런 생각이었다. 그러나 차별하지 않아야 할 자와 차별해도 되는 자를 나누어버린 차별금지법은 이미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차별을 조장하는 법이다. 평등에 예외를 둔다면, 그것은 이미 평등이 아니다.
이제 제정할 때도 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무산되어온 지난 십년은 차별과 혐오가 커져간 시간이기도 하다. 여성, 성소수자, 무슬림, 외국인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도 혐오의 돌을 맞았다. 일베와 극우단체들이 그 선두에서 빛났지만, 그를 방치하고 키워온 국가의 역할이 있다. 유리창이 조금 깨진 채 방치된 자동차는 약탈과 파괴로 급속히 고철이 되어버린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새로운 정부조차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면서 차별을 허용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겨울 광장에서 얻은 가치는 일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최근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또다시 권고하면서, 이 법 제정을 18개월 안에 한국정부가 이행 상황을 보고해야 할 3대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유엔의 최종 견해에서 주목할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 지연에 우려를 표하는 “긴급성(urgency)”에 대한 언급이다. 이에 대해, 국내 114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논평을 내었다. <차별금지법, 이제 제정할 때도 되었다>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나라, 부끄럽다. 계속 외쳐온 슬로건처럼, 평등한 세상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이서(홍문보미)
이름의 뜻은 異曙. 다른 새벽.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