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하반기*함께가는여성] 활동가 다이어리_빙글 빙글 빙글
★활동가 다이어리
빙글 빙글 빙글
은사자(신혜정) |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내게는 나이 차이가 21살 나는 동생이 있다. 그 사실을 통보 받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엄마는 어딘가 민망한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해왔고, 나는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꺅- 소릴 질렀던 거 같다. 그리곤 친구에게 자랑(!)을 했다. “나 동생 태어난대” 친구는 한참 웃다-한껏 비밀인 듯 조심히 이야기 하는 내가 웃겼다고- 축하 해줬고 초음파 사진을 처음 봤을 땐 미리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막내 동생은 정말 12월 24일에 태어나버렸다.
태어나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야 살아 움직이는 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작은 사람이어서 차마 소리도 못 내고 만지지도 못 하고 끙끙 앓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얼마 동안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됐는데 마냥 예뻐하고 애정을 주면 될 줄 알았더니. 아기를 만날 때는 지켜야 할 규칙이 생각보다 많았다. 항상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고, 아무리 귀여워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에게는 뽀뽀를 하면 안 된다.(바이러스에 감염 될 수 있다고 한다.) 아기를 아기 머리 보다 위에서 쳐다보면 안 되고(‘사시’가 될 수 있다는데 근거 있는 이야긴지는 모르겠다.), 잘 때 몸부림을 치다 손톱으로 얼굴을 긁거나 놀랄 수 있어 항상 손싸개를 하고 이불로 팔을 감싸야 했다. 목을 가누지 못 하니 안을 때는 잊지 말고 목을 잘 받쳐야 했고, 2-3시간에 한 번씩 밥을 챙겨줘야 했다. 이 ‘2-3시간’에 새벽이라고 예외는 없었는데 엄마는 자다가 몇 번이나 깨서 밥을 먹이고 재우기를 반복했다. 나와 엄마는 21살 차이가 나는데 딱 나와 막내 동생의 나이 차이만큼이다. 엄마가 지금 내 나이 때 이 모든 것을 해서 나를,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키워냈다는 생각에 22살의 엄마가 안쓰러웠다. 엄마 친구들은 자녀가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엄마더러 “넌 다 키워놔서 좋겠다.” 이런 얘길 종종 하곤 했는데, 웬걸. 새 자식이 태어났으니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막내 동생의 이름을 짓기 위해 엄마 아빠는 나와 남동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는데, 이름을 꼭 내가 주고 싶어 열심히 친구에게 묻고 사전을 들춰보고 검색을 했었다. 내 이름이 특별히 싫진 않았지만 딱히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막내 동생에게는 불리고 싶은 이름, 본인이 좋아할 수 있는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트렌드를 따라가되 의미가 있어야 했고 이름만 듣고도 성별을 알 수 있는 이름은 싫었다. 며칠을 찾아도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었는데 우연히 ‘도담’이란 단어를 알게 됐다. ‘도담하다’라는 형용사는 ‘야무지고 탐스럽다. 도도하고 당차다’라는 뜻을, ‘도담도담’이라는 부사는 ‘어린 아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도도하고 ‘당차다’에 꽂혀서 그리고 무엇보다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라며 ‘도담’이라는 이름을 제출했다. 썩 나쁘지 않았는지 아빠는 여러 후보 중 도담이라는 이름으로 출생 신고를 하고 왔다. 처음에는 이름을 불러도 아무 반응 없던 갓난아기가 “도담”하고 부를 때 그게 본인을 지칭함을 알고 쳐다보다가, “내 이름은 도담이야.” 말하는 어린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종종 장난처럼 “도담, 너 이름 언니가 지어 준 거니까 나중에 이름값 꼭 줘야 돼. 알겠지?” 하면 “나중에 줄게~”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나는 가족을 잘 챙기거나 애정을 자주 표하거나 아무튼, 자식 그 중에서도 딸 역할(이라 여겨지는 것)을 싹싹하게 잘 해내는 타입은 아니다. “딸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여자친구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르다고 ‘느꼈다.’ 하지만 다르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를 괴롭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좋았고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어떤 종류의 정리를 하게 됐는데, 나는 내가 괜찮지만 다른 사람에겐 안 괜찮을 수 있다. 그러니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절대 들켜선 안 된다. 들키면 누구든 나를 떠날 수 있다. 언제나 그 사실을 떠올렸고 가족은 물론이고 관계 맺는 모든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기보단 숨기고, 의견을 내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게 만들기보단 아무 말 않고 흐릿하게 남는 걸 택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혹시 ‘진짜’ 나를 들킬만한 단서를 남기진 않았나 되돌아보는 삶은 많은 에너지가 들었고 그렇지 않은 삶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집과 멀리 떨어진 대학을 선택하여 도망쳐왔고 나를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과 관계 맺으며 마음에 근육을 만들어갔다. 내가 영화 <모아나>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모아나가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바다로 갈 때 엄마에게 들키는 장면이다. 엄마는 몰래 떠나려는 모아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만 아무 말 않고 모아나의 짐을 챙겨준다. 인생의 어떤 순간 그런 지지를 받는 경험은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지지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지지 받는 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도담이에게는 그 순간이 더 빨리, 잦게 찾아오길 바란다. 물론 온전히 혼자 견뎌야 하는 외로움도 있을 거고 그걸 대신 견뎌 줄 수는 없겠지만, 그 감정을 돌파 할 때 곁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가족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도담이가 떠오른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묘한 것이다. 내 인생에 처음부터 있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생각나는 게 신기하고 조금은 어렵다. ‘빙글 빙글 빙글’은 밴드 9와 숫자들의 노래 제목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가사의 어떤 부분에서 도담이가 생각나고 괜히 찡해져서 눈물 한 방울 흘릴 거 같은데 동시에 그런 내가 조금 구리고 ‘꼰대(?) 같은 가족이 되면 안 될 텐데’하며 미래의-하지만 사실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걱정한다. 나는 도담이에게 좋은 가족이기보다 그냥 옆에 있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 뭐, 그냥 그렇다고.
덧. ‘빙글 빙글 빙글’이 실려 있는 ‘빙글빙글’이라는 앨범에는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빙글 빙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같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고 각각 매력이 있으니 아직 들어보지 못하셨다면! 한 번쯤 들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당. 이만 총총.
❚은사자
최애의 지나간 활동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덕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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