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특별칼럼_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특별칼럼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손희정 | <페미니즘 리부트>저자.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반격이 강해지고 있다
2018년 4월 19일. 라운드 테이블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다양한 백래시 사례들이 발표됐다. 여성들은 SNS 프로필 사진에 “Girls Can Do Anything”을 올린 것만으로도 욕을 먹거나 손가락질을 당하고, 여성단체 계정을 팔로우한 것만으로도 회사 대표와 면담을 해야 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든 것이 이유가 되어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페미니즘을 이유로 인권과 노동권,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백래시란 “여성의 진보를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여성이 크게 활보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독립성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증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백래시>의 저자 수전 팔루디는 “자신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현대 여성들의 각별한 노력” 때문에 백래시가 닥쳐온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무기력을 증명한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의 파워를 증명한다.
페미니즘 백래시는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직접적인 해고와 계약해지, 입막음, 따돌림, 폭력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언론의 권위를 빌어 여러 불행의 원인을 페미니즘으로 지목하는 가스라이팅과 페미니즘에 대한 대중문화의 왜곡된 재현도 일종의 백래시라고 하겠다. 이처럼 백래시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부당한 것에 “NO”라고 말하는 여성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좌절의 회로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다. 여성의 빈곤, 불행, 우울증, 외로움 등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불행은 페미니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지, 페미니즘 그 자체 때문은 아니다.
지금 여기 가장 급진적인, 페미니즘
최근 이런 백래시의 광풍 속에서 주목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안티페미협회’에서 들고 나온 “페미니즘은 변종 맑시즘”이라는 피켓이었다. 페미니즘이 맑시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안티페미협회’가 왜 맑시즘을 끌어왔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페미니즘에 ‘빨갱이 낙인’을 찍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급진적인 목소리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2016년 넥슨 사태 때 웹툰과 게임에서 “메갈을 검열하겠다”며 등장한 YES CUT 운동을 기억해보자.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서는 검열에도 찬성할 수 있다는 이런 태도들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라면 페미니즘을 어떻게 수용하는가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분명한 좌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세상을 바꿔온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밀어온 사람들인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우리는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물론 이는 페미니즘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스스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 그 차제다. 그리고 우리는 성찰을 통해서야 비로소 ‘페미니즘이라는 과정’을 지속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페미니즘이 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한다면, 어떤 페미니즘이 체제를 안정화하는데 기여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를 비판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우리가 성찰할 일이 아니다.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략을 잘못 짜서? 행동을 잘못해서? 혹은 잘못 싸웠기 때문에? 아니, 우리가 어떻게 싸웠다고 하더라도 가부장제 사회는 페미니즘에 손가락질을 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백래시의 이유는 우리가 아닌 저들에게 있다. 페미니즘이 가져올 새로운 사회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저들 말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악의적으로 왜곡된 신화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전 팔루디가 강조했던 것처럼 성급하게 여성의 승리, 페미니즘의 승리를 선언하면서 과장하는 전문가와 언론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동료들을 믿으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인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에서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으면서 서로를 확인했던 것처럼 말이다.
온라인으로 수집한 ‘페미니즘 백래시에 대한 반격의 한 마디’를 모아 4월 19일 라운드 테이블에서 영상으로 함께 보았다.
참석자들은 서로의 한 마디에 박수 치고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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