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일] 어느 명예퇴직자가 일을 추억함
어느 명예퇴직자가 일을 추억함
손길선 : 여성노동센터 회원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요즘과 달리 아날로그 시절의 나의 일을 직업=직장이라고 한정했을 때 나의 삶에서 나의 직업=직장은 부모이자 형제이고 친구이며 또한 스승이었다고 표현하면 어떨까. 한마디로 인간관계의 거의 전부였다는 얘긴데 이제 보니 딱하기 그지없는 과잉 몰입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것이다.
20여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했으니 부연할 것도 별반 없는 오늘의 나를 태어나게 한 8할의 바람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간 근무해온 내 직장, 내 직업이었으리라는 것은 알만하지 않은가. 또한 각자 살고 있는 형제나 가끔씩 만나는 친구에 비해 매일같이 만나는 동료들과 나의 일은 내게 부모 형제와 지낸 세월보다 더 오랜 달콤쌉싸름한 추억 거리들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갓 성인이 된 무렵부터 다니기 시작한 직장이니 세상살이의 온갖 쓴맛과 단맛을 가르친 곳도 직장이 아니랴. 기실 장기근속의 노비문서(?)를 불태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같은 명퇴자들은 대개 직장에 대해 밑도 끝도 없이 얄궂은 회한 비스무레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통례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네 미련 많은 정서의 탓이기도 하려니와 최근에 불어닥친 '대책 없이 내몰기' 식의 직장 풍토에 대한 부적응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저간의 이러한 사정에 덧붙여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처세술에 숨죽여 지내온 지난 시간 동안 나 역시 그닥 중뿔난 요령을 터득하지 못했을 것은 불문가지! 그래도 어찌 되었든 마냥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라며 용감히 내 발로 걸어 나왔다면 뭔가 자신의 선택이 과히 나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새로운 미션> 앞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누가 내게 이 길을 가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스스로 부여한 그 '사명' 앞에서 용기 백배하거나 때로는 좌절하면서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결혼을 결심하던 무렵,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나 자신에 속한 두 가지 약속을 요구한 적이 있다. 나의 신앙과 직장생활에 대해 어떤 강제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당시의 내 삶을 지탱해준 신앙과 직업, 두 기둥에 대한 의리 같은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남편이나 자식 그 누구와도 전적으로 공유될 수 없는 개별적 자아에 대한 내용이 그 속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문제되고 있는 일, 이 <...일> 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삶=일'인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일'인가로 나의 삶을 다시금 구성해야 하는 것은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즉 한 가정의 주부로 온전히 돌아와 밥만 하는 것(설사 내가 지금 현재 밥도 제대로 못하는 수준임을 알고 있긴 하더라도)으로는 내 삶을 입증하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말하는 것인데 요즘 유행하는 전문용어로 하자면 직업세계가 담당했던 '사회적 지지'의 결여에 의한 심리적 박탈감을 대체할 무엇인가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기야 성인이 되어 나와 동일한 시간 동안을 살아왔으면서도 어떤 조직이나 어떤 명함 박힌 직책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내 친구는 오히려 이런 나의 돈벌이를 포함한 직업적인 조직이나 무슨 일거리에 대한 귀소본능에 가까운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를 매우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허나 이것은 단순히 생활력이라고 하는 경제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일로써 내 존재를 증명해오는 동안에 얻어진 사회적 지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울타리 습성>일뿐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야생의 대지 위를 유유히 내 식의 걸음걸이와 나만의 템포로 내 오감이 끌리는 곳을 향해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내면의 지지를 퍼 올려 삶의 마르지 않는 동력으로 이끌어 내는 일, 그것이 지금 발등에 떨어진 나의 일이라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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