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모람활짝_오픈 소모임 : 회원공간 집들이
모람활짝
오픈 소모임 : 회원공간 집들이
이편(이지원) |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회원팀
2018년이 끝나간다는 것을 도무지 믿기 어려운 사람.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는데 왜 나만 고인 물…….
모람활짝 코너가 드리는 막간 퀴즈, 행사를 끝마친 활동가를 기분 좋게 만드는 회원의 말은 무엇일까요? 딱 잘라 하나만 꼽을 수는 없겠지만 단연코 빠트릴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이 행사 매년 했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지난 10월 11일 민우회 회원들과 회원의 친구들이 모인 〈오픈소모임 : 회원공간 집들이〉가 끝나고 마주친 회원들마다 빼놓지 않고 덧붙여준 말이기도 합니다. 대체 어떤 행사였기에 참가자 모두 입을 모아 정례화를 강조했는지 그날의 후기를 전해드릴 텐데요. 그 전에 ‘민우회가 이사를 간 것도 아닌데 웬 집들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먼저 짧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시간을 거슬러 때는 2017년, 30주년을 맞은 민우회(별칭 ‘여는’)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회원들이 편하게 쉬다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선뜻 이사를 결정하기에는 주머니가 가벼웠던 슬픈 민우회. 민우회는 상심에 잠겨 사무실을 둘러보던 중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래, 이사를 갈 수 없다면 공간을 만들면 되잖아!’ 그렇게 민우회는 10년 치 자료를 정리하고(영차영차), 책상 사이즈를 줄이고(뚝딱뚝딱), 다섯 개 팀·소의 테이블 배치를 다시하는(으랏차차!) 과정을 거쳐 짜잔, 회원공간을 만들었답니다! 사실 올해 초반만 해도 회원공간 집들이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회원공간을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소박한 자리 정도로 상상되었습니다. ‘집들이’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다들 있으시죠? 두루마리 휴지 선물과 맛있는 음식, 훈훈한 덕담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명색이 민우회 회원공간 집들이에 진부함이 무슨 말이냐며 회원들의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그 덕분에 깨알재미가 넘치는 〈오픈소모임 : 회원공간 집들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프로그램들로 꾸며졌는지 안 볼 수가 없겠죠?
아낌없이 주는 마음, 포틀럭1) 파티!
회원들이 오기 전 공간 구성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포틀럭 파티 음식을 둘 테이블은 이정도 크기면 되겠지?’ 하나 둘 도착한 회원들이 나눠 먹을 음식을 풀어놓기 시작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저는 회원들의 마음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테이블을 가득 채운 치즈와 와인, 샌드위치, 떡볶이, 각종 튀김, 치킨, 피자, 빵, 애플파이, 치즈케이크, 호두파이, etc…….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던가요. ‘우리 동네에서 소문난 떡볶이’, ‘나눠 먹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등등의 이유로 양손에 보따리를 바리바리 챙겨온 회원들의 마음이 담긴 음식은 맛있고, 즐거운 파티의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바자회 취소의 아쉬움을 딛고, 민우야시장!
민우회 회원들이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민우바자회. 올해는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열띤 활동을 펼쳐가기 위한 고민 끝에 아쉽게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활동가도, 회원들도, 민우바자회에서 보물을 발굴하고 싶었던 비회원마저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회원들이 내준 특급 아이디어가 바로 민우야시장이었습니다. 바자회와 다른 점은 회원들이 각자 물건의 판매자가 되어 직접 구매자와 만나는 것이었어요. 회원들이 직접 만든 컵과 엽서, 직접 짠 무지개 담요, 정성스레 포장한 페미니즘 잡지 등 물건을 통해 회원의 시간과 정성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야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평소 만날 기회가 없었던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야말로 민우야시장의 특별한 기억이었습니다.
회심의 메인 코너, 책 경매!
민우회에는 세 개의 독서 소모임이 있습니다. 〈너머〉, 〈순하리〉, 〈여:백〉이 그것인데요, 비슷해 보이지만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있는 이 소모임들이 모여 책 경매를 추진하자던 아이디어가 이 프로그램의 시작이었습니다. 책 경매라고 하니, 자본금이 여유로운 사람이 유리할 것 같다고요? 민우 책 경매는 조금 달랐습니다. 참여자가 한 명씩 앞에 나와 책을 선정한 이유를 말하면 그 책을 원하는 사람들이 손을 들고 책을 원하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책의 원래 주인이 이유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한 명에게 책을 선물하는 방식이었거든요. 어쩌다보니 처음에는 ‘이 책을 원하는 이유’로 시작했던 것이 점점 ‘이 책이 나와 운명인 이유’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회원 숨이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페미니즘 고전, 〈자기만의 방〉을 소개할 때였습니다. 소개가 끝난 뒤 책을 원하는 세 명의 사람이 손을 들어 차례로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자기 차례를 맞은 회원 은하수는 말을 하는 대신 사무실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다들 의아해하고 있던 와중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은하수의 어깨에는 못 보던 가방이 들려 있었습니다. ‘VIRGINIA WOOLF’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인 가방이 말이죠. 저자의 이름을 담은 가방을 맨 채 그 책이 자신의 운명임을 주장한 은하수, 지켜보던 모두가 빵 터짐과 동시에 새로운 책의 주인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사무실 안에 마련된 회원공간 모습
다정함과 재미가 가득했던 〈오픈소모임 : 회원공간 집들이〉, 태풍 때문에 한 번 연기되기까지 했던 이 행사가 마련되기까지 시간과 노력, 아이디어를 아까지 않았던 숨은 주역들이 있었는데요. 바로 회원 참여 기획단 다다다의 회원들입니다. 활동가들의 탄성을 터지게 만들 만큼(“귀여워~!”) 귀여움이 터지는 행사홍보 그림을 그려준 조, 집들이를 방문한 회원 한 명 한 명을 기록하고 이름표를 건네줬던 청오리, 섬세하고 센스 있는 진행으로 매끄러운 행사를 이끌어준 박집사와 안녕, 기획부터 참여까지 든든히 자리를 지켜주었던 라임과 일정상 참여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함께 준비한 미나까지. 민우회 활동 첫 해에 어디선가 들었던, ‘민우회의 활동은 회원들이 만들어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집들이를 마친 회원공간,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어가고자 하는 민우회원들이 있는 한 공부방, 놀이터, 사랑방, 카페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함께여서 즐거운 그 날, 우리 다시 만나요. 꼭이요.
1)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란 미국·유럽에서 보편화된 파티형태로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한 두가지 종류의 식사, 요리를 갖고 와서 함께 즐기는 형태의 파티를 말한다.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각각의 글(텍스트)로 연결됩니다
모람활짝
회원 이야기
문화산책
FOR 유어 세이프 콘텐츠 : 페미니스트 잉여력 발산 코너
활동가다이어리
아홉개의 시선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