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고민하게 된 사연
민우ing
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고민하게 된 사연
은사자(신혜정) |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요즘 즐겨 듣는 노래는 선우정아의 구애 (求愛 )입니다.
“조직문화는 어떻게 바꾸죠?”
상담소에는 종종 이런 전화가 오곤 한다. “성폭력이 가해자, 피해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체 문화를 살펴보고, 바꿔나가고 싶은데 막막합니다. 혹시 민우회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 만드는 법’ 강의를 해주나요?”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페이지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게시되는 상당수 글은 조직문화 이야기다. 권위적인 ‘선배’, 동료와의 관계, 일방적인 소통, 높은 노동 강도, 업무 중 듣게 되는 성차별적인 언사… 누군가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조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 사연을 제보하기도 한다.
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2012) 토론회를 통해 공동체 내부 ‘해결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 성폭력 사건 이후 함께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지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반성폭력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와 필요로 공동체에서 사용되고 있는지 현재를 평가하고 합의를 만들어가고자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2017)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성폭력 사건 해결이 공동체의 경험으로 축적되고 정의로운 해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해온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공동체가 스스로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워크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워크북 만들기 전에 ‘우리’부터 이야기해보자
상담소 활동가 다섯 명이 머릴 맞대고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그래, 할 수 있어!(끄덕끄덕)’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를 어떻게 손에 잡히는 형태로 드러낼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우리부터 이야기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민우회의,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조직문화는 어떤지, 각자 어떤 것을 조직문화라 느끼고 있는지 논의하며 실마리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처음 민우회에 왔을 때 각자 이 공동체를 어떻게 느꼈는지부터 이야기해봤는데, 활동가B는 작은 것들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게 적응이 안 됐다고 했다. 행사를 준비할 때 전시물은 어디 쯤 어떤 각도로 세울지, 간식은 몇 개를 살지, 챙길 준비물 리스트에 ‘청테이프, 스카치 테이프(얇은 거, 두꺼운 거)’ 이런 식으로 작은 부분까지 기록해두는 게 독특했다는 것이다. 활동가R은 총회 평가회의 때 했던 ‘점심 메뉴에 만두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피드백이 다음해 총회 때 반영되어서 ‘평가가 그냥 평가로 그치지 않고 반영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활동가D는 동료가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인지, 주말엔 뭘 했는지 서로의 일상을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관계가 쌓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내부 집담회를 했다고 조직문화를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회의 안건지를 만드는 방법부터 사업 평가 때 어떤 것을 평가하는지, 동료와는 어떻게 친해지는지, 어떤 농담에 웃고 어떤 농담엔 정색하는지,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고 얼마간의 빈도로 하는지, 손님은 어떻게 맞이할지 등 이런 구체적인 장면이 모이고 쌓여 조직문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작은 변화를 읽어내는 것
내부 집담회 이후 11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를 만나 조직문화를 바꿔나가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렵고 고민이 됐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해본 사람의 고민지점을 잘정리해서 워크북에 담아내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조직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작업을 해 본 공동체 구성원을 만났을 때 “구성원 대다수가 페미니즘이라는 큰 방향에 동의했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공동체 리더라고 할 만한 사람이 어느 정도 성평등 감수성이 있던 상황이었다”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막연하게 ‘조직문화는 어떻게 성평등하게 바꿀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다가 조직문화는 (당연하게도) 조직문화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성평등한 감수성을 가질 때, 공동체 구성원이 변할 때 가능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럼 더 문제(?)였다. 도대체, 사람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거지? 이거 애초부터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었던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금세 쫓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 인터뷰 중 한 인터뷰이에게도 질문해버렸다. “많은 조직에서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는데, 왜 변화가 없을까요? 왜 조직문화가 바뀌기 어려울까요?” 인터뷰이는 몇 초간 침묵하다 이렇게 답했다. “저는 0.1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워크북을 만들면서 마음이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았던 건 내심 ‘그런데 이거 한다고 정말 바뀔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이 워크북을 하고 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야 할 텐데, 단번에 변해야 할 텐데’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그렇듯, 한 번에 뒤집힌 듯 보이는 변화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한 번을 만들어내기 위해 쌓여온 ‘0.1’들이 있다. 공동체 안에서 변화를 만들고자 할 때는 함께 하는 동료, 고민을 꺼냈을 때 그것을 혼자만의 고민으로 두지 않고 같이 고민하려는 공동체의 태도, 그리고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또, 작은 변화를 읽어내고, 그 변화를 의미 있게 평가하고, 그 다음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워크북은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_______이/가 직접 만드는 조직문화’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 대신 해줄 수도, 매뉴얼을 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모두가 함께 한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워크북에는 조직문화의 현재를 점검해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앞서 언급한 11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이야기, 구체적으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워크시트, 그리고 참고할 수 있는 다른 공동체의 규칙과 약속문을 실었다.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보다 평등하고 안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지 점검하고 싶다면? 민우회 성폭력상담소(02-739-8858)로 연락주세요!
워크북 실물 보기&신청 >> http://www.womenlink.or.kr/minwoo_actions/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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