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0과 1사이에도 차별은 있다
오늘의 날씨와 시간을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묻고,
유튜브에서 뉴스를 본다.
나에게 맞춤된 콘텐츠와 편리한 기술이 주는
즐거움 이면에 재생산되는 차별이 있다.
뉴미디어 세계는 평등하지 않고,
알고리즘은 중립적이지 않다.
이 세계를 흔드는 질문이 필요하다.
기획
0과 1사이에도 차별은 있다
미몽(강혜란) | 여는 민우회 공동대표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페미니즘 사이에서 갈등하는 페미니스트. 미디어가 주도하는 여론의 왜곡과 성차별주의 확산을 비판하는 것이 취미이자 관심사.
PC통신이 만들어지고 인터넷이 연결되던 정보화 초기, 컴퓨터 속 가상공간(Cyberspace)에서는 현실의 권력관계가 약화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존재하였다. 익명성에 기초해 자유롭게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며 현실의 권력과 물리력이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 국내 PC통신에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온라인 공간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은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젠더관계를 상상하면서 가상공간이 만들어갈 페미니즘 세상에 한껏 들떠 있기도 하였다.
주변화되는 여성의 시선
그러나 대중매체 안에서 소수자의 재현이 실제 해당집단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것처럼, PC통신에도 현실의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남성우월주의자들은 말투나 닉네임으로 포착된 여성 아이디를 대상으로 온라인 성희롱이나 플레이밍(Flaming)1)을 하는 등 현실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맘에 들지 않는 여성의 게시글에는 무더기 욕설을 남기거나 쪽지를 보내는 일도 잦았다. 이러한 공격과 무시, 모욕을 경험한 여성들은 심히 위축되었고 활동을 중단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도 발생하였다. 가해자의 사과를 이끌어낸 사례도 존재하지만, 남성들의 수가 월등하게 많은 온라인공간에서 현실과 다른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자치구에 가까웠던 온라인 공간이 포털 사이트나 게임 등 상업적 공간으로 탈바꿈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수줍은 얼굴과 안짱다리를 한 여성, 능동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남성으로 이분화된 아바타2)는 사업자의 돈벌이를 위해 고정관념과 편견, 혐오를 재생산하였다.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들도 게임의 유형, 인물의 수, 능력치라는 면에서 뚜렷한 성별 차이를 보여주었다. 여성의 이미지는 여성성이 강조되거나 커다란 가슴, 긴 다리 등 성애적 매력만을 부각시키는 기이한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육아나 가사, 외모 가꾸기를 위한 게시판, 블로그, 까페 등을 제외하면 여성이 수적으로나 담론적으로 우세한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된장녀, 김치녀를 운운하며 여성들을 타자화하는 온라인 여성혐오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갔다.
알고리즘을 통한 젠더고정관념 강화
인터넷 이용행태의 구조적 변화는 검색기능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의 영향력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엔진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젠더를 고정불변의 어떤 것으로 만들어가는 성차별주의가 정당화되어 갔다. 뉴미디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었고, 이를 부추기는 선정주의적 접근만이 반복되었다. ‘흑인소녀’를 검색하면 포르노사이트와 성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아름다움’을 검색하면 금발의 백인여성 이미지를 나열했으며, ‘교수스타일’을 치면 중년 남성의 패션만을 드러냄으로써 성차별, 인종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들의 행태가 문제였다.3) 검색엔진 개발자의 고정관념은 검색 알고리즘에 그대로 반영되었고 차별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문제로 지적되기 시작했다.
사실 알고리즘은 ‘초엘리트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상의 복잡한 수학공식일 뿐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자연화된 어떤 것이 아닌 사회적 견제의 대상으로 인지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4)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플랫폼 사업자가 차별을 재생산한다면 이는 사회문제이며 영업의 자유나 비밀로만 간주될 수 없다. 검색결과가 어떤 가치와 지향을 가리키는가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AI시대에는 여성의 관점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한 질문을 더욱 확대해나가야 한다. 여성의 삶을 규정해온 과거의 고정관념 속에 묶어두지 않으려면 말이다.
다시 여성의 목소리를 확장하는 SNS
2000년대 중반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모바일 기반 SNS의 출현은 이미 잠식당한 포털 사이트의 공간을 넘어 여성들이 새로운 영역을 실험하고 자기목소 리를 낼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되었다. 이는 마치 PC통신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강도 높게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던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가 구축하고 방치한 수많은 남성 중심적 공간에서 밀려나기만 하였던 여성들은 SNS라고 하는 새로운 영토에서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
특히 2015년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와 혐오의 거울 ‘메갈리아’의 출현은 정치적 올바름에 갇혀있던 여성들의 출구를 무한 상상하게 만들어주었으며, 여성의 시선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인플루언서들의 출현을 가져왔다. 현재 페미니스트들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도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콘텐츠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SNS플랫폼은 트위터의 경우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페미니즘 활동을 격려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페미니즘 활동에 성차별적 규제를 반복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이러한 편파적 규제와 맞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더 많은 상상과 개입, 연대가 필요한 시대이다.
검색엔진 구글에 ‘교수스타일(Professor style)’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 화면 캡처
1) 인터넷에서 익명성과 개방성을 악용해 누군가를 빈정대거나 인신공격하고 욕설을 퍼붓는 행위(한경 경제용어사전)
2)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여성주의인권위원회, 〈사이버공간의 아바타와 미니미의 성차별성 모니터링〉, 2004
3) 사피야 우모자 노블,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2019
4) 캐쉬 오닐, 〈대량살상수학무기〉, 2017
함께가는 여성 2019 상반기 (228호)
낯설지만 새롭지 않은 뉴미디어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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