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_엄마가 되었다
[2020 상반기-함께가는 여성] 회원이야기
엄마가 되었다
임신의 경험은 여러모로 버거웠다. 몸이 아플 때마다 해결책을 찾고자 수시로 들락거렸던 맘 카페에는 매일 여러 증상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출산뿐이란다. 아기가 출산 예정일을 채워 건강히 태어나길 바랐지만, 유독 힘든 날에는 아기가 빨리 태어나길 바랐다. 내 몸의 무사함과 아기의 건강함을 동시에 바라기란 사뭇 어려운 일이었다.
파트너는 첫 육아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6개월 간 육아휴직을 냈다. 서로 도우며 이 시기를 잘 지내보자고 다짐했건만, 할 일을 공평하게 나누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내가 몸을 회복하며 아기를 먹이는 동안 파트너는 나를 먹였고, 온갖 가사와 강아지 산책을 도맡았다. 우리는 아기의 성장을 함께 기록했는데 그는 종종 하루 동안 내가 얼마큼 수유하는지 ‘정확한’ 수치를 알기 원했다. 하지만 유축할 때도 그날의 컨디션과 이전에 젖을 물렸던 시간에 따라 차이가 났고, 분유와 달리 젖을 물리는 양은 직관적으로 체크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살아온 세계에는 늘 오차가 존재했다. 양가감정은 기본이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의 존재를 깨달으며 살아왔는데, 그의 세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수유라도 번갈아가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잦은 수유로 유두가 헐 것 같은 아픔을 느낄 때마다 ‘모두에게 가슴이 한쪽씩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병원 수유실에서는 선생님이 대뜸 내 가슴을 쥐고 아기의 입에 밀어 넣었다. 예고도 없이 가슴을 잡혔다는 사실과 배고픔에 헐떡이며 유두를 무는 아기를 보며 얼떨떨했다. 나는 그렇게 얼떨떨한 상태로 엄마가 됐다. 아직 아기 손 한 번 잡아보지도 못했는데. 친밀감을 쌓을 시간도 없이 겪은 갑작스런 신체접촉이었다. 아기는 젖이 부족한 내 가슴을 물다가, 분유로 배를 채워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젖을 퉤 뱉고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날은 나도 병실에서 울었다.
출산 후 50일이 지났다. 그 사이 아기의 탯줄은 떨어졌고, 얼굴이 뽀얘졌다. 이제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고 웃는다. 나는 수술 부위가 잘 아물었고, 임신선은 아주 조금 흐려졌으며, 이제 아기들 사이에서 우리 아기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나를 ‘엄마’라고 말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하루는 잠이 부족해서 수유 대신 분유를 먹였더니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겪었다. 그날 뭉친 가슴을 풀려고 필사적으로 종일 젖을 물렸다. 수차례 어려움을 겪고 났더니 물만 마시거나 아기가 우는 소리에도 젖이 도는 느낌이 온다. 고단한 일이지만 덕분에 젖몸살 없는 하루를 보낸다.
이젠 아기의 빵빵한 볼과 통통한 허벅지를 보면 잘 자랐구나 싶다. 그런 순간순간의 작고 오묘한 기쁨이 있다. 아프면서도 오묘한 기쁨. 속옷에 살짝만 스쳐도 유두가 벗겨질 것처럼 쓰라리지만 그건 또 오늘이 지나면 나을 것이다. 아기를 낳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줄곧 임신을 미뤄왔다. 다짐을 했음에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내면에 새겨진 흔적이 많다. 정확한 세계와 오차의 세계 사이에서 아기가 웃는다. 비단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그 웃음이 고마워 나도 따라 웃는다.
임신 출산을 겪은 몸의 변화
아이 낳고 3일째
윤나리
여는 민우회 회원, 노뉴워크(페미니즘 시각 예술가 그룹)/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반려견 포카의 언니. 브런치에서 임신일기 ‘취향이 오므라이스’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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