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_“돌봄 분담이요? 없어요. 그런 거.”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민우ing
“돌봄 분담이요? 없어요. 그런 거.”
2020년 2월, 이미 위태로웠던 돌봄하는 여성들의 일상이 더 큰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확산과 그에 따른 방역 정책으로 어린이집, 학교, 공공기관이 한순간에 문을 닫았다. 그야말로 ‘돌봄 공백’이 발생하자 정부에서 겨우 내놓은 정책은 가족에게 돌봄 책임을 고스란히 떠넘기는 ‘가족돌봄휴가 지원’과 긴급할 경우에만 국가가 돌봄을 담당한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긴급돌봄’이었다. 과연 이 상황을 여성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돌봄 위기 속에서 아이 돌봄을 하고 있는 여성 89명을 전화와 서면을 통해 만났다.
학교가 문을 닫자,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
“전전긍긍은 나만 하고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제가 다 알아보고, 회사 사람들도 보면 백이면 백 여자가 다 하는 거예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모든 육아에 대한 일 처리를, 고민도 여자가 다 해야한다는 거예요.” (사례47, 5세 아동을 돌봄하는 여성)
어린이집,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자 돌봄의 역할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갔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몫이 되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돌봄 공백을 채우는 역할은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아이 돌봄 때문에 휴가가 필요한 경우에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휴가를 쓰는 사람은 대체로 여성이었다. 전업주부의 경우,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도 돌봄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폭증한 돌봄 부담도 ‘자연스럽게’ 감당하게 되었다. 24시간 아이 돌봄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어도 보내지 못하고 주변에 힘듦을 토로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여성에게 돌봄 위기는 곧 노동 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퇴사하거나 구직을 포기한 여성들의 사례를 인터뷰 과정에서 접할 수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내가 너무 잡고 있나’라는 고민을 하면서 경력단절을 감수하고서라도 퇴사를 해야 할지 고려하고 있는 여성들도 많았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비정규직이라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인터뷰 참여자들은 해고를 당하거나 일자리가 없어져 수입이 줄어드는 상황도 겪고 있었다.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하고)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사노동의 증가를 꼽는 인터뷰 참여자가 많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염위기 속에서 가족 모두가 집에 있으니 ‘건강을 생각한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밥을 차리는 일이 너무 고되다는 답변이 다수였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어린이집, 학교 일정에 따라 늘어가는 보이지 않는 노동도 여성들이 감당하고 있었다.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등하원은 어떻게 할지 등 일상을 ‘매니징’하는 일도 모두 여성에게 돌봄 노동으로 가중되고 있었다. 가사, 돌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남편’에게 분담을 요청하는 일은 비협조, 세세한 역할 지정 등으로 인해 오히려 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학습 지도 공백을 메우는 것도 여성의 역할이 되고 있었다. 숙제를 도와주거나 채점하기, 뒤처지는 과목에 대한 학습 등 여성들은 선생님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다. 격차를 확인하면서도 학습 지도까지 소화할 수 없어 포기한 여성들도 있었다.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없었던 가족돌봄휴가와 긴급돌봄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 속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정책은 가족돌봄휴가 지원이었다. 그러나 가족돌봄휴가를 불이익 없이 필요한 만큼 제대로 쓸 수 있었던 인터뷰 참여자는 거의 없었다. 특정한 대상과 상황에 따른 ‘특별’한 휴가제도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이해되어, 오히려 직장에서 차별당하거나 배제당하기 쉽다. 가족돌봄휴가는 당장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돌봄에 대한 성별분업을 강화하고 돌봄 책임자로의 낙인과 그로 인한 배제와 불이익도 여성의 몫으로 남겨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가족돌봄휴가는 돌봄 휴가로 인한 차별과 불이익, 돌봄에 대한 성별분업을 해체하기 위한 다각도의 고민 속에서 도입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돌봄휴가와 더불어 긴급돌봄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공백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전업주부는 돌봄 부담이 커도 애초에 대상이 아니거나, 비난 여론 때문에 긴급돌봄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는 위험성을 계속 강조하고, 기관에서도 가능하면 아이를 보내지 말라는 공지가 오는 상황에서 워킹맘들은 불편한 마음으로 눈치를 보며 긴급돌봄에 아이를 보내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저소득, 맞벌이, 저학년 중심으로 긴급돌봄을 운영하던 돌봄교실을 그대로 긴급돌봄으로 전환하여 적용했기에 이미 존재했던 사각지대 역시 그대로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돌봄하고 돌봄 받는 사회로
인터뷰 참여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코로나 대응 정책에서 핵심이 되어야할 대안을 제안한다. 남성의 장시간 노동은 여성의 돌봄 노동을 기반으로 유지되었고, 여성 노동자들은 단시간 노동을 요구받거나 ‘양육전담자’가 되어 일을 중단할 위기에 놓였다. 이에 일상이 가능하고, 상호 돌보며, 삶의 회복이 가능한 표준노동시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와 돌봄을 동시에 병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노동과 돌봄이 가능하도록 보편적인 권리로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한다.
휴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돌봄 전담자로 특정되는 가족돌봄휴가 같은 방식보다는 사유와 조건에 상관없이 필요한 경우 노동자가 결정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연차휴가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해야한다. 현재 연15개에 불과한 연차유급휴가 개수를 늘리는 일도 필요하다.
코로나19 다음의 사회는 돌봄 받을 권리와 돌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돌봄 중심 사회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가족이 공백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아동의 안전과 인권은 방치되었다. 중단 없이 공적 돌봄체계가 가동될 수 있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한다. 또한, 돌봄을 남성의 몫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바뀔 수 있도록, 성별화된 돌봄 역할을 해체하기 위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지 않는다면 돌봄 공백은 해결될 수 없다. 돌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코로나19 대응 정책이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이 위기가 돌봄의 가치를 인식하고 누구나 돌봄하고 돌봄받는 사회로 전환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족’ 누가 돌보고 있나요? 인터뷰 홍보 포스터. 인터뷰를 통해 89명의 여성을 만났다.
류(류형림)
❚여는 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아직도 성실하게 누워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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