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8월호 [인생의 유한성을 기억하는 사람들]
이제진
이스라엘은 아주 다양한 민족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전체 인구의 75.5%1)가 유태인이라는 혈통적 공통성을 가지고 있지만 1948년 이스라엘 건립 이전까지 자국 영토가 없던 유태인은 유럽 및 아시아, 남북 아메리카 등 전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구소련 연방과 에티오피아의 유태계인들이 대거 이주해왔고, 아시아계 외국 노동자들도 넘쳐난다. 이스라엘 건립 이전부터 계속 거주해오던 유태계 및 아랍계 원주민들2)과 더불어 2006년 기준 이스라엘 유태인 중 32%는 1세대 이민자들이고, 68%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세대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식적인 언어는 히브리어지만 기차간이나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히브리어, 아랍어, 러시아어는 기본이고 그 외 영어나 유럽계 언어 한둘 정도를 듣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같은 이스라엘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집안 내력, 이민 1세대냐 2세대냐에 따라, 특히 종교적 배경에 따라서 부부관계나 자녀교육, 명절문화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이후 기술하는 내용은 주로 비종교적인 이스라엘 국민의 특성에 해당하며 이 또한 개인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이스라엘 사람들을 접하면서 가장 확연히 느낀 한국과의 차이점은 10년전의 나에게는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개방성 혹은 비권위성이었다. 이 점은 최근에 접한 책에서 ‘권력거리’라는 개념을 통해 다소 객관적으로 이해가 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인들의 비권위성은 우선 복장에서 드러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 입는 옷은 티셔츠와 편한 바지 차림이다. 넥타이는 고사하고, 와이셔츠류나 유니폼을 걸친 사람들은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나 은행, 법정에 서야 하는 변호사, 일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한정된다. 하이텍 기업의 젊은 CEO는 물론이고, 중년의 중소기업 사장이나 백화점의 관리자도 케주얼한 셔츠와 바지를 즐겨 입는다. 호칭에 있어서도 나이를 막론하고 이름을 맞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 상사나 교사 등에게도 ‘…씨’, ‘…님’ 이라는 존칭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름만이 그 사람을 나타낼 뿐이다. 수상을 지낸 정치인이라도 다음해에는 일반 정치인으로, 혹은 장관이나 기타 행정관으로 공직 생활을 계속한다.
내가 만나본, 혹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직업이나 지위 고하에 따라 주눅 들지 않는다. 나로서는 대단하다 혹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내놓고, 거리낌없이 말하며 상대가 누구든지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한 인간일 뿐임을 잊지 않는 듯하다. 어떤 자리에서도 돌려 말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며 직설적이고, 당당하다.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한국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뻔뻔하고, 안하무인이라고 하고도 남을 법하다.
개방적이고 비권위적인 문화특성은 자연히 남녀관계나 성문화에도 적용된다. 특정 직종에 따른 종사자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이성 및 부부관계, 동료, 시댁이나 친정과의 관계 등에서 성별로 인한 남녀간의 위계성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사노동에 있어서는 여성의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늦게 출근하는 쪽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일찍 퇴근하는 쪽이 아이들을 데려오며, 상대적으로 요리를 좋아하는 쪽이 식사 준비를 하는 등 실용성을 기반으로 상황에 따라 집안일을 맡는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에서 열리는 정기적인 부모면담의 참가자는 80% 이상이 어머니라고 하는 걸 보면 일차적 양육자로서의 여성 역할은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스라엘 여성들이 의무병으로 군대에 가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입대후 담당하는 역할에서 성별 차이가 있고, 복무기간도 1년 정도 짧다. 많은 경우 남성은 전투에 대비한 군사적 훈련을 받는 것과 달리 여성은 군대 유지에 필요한 일반사무 및 사회복지적 성격의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일정한 신체적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본인이 원한다면 전투 부대 배치를 신청할 수 있어 최근에는 그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화 중 “어쩔 수가 없잖아”(에인 마 라아소트), “인생이 그렇잖아”(카하 제 하임)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역경을 수용하고, 인내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생의 피해자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수용하는 만큼 오히려 두려움은 적어지는 게 아닐는지. 그래서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도전하려는 특성이 오히려 강하며 “할 수 있는 한 현재를 즐기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생활 구석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 유태인 대학살의 상처를 되새김질하며, 수차례의 전쟁을 경험하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 지 모르는 테러의 위협과 더불어 살면서 이들이 체득한 삶의 진리, 생활 철학이 아닐까 싶다.
1) 이하에서 제시되는 통계적인 수치는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Israel)에서 참조한 것임
2) 이스라엘 국내에는 아랍인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스라엘 인구중 아랍인의 비중은 19.8%이며, 특히 아랍인 중에서도 베드윈과 드루즈족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대에도 참여한다.
3) ‘권력거리’ 라는 개념을 소개한 홉스테드의 (Hofstede, G) 저술,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서 조사 대상 53개국 중 이스라엘은 두번째로 권력거리가 작은 나라에 속한다(한국은 26위). 손혜신, [유태인& 이스라엘 있는 그대로 보기], 선미디어, 2002에서 재인용.
이제진 ● 마음의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살고 싶은 주거지와 좋은 인연을 만났고, 양육을 통해 거듭나는 삶을 살고 있다. 3년 동안 자연과 더불어 아이를 기르는 행운을 누렸고, 지금은 번역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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