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8월호 [MB와 나] 당신의 ‘감사’에 감사드립니다
[MB와 나]당신의 ‘감사’에 감사드립니다 :
한예종 사태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
김주현 ●
황지우 총장님의 사퇴 기자회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사태가 널리 알려진지도 벌써 두 달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어쩌다보니 지금 나는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위원장이라는 무거운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만큼이나 그동안 나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00개 남짓한 번호가 저장되어있던 핸드폰에는 어느새 300개를 훌쩍 넘는 번호들이 저장되어있다. 시계와 알람이 주된 기능이었던 내 핸드폰이 이제야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평소의 전화비 2~3배 되는 요금 통지서는 좀 두렵다. 대신에 교통비가 좀 줄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두 달째 거의 일주일에 한번 꼴로 집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기말이 체 되기도 전에 나는 자체 종강을 선언해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나 혼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구성된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 모두의 상황이다. 그러면 도대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한예종에게 어떻게 했길래 우리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한예종 사태의 경과를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부 산하 특수대학인 한예종은 매 2, 3년에 한 차례 10일 안팎의 정기감사를 받아 왔었다. 그런데 2009년 3월 18일 시작된 종합감사는 이례적으로 40여일 이상 강도 높게 진행되었고, 문화부는 결국 지난 5월 18일 감사결과를 통보해 황지우 총장과 일부 교수들에 대한 중징계 및 이론과 축소/개선, 서사창작과 폐지, U-AT 통섭교육 중지 등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 처분을 요구해 왔다. 이튿날인 19일 황지우 총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부가 제기한 중징계 사유들에 대해 해명하고 “유례없는 융단폭격식 표적감사였으며, 감사 결과의 상당수가 대학 교육의 자율성과 본교의 교권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어 보인다.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어줘야 한다”며 총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한예종 학내 구성원들은 이번 감사결과와 일부 언론의 논평을 종합했을 때, 한예종의 근간을 흔들려는 모종의 계획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문화계 뉴라이트 인사들이 결집한 ‘(사)문화미래포럼’은 오는 상반기에 심포지움을 열어 한예종 개혁방안 및 설치령 개정안을 논의하겠다고 공언했으며, 그들은 소위 ‘좌파’로 분류된 교수들을 축출하고 음악학, 연극학, 영상이론, 무용이론, 미술이론, 한국예술, 예술경영, 서사창작 등 이론과들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지시킨 후, 최종적으로는 한예종을 전면 해체할 것을 주장해 왔었다. _ 6/25 한예종 총학생회와 학생 비대위의 공동성명문 중에서 발췌
지난 두 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내가 지금 무엇과 싸우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애초에 감사를 통해 이 사태를 촉발시킨 문화부에서는 “감사는 감사일뿐”이라고 말을 돌리면서, “앞으로의 일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라며 차기 총장에게 그 공을 넘긴 상태이다. ‘문화미래포럼’ 역시 막상 그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6월 15일에 있었던 문화미래포럼의 상반기 심포지움 현장은 각각 다른 주제들을 담고 있었음에도, ‘민영화’, ‘시장 제일주의’, ‘구조조정’이라는 세 키워드로 압축 될 수 있었다. 그 외에 수많은 막말들이 있었지만 이 지면을 할애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아깝기 때문에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런데 신재민 문화부 제1차관이 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했다는, “좌파정권에서는 좌파총장이 우파 총장 나와야 한다”는 말을 생각해 봤을 때, 그리고 차기 총장의 결정권은 학교내 투표를 통해 추천된 2인의 후보 중에서, 결국엔 문화부에서 대통령에게 청하여 결정한다는 사실을 감안해보았을 때, “감사는 감사일뿐”이라는 말을 그저 안 웃긴 개그로 치부하고 넘기기는 힘들어 보인다. 즉 현 정부와의 친연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문화부 감사결과가 바로 문화미래포럼의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는 첫 신호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또한 여전히 싸우고 있다. 황 총장님의 사퇴 기자회견 이후로 조용했던 학교에는 곳곳에 대자보들이 도배되었다. 한예종 사태가 촉발된 이후로 문화부 앞에서는 한예종 학생들을 비롯한, 동문, 학부모, 일반인들의 1인 시위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되고 있다. 미술원에서는 ‘아트 피켓’을 예쁘게 제작하고, 연극원과 무용원에서는 사태와 관련된 퍼포먼스를 직접 창작해 활동해나가고 있다. 애니메이션과에서는 웹상에서 문화부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한 릴레이 카툰을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과와 방송영상과에서는 이 사태를 영상으로 기록해나가고 있다. 각 원 이론과의 사람들이 모여서 ‘예술교육의 자율성과 방향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아가 한예종 학생들은 이 사태가 비단 우리 학교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학문의 자유와 대학 교육의 자율성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현재 문화예술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코드 인사의 정점에 한예종이 서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것이 이명박 정권하에 진행되고 있는 총체적인 민주주의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도 점점 인식해나가고 있다.
얼마 전 성공회대에서 개최된 노무현 추모 콘서트에 기획인단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화행정 정상화와 예술 자율성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인 모임’에도 참가하여 한예종 학생들 자체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총학생회는 전국 예술 계열 대학생 연합을 비롯하여 MB심판, 민주회복을 위한 대학생 행동연대와 함께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한예종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매우 긴 싸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제 이 지난한 과정의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 싸움의 대상이 문화부인지 MB정권인지, 뉴라이트 세력인지, 혹은 내부의 그 누군가가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참여하는 우리 스스로가 무언가를 느끼고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쓰는 이 글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이 사태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가 조금씩 배워나가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감사’에 감사드린다고.
김주현 ● 한예종 학생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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