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10월호 [민우ing]‘몰카’1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민우ing]‘몰카’1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이선미(썬;仙) ● 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어느 날 찾아 온 몰래카메라
몰래카메라(이하 몰카), 이 정체불명의 단어가 통용되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초. 리얼리티를 표방한 모방송사의 TV쇼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설정된 상황을 스타만 모르게(?) 숨어서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겠다는, 그리고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겠다는 취지. 그 TV쇼의 인기로 몰카 형식을 띤 다른 방송도 생겨났고 흥했다. 그 여파로 지금도 간간히 유사 프로그램을 목도할 수 있다. 몰카는 시청률을 낳으며 물꼬를 트더니 최근에는 활용범위의 경계가 사라지고 변화되어 다양한 형태와, 행위로, TV쇼가 아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불편불쾌,‘몰카’라 통칭되는 것들
두리번두리번, 문을 닫고 들어가 내부를 휙 살폈던 경험. 한때 공중화장실에 갈 때마다 행했던 나름의 이용 매뉴얼이다. 매스컴을 타고 집중 보도됐던 소형카메라의 위협은 내가 이용하는 공중화장실 바로 그 칸에도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양산했다. 화장실 너마저 맘 편히 가기 힘들다니 더 이상 그곳은 해우소가 아니다. 공중화장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모텔,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 나타나는 몰카의 위협은 일상화 되고 있고 그 몰카들은 음란물 사이트나 P2P사이트2를 통해 유통되며 소비되고 있다. 몰카의 위협은 단순히 몰래 찍히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공간으로의 침입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상황에 대한 공포인 거다.
어떤 ‘몰카’에 집중하는가
2009년 상담소의 몰카 관련 상담 사례를 살펴보니, 위와 같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공장소에서의 피해보다는 전 연인관계 내지는 친밀했던 관계에서의 피해가 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 ‘몰카’가 존재하든 안 하든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경우도 있고, 핸드폰 등을 통해 나체사진 또는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하거나, 상대방의 동의하에 찍었더라도 이후 동의 없이 유포시킨 경우가 있다. 2, 3년 전에는 ‘몰카’의 존재 혹은 유포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 협박하는 스토킹 상담들이 주를 이루었고, 최근 들어서는 P2P에 영상이나 사진이 이미 유포되어 버린 상담이 늘고 있다.
피해 경험을 모아보니 ‘몰카’ 유포협박 및 유포는 보복이나 복수의 감정으로 위협, 또는 공격을 가하기 위해 사용되거나, 일방적인 관계 지속을 위한 회유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스토킹의 수단으로 몰카가 이용되고 있는 최근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영상기기에 대한 접근성과 유포의 편리함으로 ‘몰카’의 활용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 예견되는 만큼 ‘몰카’와 관련한 피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목소리
‘몰카’로 인한 피해의 목소리에는 짙은 불안이 서려있다. 인터넷은 빠르게 ‘몰카’를 흡수하고 널리 전파한다. 다운로드 한 번으로 누군가는 나의 경험을 소비한다. 그것도 흥미위주의 음란물로. 사람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에 의해 피해는 묻히고 당사자는 고립된다. 이는 결국 피해를 주장하고 맞서기 위한 결단, 주변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힘내는 마음에 다다르지 못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그 내용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갖는 것은 협박에 시달리는 피해자에게 절망과 고립감을 안겨준다. 그렇다면 협박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 뭐가 다른가.
‘몰카’ 속 그 때를 함께 했던 이는 보이지 않고 피해의 목소리만 남아 뭇시선을 받는다. 더 가관인 경우 도리어 ‘몰카’라는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가 된 그 사람이 있다. 왜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그것을 권력으로 이용하게 될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 답답하다.
‘몰카’에 가려진 이야기
어떤 과정을 거쳐 드러났든 어떤 상황이든 그가 누구든! 그 ‘몰카’가 세상에 공개될 때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는 하나다. 여성! 물론 다른 이들에게 이야깃거리의 화제가 되는 대상도, 피해가 드러나거나 사건화됐을 때도, 모든 건 그녀의 문제가 된다. 그 여성의 살아온 경험이 어떻든, 역사가 어떠하든, 나이가 몇이든, 무엇을 하든, 비혼/미혼/기혼자든지 ‘몰카’와 대면하는 순간, ‘문제가 있는 여성’으로 귀결된다. ‘몰카’ 문제의 핵심은 사라지고, 사회는 그녀 자체를 문제시한다.
왜 ‘몰카’는 침묵을 부르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섹슈얼리티는 규범화되어 있다. 성적 존재로서 여성은 배제되어 있고, 성적 욕구나 경험을 드러내선 안 된다고 학습되고 있다. 이에 배반된 행동을 한 ‘몰카’의 피해 여성을 사회는 칠칠치 못하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 금기를 깬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평가와 비난을 서슴지 않으며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것은 그녀의 탓이니, 개인적인 문제인 거다. 이에 ‘몰카’는 분풀이든 복수든 협박을 하기 위한 도구든, 피해자에게 상대가 휘두르는, 거역하기 어려운 무기가 된다. 일방적인 권력을 쥐고 흔드는 쪽이 늘 정해져 있는 구조인 거다. 그래서 그녀는 말 할 수 없다.
핵심을 변화시키기
문제를 개인화시키는 것만큼 쉬운(?) 해결책은 없다. 기대하는 여성 섹슈얼리티를 규정짓고 그 틀 안에 가두려 하는 사회 구조와 이를 이용해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몰카가 이용되고 있다. 이는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더 악화시키는 양상을 낳게 된다. 유포에 따른 피해는 심각해지고 그 사례도 늘고 있는 상황.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할 수 없기에,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과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한 도약
‘몰카’의 위협과 위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또한 개인화되기에 감당해야 하는 몫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그래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모아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이에 상담소는 집중상담기간을 통해 이야기를 모으고, 다양한 온라인 캠페인의 형태로 발현될 <몰카를 추포하라>를 계획 중에 있다. 이를 통해 지금의 판에 균열을 내보자. 언젠가는 깨지고 부서져 ‘몰카’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함께 힘을 내 보자.
이선미(썬;仙) ● 더디고 늦되다
1 ‘몰카’는 몰래카메라의 준말로,
민우회상담소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한 소위 성관계 동영상을 지칭하는
협의의 개념으로만 사용됨을 밝히는 바이다.
2 person to person, 개인 대 개인 파일 공유 기술 및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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