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4월호 [나의 삶, 나의 이야기2] 결혼식, 정말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결혼식, 정말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전조용미(용마)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나, 결혼한다!”
친구들이 내뱉는 “크헉”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내 장황한 결혼 서막의 장이 열렸다. 요거, 요거, 요래 다들 놀라는 걸 보니 한 번쯤 해 볼만도 한데? 그렇지만 사실 나는 아직 ‘나의 결혼’이라는 말 자체도 와 닿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 때쯤에야 비로소 “나에게 닥친 이 상황이 뭔가.” 하며 천정을 말똥말똥 바라볼 뿐이다.
그래, 툭 까놓고 말해서 사실 엄청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나이 올해 스물아홉, 남자친구는 서른셋이다. 둘 다 가열 찬 연애의 소용돌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나이도, 환상이 있을 나이도 아니다. “뭐, 그냥 대~충, 집 구하고, 물건 사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요?”하고 코웃음을 쳤던 나는 며칠 전날 밤, 민우회 활동가로 있는 친구에게 ‘소식지에 기고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문자를 보내고(정말 기고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남자친구에게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하라!”라고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하루를 단식 투쟁과(그 이상은 힘들어서 못함) 침묵 투쟁(이것도 그 이상은 간질거려서 못함)으로 비장하게 보내고 난 뒤,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를 생각해 보았다.
“안 하라고, 정말 안 해?”
처음엔 일이 수월했다. 상견례 자리도 수월, 드라마틱한 양쪽 집안의 반대도 없었다. 부모님께서 예단과 패물은 서로 “하지 말자.”라고 합의도 하셨다. 그. 러. 나! 준비하다 보니 엄마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러 ‘결혼 선배’들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셨고, 열이면 열, 딸의 원활한 시집 생활을 위해 “그래, 해야 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결정적인 것은 그릇가게 아저씨의 말이었다.
“아니, 어머님(용마모)! 누가 ‘나 생일선물 안 줘도 돼’라고 하면, 정말 안 주실 거예요? 당연히 그 집에선 예단하지 말라고 하죠. 예단은 어머님이 시댁에 보내는 선물이에요. 누가 선물을 주는 줄 알고 받아요. 원래 다 모르고 보내는 게 선물이에요. 그래야 따님도 시댁 가서 떳떳하게 사는 거예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_-;; 나까지 덩달아 내가 ‘할 도리’를 안 하는 것인지, 어머님의 말씀을 너무 ‘곧이곧대로’ 듣는 것인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시는데 정말 예단을 안 해도 되는 걸까?”
“어머니(남친 어머님)가 안 해도 되신다잖아.”“그래도 그게 경우가 아니지, 너 살아 봐라. 나중에 사이 안 좋아지면 서로 그때 뭘 해 줬네, 안 해줬네 하며, 너만 힘들어져. 그리고 나도 할 도리 다 해야 마음이 편하고.”
“나, 결혼 안 할 거야!”
딸 때문에 긴장한 엄마를 보는 게 안쓰러웠던 나는 남자친구에게 엄마의 입장을 전달했다. 남자친구는 그런 건 필요 없다면서 ‘형식적인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오히려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엄마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친구가 야속했다. 결국, 또 나는 엄마에게 남자친구의 입장을 전달했다. 엄마는 남자친구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며 또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엄마가 야속하다!
아! 답답한 마음으로 며칠을 두 사람 잔소리에 마냥 죄인처럼 지내던 중, 나는 급기야 내 통장의 잔고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결혼하기 전 몇 달만 신나게 놀겠다고 얼마 전 일을 그만두고 뛰쳐나온 나는 날 위해 쓸 돈이 완벽하게 사라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준비 하면서 어른들의 불안으로 시작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격식이 난다.”라는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던 사이, 통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던 것이다.
“그럼, 그림 배우려고 했던 것은? 운전면허는? 대학원 공부하려고 했던 것은? 여행은?” 게다가 두 달 동안 한 푼이라도 아껴 보려 발품 팔며 보낸 시간의 결과가 겨우 이런 거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왜 그 하루를 위해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억울했다. 나는 울면서 남자친구와 엄마에게 “나, 결혼 안 할 거야!”라고 외치고 말았다.
“정말 내가 그날의 주인공 맞니!”
사실 남자친구와 나는 음악공연을 준비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다가 정이 들었다. 돈이 생기면 곧장 함께 여행을 떠나던 남자친구가 연애하는 동안에는 너무 멋있었는데, 결혼준비를 시작하니 왜 이렇게 ‘대책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반면 나는 낭만도 꿈도 없이 “돈, 돈!” 하는 인간으로 보이게 되니 신세가 처량해 눈물만 줄줄 나오는 것이다. 남자친구에게 “넌 정말 몰라도 너무 몰라!” 와 “정말 내가 그 날의 주인공 맞니!”를 반복하면서…
남자친구도 그제야 상황의 긴급함을 알았나 보다. 이틀을 싹싹 빌며 정신을 바짝 차리겠다고 약속에 약속을 거듭한다. 마음은 풀려 진정되었으나, 이내 마음이 씁쓸해지고, 돈 생각에 머리를 굴려야 할 남자친구도 불쌍해진다. 우리의 낭만적인 연애는 순식간에 어디로 갔을까? 부부로서도 낭만적으로 살아보겠다던 우리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멋진 엔딩이 아니라서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고 결혼식은 어른들이 원하시는 대로 하기로 했다. 주례 없이 공연처럼 기획해 보자던 결혼식도 부모님의 “근본 없다.”라는 핀잔에 주눅이 들어 주례를 구해보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위로한다. “결혼식이 우리의 마지막 날은 아니잖아.”
추신
다시 조금은 멋진 엔딩을 위해 덧붙여본다. 지금 우리는 함께 해외봉사단을 알아보고 있다. 결혼 후 1~2년쯤 함께 착하게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보자고 다짐했다. 할 수 있을지는 준비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이 낭만적인 선택도 현실의 벽 앞에 슬픔으로 부딪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용마●
대안학교 교사였던, 여행을 준비하는, 희망이란 말을 관념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스물아홉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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