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겨울 [민우ing]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지금’ 백화점 판매노동자에게 집중하는 이유
2013년 한 해 동안 우리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판매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세 번이나 접했다. 수 백 가지의 물건이 화려하게 전시되고, 판매되는 백화점의 이면에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백화점 판매노동자의 고충이 숨어 있었다.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이 벼랑 끝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를 접한 후 노동팀 활동가들은 머리를 맞대 모았다. “기사 봤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백화점 판매노동자를 지지하는 스티커를 제작할까, 위장취업을 통해 백화점 현실을 고발할까 등의 아이디어를 모았다. 실제로 백화점에 취업하기 위해 지원서도 제출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과거에 일 경험이 있거나 현재 일을 하고 있는 10명의 백화점 판매노동자를 만났다. 화장품, 의류, 잡화, 식품, 문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의 단어가 있었다. 바로 스트레스이다.
판매의 굴레? 악순환의 굴레! 매출압박에서 시작된 모든 것들.
백화점 판매노동자의 아침은 백화점 측 담당자의 판매실적 잔소리로 시작된다. 전년도 판매실적을 비교하고. 다른 매장과의 실적도 비교하고, 구성원간의 개인 실적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작년보다 올해,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팔기를 강요한다.
매출에 대한 스트레스가 알바생인 저한테도 오죠. 매니저님이 매일 “아, 오늘 못 팔아서 어떡하니. 매출을 올려야하는데. 아 짜증나.” 이러면 저도 듣는 귀가 있잖아요. 나한테도 전달이 되고 나도 어떻게든 팔아보려고 안달이 나요. 실적을 채워야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요. 그거는 직원들은 더 심하죠. 어떤 분들은 자기 카드 긁어서라도 매출을 올리는 분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 매출이 되면 나중에 결제를 취소를 하는 모습이 반복돼요.
백화점에는 매장이 다 붙어 있잖아요. 고객이 이쪽 매장과 저쪽 매장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 직원인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객 쪽으로 향해요. 내가 팔아야겠다는 그것 때문에. 그러면 옆 매장 직원이 여기에서 물건을 다 보고 있었는데 네가 왜 손님을 뺐냐? 이런 식으로 싸우기도 해요. 자리싸움도 많이 하고. 행사 때 고객 유치하려면 좋은 장소에, 넓은 장소에 행거를 진열하고 싶잖아요. 그러다보면 오픈 전에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죠.
하나라도 더 팔아 매출을 올려야하기 때문에 다른 매장 직원은 물론 같은 매장 직원들 사이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들끼리 어려움을 토로하고, 위로하고, 연대를 만들어 가기 어려운 곳이 백화점이었다.
친절을 가르치고, 연기하고, 평가하는 백화점
혹시 ‘미스터리 쇼퍼’라고 들어보셨나요?
백화점 판매노동자는 일을 시작하면 바로 교육을 받는다. 고객이 매장에 들어왔을 때, 물건을 소개할 때, 퇴장할 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응대해야할지를 배운다. 한명은 고객, 한명은 판매직원이 되어 역할연기도 한다. 입사 후에도 서비스 교육은 정기적으로 지속된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연기자가 된 것 같다고 말하며 연기에 따른 즉자적인 평가를 부담스러워했다.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매출을 내기 위해 백화점은 특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서비스를 점점 더 강화하는 원리에 대해 씁쓸해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떻게든 고객에게 특별함과 만족, 친절을 주는 점원이 되기 위해 교육받은 대로 매뉴얼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매뉴얼이 옷이 되고 그것대로 움직이는 스스로가 로봇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백화점 판매노동자들은 지속되는 교육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감시․평가하는 수많은 ‘눈’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백화점에서는 CS(고객만족)평가를 한다. 이것은 미스터리 쇼퍼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기도 한다.
미스터리 쇼퍼가 뜨는 날에는 다들 긴장해요. 인사도 더 열심히 하고 저쪽에서 부르면 바로 멘트하고 원래도 친절하지만 그날은 더 친절해야 되요. 마지막에 갈 때 인사도 꼭 하죠. 이거를 자주하고 그러니까 누가 미스터리 쇼퍼인지 잘 모르니까 평소에 잘하다가 괜히 한번 인사를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걸려요. 이름표가 삐뚤어져 있어도 체크 사항이 되는 거죠. 재수 없게. 그럴 때는 스트레스 받죠.
백화점에서는 1년에 두 번인데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한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해당 브랜드 업체에서, 노동자가 속한 파견업체 등 다양한 곳에서 고객을 가장한 미스터리쇼퍼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긴장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옷차림, 표정, 행동 등 모든 사항에 대해 평가를 하고, 점수를 매긴다. 일정 기준 이상 점수가 나오지 않는 노동자는 욕도 먹고, 특별 교육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백화점은 ‘쓰리아웃 시스템’을 두고, 일정기준에 세 번 이상 미치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거나 백화점을 나가게끔 하기도 한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고객들은 직원이 무조건 나한테 협조해주기를 바라죠. 그런데 저는요, 그 바람도 바람이지만 고객들이 ‘내가 기분 상하게 말해서 저 직원이 기분은 상하지는 않았는지….’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이런 게 없으니까 힘들어요. 고객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직원은 영원히 힘들어요. 한 두 사람만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직원전체가 바뀌어도 백화점 전체가 바뀌어도 바뀔 수 없어요. 고객이 같이 바뀌어야 해요.
이처럼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판매노동자가 끊임없이 대면하고 있는 시민의 변화가 동참되어야 한다. 고객은 판매노동자의 중요한 노동 현장이며, 고객의 역할에 따라 판매노동자의 질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는 ‘물건’에서 ‘사람’으로 시선을 돌려 백화점 판매노동자의 인권적인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한 액션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서비스 ․ 판매직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우리 ‘함께’ 만들어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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