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겨울 [기획] 이별이라는 벤치
이별은 그냥 와 있다. 이별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다는 것, 떠나는 것만이 나를 위해 어쩌면 상대를 위해 최선의 것이라는 걸 알게 될 때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오랜 미로 같았던 관계를 끝내고 떠날 때는 부서지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떠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마음의 힘이 남아 있을 때 하는 거라고, 지금이 기회가 아니겠냐고,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는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말이 옳았다.
옳았던 것일까, 하고 그 후에 생각한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스스로 되묻는다. 때론 왜 그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러 있었을까 의아해한다. 만남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한다. 아주 가끔은 그리워하다 소스라친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실망한다. 감정이 단색이 아니어서 진이 빠진다.
친숙했던 말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혼’이나 ‘한부모’라는 말로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남편은 무슨 일 하세요?” 인사하며 다가오는 이웃 앞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굳이 말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 될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반복되거나 더듬거리며 제자리에 검질기게 맴도는 말들.
헤어지고 맞는 계절의 변화는 처음 보는 양 새로웠다. 꽃눈을 머금고 있는 개나리나 푸릇푸릇한 잎을 아지랑이처럼 피워 올리는 숲이 보였다. 혼자가 된 것이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내 시간을 얻기 위해 구차한 타협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전보다 돈 걱정을 더 하고, 아이가 놀다가 다쳐서 오면 쩔쩔매고, 새벽에 깨어 이런저런 고민에 우두커니 앉아 있게 될 때 다시금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헤어지고 나면,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람과 다시 이별해야 한다. 원한과 분노가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다. 싫다. 이제까지의 나는 깡그리 쓰레기통에 처박고 새 삶을 살고 싶다. 떠오르는 것들을 싹둑싹둑 잘라내고 싶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나는 나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한테 그건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가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개인의 탓이거나 개인의 변화가 관건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며 아주아주 끈질기게 싸워가야 한다고 했다. ‘삶에 의미 따위가 뭐가 있어, 나를 내팽개치며 살았는데’하고 억하심정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고 할 때 ‘의미’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주변에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게 또 사람인 것 같다.
강의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난다. “선생님, 유복해 보이시네요.” 부러워하는 싱글맘의 한마디에 “저도 싱글맘이에요.”하고 굳이 하지 않으려던 말을 한다. 나와 그가 꼭 같지는 않지만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걱정의 말에 공감한다. 씩씩하게 일을 하고 다른 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모습에 경탄한다. 강의에서 만난 여든 살, 아흔 살 되는 노인들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배우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하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남을 돕고 가치 있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 아래 인(人) 버러지(벌레)로 살다 가는 거밖에 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말한다. 한 여성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대하게 되었다며 자기 일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했다. 쉰이 넘어 처음 한글을 배우며 살아온 이야기를 쓰는 요양보호사도 만나고 어린 시절 본 학살의 풍경을 잊지 않고 말해주는 나이든 이도 만난다. 죽음의 전날까지도 사람의 영혼은 늙지 않고 삶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긴다. 증언하고 싶어하고 미래를 기다린다.
나와 딴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 나 혼자만의 아픔인 것 같았던 것을 다른 이들도 겪고 산다는 걸 알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힘든 역경 속에서 이타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삶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나의 시간이 다음 세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몫을 다해 살아간다. 다시 돌이켜본다. 완벽하지 않았던, 터무니없이 서툴렀던 나를 용서하고, ‘그건 꼭 내 잘못만은 아니었어, 이제 난 다른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라고 생각도 해본다. 따뜻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렇지, 뛰노는 아이들과 젊은 연인들과 나이든 부부와 노인들을 보며 그들 속에 내가 있고, 내가 없어도 그 삶이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 아직은 내가 이 자리에 있고, 아마 무언가 할 것이 남아 있는 모양이라고, 눈을 천천히 떴다 감으며 상상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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