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겨울 [결혼과 비혼 사이] 따로 또 같이 살기
[결혼과 비혼 사이]
따로 또 같이 살기
김은아(은아)
회원
“밥은 누가 해요?”
내가 결혼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이다. “아침은 안 먹고, 저녁은 먼저 귀가하는 사람이 하는 거죠”라고 답하면 그게 누구인지 다시 묻는다. 내 파트너의 회사는 집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다. 반면 나는 회사에서 집까지 30-40분 남짓 걸리다보니 내가 집에 도착할 때면 창문 너머로 도마질 소리가 들린다. 파트너는 요리하는 것을 즐기고, 먹고 싶은 것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메뉴 제안을 주로 한다. 나는 먹성이 좋아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다면 파트너의 제안에 따르는 편이고, 파트너는 필요한 식재료를 시장이나 마트에서 사온다. 가끔 밥하기 귀찮은 날은 매식을 한다. 뉴스를 틀고 저녁을 먹으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대화를 나누고, 뉴스에 나온 사건·사고 소식에 함께 분노하고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함께 살면서 즐거운 순간이 바로 이 때다.
따뜻하고 낯설게 보기
나 스스로 자신을 며느리에 가두지 않고자 했으나 시어머니가 음식을 할 때 엄마가 음식을 할 때처럼 편히 앉아 있기 어려웠다. 쉰다섯 젊은 엄마에 비해 열 살이 더 많은 시어머니의 나이와 왜소한 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소 음식 만들기에 소질이 있는 내 파트너는 명절이나 제사 때 음식 준비를 함께 한다. 시아버지도 밤 치기와 청소 정도는 알아서 하고, 손위시누이도 제 몫을 한다. 나는 마치 “문화인류학자”처럼 내 파트너의 집 문화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하루는 시어머니가 “네 집에서는 나물을 이렇게 무치나?”라고 질문했다. “아, 그게 엄마가 하는 거 많이 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시어머니는 간이 어떤지 항상 맛을 보게 했고, 나에게 뭘 더 넣을지 의견을 물었다. 시누이 역시 내가 좋아하는 꽃을 선물해주거나 나와 파트너가 즐겨보는 만화책을 챙겨주고 초콜릿 같은 먹을거리를 챙겨준다. 시아버지는 처음엔 내가 전화 안 하는 것을 좀 서운해 했지만 이제는 나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온다. “은아니? 잘 있었어? 니들만 행복하면 돼. 아빠는 아무 걱정이 없다.” 그래, 나 혼자 애쓰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따뜻한 손짓을 했다.
그리고 내 엄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을. 엄마에 대해 나는 참 몰랐구나. 안에 있을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도 내가 밖에 있으면 “박서방 밥은?”이라는 질문을 빼먹지 않는 엄마에게 “내가 밥 해주려고 결혼했어?”라고 꽥 소리 지르는 대신, “응. 자기가 알아서 잘 챙겨 먹는 사람이잖아. 걱정 안 해도 돼.”라고 말하는 여유가 생겼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결혼을 결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누구의 아내로, 며느리로 살고 싶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것이 너무 후져보여서 도무지 결혼을 내 인생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한편 오순도순 사는 스위트홈 신화를 욕망했다. 이런 모순도 없다. 그러던 중,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40대 언니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 유쾌함과 내공을 느끼고, ‘그래 결혼해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또, 파트너와 1년을 살아보니 꽤 즐거웠고 쿵짝이 잘 맞았다. 뭐 결혼하면 달라지는 게 있겠지만, 그래도 서로 조정할 수 있겠지 기대했다. 참 잘 지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파트너와 피 튀기게 많이 싸웠고 서로 상처도 깊게 냈다. 결혼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나는 이혼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왜 그렇게 싸우니? 그렇게 싸우면 힘들지 않아?”라고 누군가 물었다. 참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파트너가 뭐든 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하고 화가 났다. 관계는 상호작용인데, 나를 떠받들어주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내 역할은 생각하지 않았다. 내 안의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용했는지는 계속 탐구할 부분이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도 힘이 남았는지, 나는 파트너와 함께 상담을 받았다. 내 맘을 다독이고, 사람을 존중하는 것, 배려하는 것에 대해서 새로 배웠다. 바르게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 느낌과 판단을 구분하고 겉으로 드러난 욕구와 진짜 욕구를 찾는 것, 부탁하기까지.
누군가와 함께 살면 부딪히는 것, 갈등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조정하는 일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 욕구를 분명히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삶의 주파수를 맞추고 조율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점차 내 스스로 욕구를 충족하고 있고, 그래서 쓸쓸하지만 더 행복하다. 배가 고프면 내가 어떻게 챙겨 먹을지 궁리하고, 집이 더러우면 치우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내 몫을 한다. 그리고 파트너가 무언가 할 때 고맙다고 표현한다. “맛있게 밥 해줘서 고마워”, “산책 함께 해서 즐거워”, “청소하니 집이 깨끗해서 좋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고 세뇌하고 있다. 파트너가 내가 요청한 어떤 것을 거절할 때도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금, 파트너와 ‘따로 또 같이’ 산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