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상반기 [나의노동이야기] 나쁜배려: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것이 배려일까?
[나의노동이야기]
나쁜배려: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것이 배려일까?
김효진| 여는 민우회 회원
일을 하다 보면, 주변 남성들까지 다 인정할 정도의 명백한 성폭력 성희롱을 당하지 않고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거나 승진을 못한다거나 일 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돼 있다거나 하는 주장을 강하게 하기는 어렵다. 업무 환경이라는 것은 복잡다단하여 내가 일을 하기 어려운 결정적 이유가 반여성적인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대단히 힘들다. 사실 성차별보다 일하기 힘든 조건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남성 중심적인 환경’이라는 것 역시 여성들마다 다르게 인지하고 있다. 정황은 있고 어긋나는 느낌은 있는데, 딱 집어 ‘반여성적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남도 같이 느껴주지 않으면, 가물가물한 이념이며 이론을 내세우며 투쟁하기보다는 ‘아, 그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일 수 있지’하는 기만적 물타기로 조금씩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지 싶다.
정황은 있다. 올해 초 검찰의 여성 기자 성추행사건이 불거질 무렵 경찰과 검찰 취재를 담당하던 나는 그들에게서 두 가지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경찰(남성)을 만나러 집무실로 찾아갔는데,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기 위해 집무실 문을 닫으려 하자 그가 “문 닫지 마세요. 살짝 열어 놓으세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남학생 집에 놀러 갈때 ‘방에 단둘이 있는 상황이 될 때는 방문을 살짝 열어 놓으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일 관계로 만난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또 하루는 검사(남성)를 만나러 집무실로 찾아갔는데, 그가 조만간 기자들과 한 번 단체로 식사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다음 요청이 특이했다.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양 옆과 맞은편에는 반드시 남성 기자를 앉혀 달라는 것이었다. 따로따로 들을 때는 ‘특이한 분들이네’ 하고 넘겼지만, 연속해 듣고 보니 ‘혹시 여성 기자를 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의 성추행 사건이 터진 직후이니 그럴 법도 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무력감이 들었다. 한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그 여성뿐만 아니라 그 여성이 속한 여성 집단 전체가 패널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정보를 다루는 직종이고, 많은 정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외부인’인 기자가 내부의 사정을 이해하려면 사람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남성이 대부분인 경찰 검찰 기업 2014 상반기 41인 관료 등 취재원이 ‘혹시라도 성폭력 사건에 말려들기 싫다‘는 이유로 여성 기자 자체에 거리를 두게 되면 일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진다. 피해가 또 다른 피해를 낳고, 불리함이 또 다른 불리함을 낳는 경우다.
정황은 또 있다. 나는 4년째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 직업에 진입할 때 나는 내가 이 직종에서 성공하기에 몇 가지 불리한 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술이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위장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늦게까지 이어지는 단체 술자리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나는 통상 ‘6시’ 내지 정해진 퇴근 시간 이후에는 집에 돌아가 가족 혹은 자기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삶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학생때부터 믿어왔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기 자신을 채워 나가는 시간이 확보 되어, 좀더 ‘깊은’ 사람들로 채워진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랐고, 바란다. 대학생 때부터 ‘술자리’는 그것을 방해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직장에 들어오니, 술자리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주업무인 기자들은 저녁 술자리를 회피하기 어렵다. 다 거절하고 피하는 게 아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결국 정보를 다루는 직종에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는지라, 위기감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요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뒤에는 반드시 ‘대신’이라는 말이 붙는다. 술을 안 마시는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을 잘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술자리 문화 자체를 ‘남성 문화’라고 잘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술자리
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분명 오래 전 남성사회가 만들어 낸 문화지만, 지금은 그 자체로 깰 수 없는 관행으로서 자리를 잡아 성별을 불문하고 괴로움을 주고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아주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놀이문화의 차이가 있어 남성이 이 관행에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애초에 취재원 중에 남성이 많아 ‘형님, 아우’하며 어울리기에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지금 상황은 정말이지 분명치 않다. ‘양식 있는 남성들’은 성추행을 저지르는 대신 여성을 피하며, 정부와 기업은 ‘배려 깊게도’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들에게 아이 셋을 낳고 육아휴직을 3년~6년 하라고 권한다. 바로 그 연차 때 가정과 건강을 포기하고 야근과 접대에 찌든 삶을 살아야, 10년 뒤 정리해고 당하지 않고 능력 있는 직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 구조는 그대로 두고 말이다. 초점이 안 맞는 것 같지만 배려는 배려인지라 거절하기도 어렵고 ‘여성이 피해자’라는 말은 더더욱 꺼내기 어려우며 여성들끼리 뭉치기도 힘들다. 여성 개인으로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그 어떤 것도 하기 힘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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