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상반기 [아홉개의 시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아홉개의 시선]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오경훈| 여는 서울동북여성민우회 대표
서울동북여성민우회는 여성운동의 지역 확산을 위해 1992년에 문을 열었고, 제가 2001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 햇수로 치면 꽤 오랜 세월을 동북민우회와 함께 하였습니다. 동북의 활동일지를 보니, 지난 20년 동안 지역에서 여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밖으로 알려지고 보여 지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 온 것은 아닐까 라는 반성도 됩니다. 과거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동북민우회가 2012년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회원들과 지역의 다양한 분들을 함께 만나 물었습니다. ‘민우회가 앞으로 지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만나는 분들이 가진 다양한 바람과 격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민우회다운 활동을 하면서, 노후를 같이 보낼 준비를 하자는 연륜있는 회원들, 이제는 민우회가 무엇을 하기보다, 하려는 사람들을 돕는 조직이었으면 하는 회원들, 좀 더 활동을 새롭게 기획해야 한다는 회원들(돌봄, 여성실버센터, 여성의료생협 등), 지역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쌓아왔던 단체로서, 지역 단체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분까지
그리고 저는 다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왜, 무엇 때문에 민우회에 몸을 담게 되었을까?’, ‘민우회와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동안 생각 없이, 환상에 사로잡혀 살던 저는 민우회를 만나면서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떤 사회를 바라보아야 하는 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활동과 벗들을 통해, 그리고 민우회와 함께 한 여성주의 공부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주변의 사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민우회와의 만남은 예전과는 다른, 좀 더 삶에 대한 구체성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활동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민우회 회원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은 나 자신과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기는 생활의 고민들을 안고 발을 디딘 민우회이지만, 이제는 민우회를 통한 작은 희망도 생겼습니다. 동네에서 같이 부딪히고 살면서, 각자 가지는 문제에 대해 함께 풀어나가고자, 공부도 하고 힘도 모아 내고 싶습니다. 또한 사고하고 생각을 넓혀가고자 공부하는 여성들을 도와주고 싶은 바람입니다. 민우회 안에 이런 작은 모임들이 많아지면 좋겠고, 나 또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봅니다. 제가 민우회에 몸담고 느꼈던 변화가 단지 저만의 경험은 아니겠지요. 이런 경험을 지역의 많은 여성들과 나누는 것! 이것이 가장 민우회답고 서울동북여성민우회가 지역에 둥지를 틀면서 가진 처음의 마음이라고 생각
됩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사회에 발맞춰 함께 변화하는 민우회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습
니다. 그래서 안 맞는 옷에 몸을 맞추는 부자연스러움인 아닌, 가장 민우회다운 옷을 입고 시작하자고, 출발하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2014년 동북민우회는 ‘성(性)과 여성, 상담’이라는 키워드로 지역여성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법이 제정되고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은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아니 어떤 측면에서는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있습니다. 일상과 몸에 길들여진 왜곡된 성문화와 성인식을, 민우회는 성교육과 생활 속의 운동으로 작지만 새로운 변화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서울시북부교육지원청과 <성교육 강사 양성교육>을 통해, 장기적으로 지역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성교육 강사풀을 마련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관점 정립을 위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도 추진하고자 합니다. 그 첫 출발로 열린, 지난5월 ‘아이들을 위한 성교육을 어떻게 할까’라는 2회에 걸친 강좌에 매회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뜨거운 관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 6월부터 7월에 걸쳐 ‘성폭력상담원 교육’, 9월의 ‘성교육 강사 양성 교육’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통해 만나는 수강자들과 또한 이후 준비되어 있는 여러 활동을 통해, 동북민우회는 새로운 변화의 출발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배워서 남 주자!’ 라는 모토를 내걸고 공부하며 활동했던 초기 선배들의 열정을 오늘 다시 우리 안에 되살려보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반성하고 성찰할 것이 참 많은 요즘입니다. ‘어이없음’이 더 깊이 뿌리 내리기 전에, 우리는 다시 또 처음의 마음으로 시작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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