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조언의 조건 : <<레볼로셔너리 로드>>
얼마전 한 지인이 친구와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그녀는 최근 벌어진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당연히 그
충격은 그녀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하루는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불안에 대해 이
야기했고 울분을 터트렸다고 한다. 어찌할 줄 모르는 동료들 사이에서, 한 친구가 그녀에게 조언을 건넸다고
한다. 내가 들은 바로는 분명 걱정에서 나온 따끔한 해결책이었지만,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들으면 오해할 여
지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그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인과 조언을 건넨 그녀의 친구는
옥신각신 다투었다. 지인은 계속해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
라고 주장했고, 그녀의 친구는 왜 자꾸 자기를 외부인 취급하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결국 그 자리는 엄청난 다툼
으로 끝이 났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조언을 건넨 지인의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자기 고통에 빠져서
남들을 보지 못하냐고, 왜 자신의 기분은 헤아려주지 않냐고.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마찰을 겪곤한다. 대부분의 갈등이 달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아픈것은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이 상처를 주고 받을 때다. 특히나 그 상황이, 고통에 빠진 한 사람
을 도우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면 더욱 그렇다. 가령 서두에 언급한 내 지인의 사연이 그런 사례중 하나일 것이
다.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신뢰가 있었고, 그녀의 친구도 그녀를 아끼는 마음에 그런 조언을 건넸을테니.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영화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였다. 영화의 주인공인 에이프릴과 프랭
크는 권태를 겪는 부부다.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순탄치도 않다. 두 사람은 영
화 내내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툰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는 미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떠나자는 에
이프릴의 제안과 함께 반전을 맞게된다. 하지만 좋은 시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프랭크에 의해 계획이 좌절
되며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닿게 된다.
내가 영화 속에서 주목한 것은 프랭크의 태도였다. 영화 속에서 에이프릴이 상심에 빠질 때면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그녀가 연극을 망쳐서 슬퍼할 때도, 꿈에 그리던 유럽행이 좌절되었을 때도.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그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옳았을지도 모른다. 연극을 망친 것은 그녀가 아닌 조
연들이었을지 모르며, 유럽행은 어쩌면 실패가 예견된 일탈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애정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이다. 슬픔과 좌절에서 채 헤어나오지 못한 에이프릴은 계속해서 프
랭크의 말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말들을 계속해서 튕겨낸다. 그리고 그 때에 프랭크는 남자로서 자
신의 자존심이 실추되었다고 여기거나 (그리고 그 무너졌다고 여겨지는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그는 폭력을 휘두
르려고 한다.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패턴 중 하나다. ) 혹은 아이처럼 왜 자기가 준 만큼 자신에게 사랑을 돌려주
지 않냐고 울먹인다. 사실 그가 에이프릴이 보았던 것에 조금이라도 이입하려고 했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말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보상받지 못한 자신의 감정에, 그래서 억
울한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그것이 정말 사랑이냐고.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에이프
릴이 괜찮아지는 것이었냐고.
확실히 누군가에게 당신은 옳지 않다는 말을 듣는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나 그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들었을 때, 그 사람을 걱정해서 진심어린 조언을 던졌을 때, 그런 말을 듣는다면 상심이 클만도 하다. 하지만 때
로는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진심을 다한 조언이라도 받아들
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아직 고통 속에 있다면, 일단은 그 사람이 그 속에서 빠져나오길 기다
리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어떤 순간에는 내가 그 사람이 보는 풍
경을 온전히 보고있지 못할 수도 있음을. 때문에 그 순간에, 내가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하지 못했을 수
도 있음을.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그 사람과 내가 가깝고, 내가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조언이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과 애정에서 출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상대방에게 전달
한 자신의 감정을 돌려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고통으로 무너져 있을 때, 그것은 불가능한 요구
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상받지 못한 나’에게 집중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것은 조언을 하는 나도 고통스럽
게 하지만 동시에 고통으로 붕괴된 상대방도 탈진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에이프릴이 프랭크에게 가장 많이하는 말은 ‘아무 말도하지 말라’이다. 심지어 그녀는 프
랭크에게 ‘단 1초도 조용히 있을 수 없냐’고 쏘아 붙이기까지 한다. 두 주인공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후반부,
그녀는 집을 나와 숲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새벽 이슬을 맞으며 지친 표정으로 집을 바라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에이프릴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프랭크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에이프릴에게 무언가를 이야기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 결말은 프랭크, 당신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준 지인은, 이후 다른 친구와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고 한다.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그러다 우는 지인에게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옆에 서서 어깨를 두들기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되었을 때, 그는 그랬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이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일을 겪은 후, 그녀는 일상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취해야 할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우리의 조언은 그것이 애정에서 출
발했건 진심이건, 언제든 벽에 부딪힐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꼭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사람이 괜찮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옳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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