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영화관] 진실로도 떨칠 수 없는 죄 : <어톤먼트>
다른 사람에게 해는 끼치지 말고 살자고 늘상 생각하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마음 먹은대로 잘 지켜지진 않는다. 때론 나도 모르게 실수로, 혹은 잘 참아왔던 악의에 휩쓸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만들곤 한다. 사태를 원위치 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잘못은 나의 복구 능력을 넘어서곤 한다. 물건이 부서졌다면 돈으로 물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사람 마음 속에 난 상처를 치유할 줄은 모른다. 누군가가 아파했던 동안 만큼의 시간을 다시 되돌려 주지도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속죄는 내가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비는 것으로 수렴되곤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당사자의 용서와 인정만이 내가 조금이라도 죄를 씻어냈다는 신호가 될 것이므로.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뒤늦게 나의 잘못을 깨닫거나 용서를 구하길 주저한 나머지, 더 이상 사과를 전할 수도 조차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가령 그 사람이 죽어버리거나 내가 영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는 경우 말이다. 내가 뭘 해줄 수도 없으니 이제 나의 죄는 영원히 복구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괜찮다는 말을 해줄 사람도 없으니, 나는 나의 속죄를 확인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있다간, 나는 죄책감과 자기 모멸감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딜레마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영화 <어톤먼트>는 이 같은 난국에 관한 이야기다. 이언 맥큐언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한 이 작품은 영문이 제목처럼 ‘속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대강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이렇다. 1935년의 영구, 부유한 집안의 딸인 세실리아와 집사의 아들인 로비는 방황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역시나 로비를 사랑했던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오니는 실망에 빠지고,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실수로 보낸 성적인 메시지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본 후 그를 오해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저택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범인으로 로비를 지목하게 되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만들어내고 만다.
이 일로 인해 로비는 전쟁터로 보내져 생사를 넘는 고난을 겪고,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한 세실리아는 집을 뛰쳐나가 군병원의 간호사가 된다. 그렇다면 브라이오니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벌인 일을 속죄하고자 했을까. 영화는 생에 첫 희곡을 완성하는 브라이오니의 모습을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미 열세살의 나이에 첫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두 사람에게 끔찍한 비극을 안기고 만다. 후에 등장하지만 정황 외에는 별다른 증거도 없고, 이미 브라이오니 스스로조차 진범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럴싸한 거짓말을 꾸며내 로비를 범인으로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죄를 저지른 능력으로 정반대의 일을 하며 속죄코자 한다. 거짓이 세실리아와 로비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기에, 그녀는 진실을 씀으로서 이를 만회하고자 한 것이다. 언니를 따라 간호사가 된 브라이오니는 갖은 고생을 겪지만, 그럼에도 밤이면 타자기 앞에 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 브라이오니는 세실리아의 집을 찾고 그 곳에서 자신의 언니와 로비를 마주친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브라이오니는 용서를 구하고, 모두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약속한 후 그 집을 떠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것은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덩케르크 해변에서 귀환을 기다리던 로비는 결국 쓸쓸히 죽어갔고, 그런 그를 기다리던 세실리아는 런던 폭격 도중 사망하고 만다. 두 사람은 결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브라이오니는 자신의 소설을 두 사람이 재회하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산 것으로 마무리 지었을까. 특히나 그녀는 소설 속에 등장한 모든 인물에게 실명을 부여할 정도로 진실에 집착했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이 때문에 그녀는 방송 인터뷰에서 그 결말이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허구라고 밝히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브라이오니는 이 인터뷰에서 진실의 효과는 너무도 냉혹해 그것은 더 이상 아무 의마가 없다고 말한다. 그 진실은 브라이오니가 자신의 잘못을 되돌리려는 몸부림이 될순 있었지만, 이미 죽어버린 세실리아와 로비의 삶까지도 만회할 순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보낸 편지에 언급하듯, 그가 그녀와 이어가고자한 이야기는 전달되지 못한채 비극으로 남게 되었다. 어쩌면 브라이오니의 선택은 진실조차도 효용을 다한 순간에 그녀가 내린 불가피한 결단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것이 나약함이나 회피가 아니라는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백발의 노인이 되고 병으로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이야기를 제대로 적기 위해 자신이 겪지 못한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과 마지막을 들려줄 이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평생 그 글을 고쳐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뼈져리게 내려진 원칙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원칙에 대항했고 넘어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표정 속에선 속죄한 자의 안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 주었다는 그녀의 말은 어쩐지 항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의 표정에는 해방감 보다는 회한이나 안타까움이 겹쳐 보인다. 어쩌면 소설 속에서라도 두 사람이 원했던 삶을 선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임에도, 충분한 것은 아님을 브라이오니는 알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리고 이미 완벽한 복구는 그녀의 능력을 넘어 섰음을 말이다. 어쩌면 어떤 방법으로도 완벽하게 완수할 수 없는 속죄의 속성이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끝끝내 모조리 죄를 떨칠 수 없는 이 모호한 지옥이야말로 죄 지은 자에게 내려진 진짜 형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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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머프
민우회 회원. 안 그런척 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새침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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