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매년 내가 사는 곳으로 휴가를 오는 24년지기 고향(부산) 친구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자신과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못생긴 딸아이를 데리고 와서 나의 집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고 떠났다. 아이는 정말 못생겼다. 아이의 외할머니, 즉 내 친구의 모친은 아이의 못생긴 얼굴이 애 아빠의 어글리함 때문이라는 논리적 결론에 힘입어 '고마, 종자를 배려놨다.' 라는 심금을 울리는 한 말씀을 남기셨다. 어글리한 유전자를 물려준 애 아빠는 오래 전에 친구와 이혼했다.
나는 금쪽 같은 아침잠을 설쳐 가며 친구와 그녀의 유치원생 딸래미를 여기저기 물 좋은 곳으로 실어 날랐고, 사진을 찍어 주었고, 헬로 팬돌이를 구하러 뛰어다녔고, 덕분에 나날이 진이 빠졌다. 어수선하고 대책없는 이 모녀 덕분에 나의 생활은 잠시 스톱상태에 접어들었다. 드디어 3박 4일째 되던 날, 다시 태양이 떠올랐다. 그들이 헬륨 풍선과 오른손을 번갈아 흔들며 아쉬운 표정으로 부산으로 떠난 것이다.
모녀를 수원역까지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배가 고픈것 같길래 집 근처 우동집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혼자 밥을 먹는 셈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테이블에 친구와 그녀의 아이가 함께 앉아 있지 않음을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내 옆 테이블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기미가 자욱한 얼굴에 창백하고 빈약한 발목을 가진 아줌마 두 명이 두 살에서 여섯 살 정도쯤의 사내아이 넷을 데리고 밥을 먹고 있었다. 작은 식탁에 여섯 명이 앉아 있는 광경이 어수선해 보였다. 엉성한 포크질, 끊임없이 조잘대는 네 개의 작은 입들, 엄마들의 피로한 얼굴. 마침 한 꼬마가 포크를 떨어뜨렸다. 애 엄마는 몸을 숙여 포크를 집어 들어 휴지로 닦았다. 나는 왜 새걸 달라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것은 그들에게 익숙한 어떤 불행의 전주곡이었다. 1분쯤 지나서 다른 아이가 우동그릇을 장렬하게 엎고 말았다.
우동사발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두 쪽이 났고 아이의 몸은 미역과 어묵으로 범벅이 되었다.
애 엄마들은 당황이라기 보다는 그저 죄스런 얼굴로 바닥에 흩어진 우동을 치우기 시작했다.
식당의 주인과 종업원은 이 난장판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저 냉랭하게 바라보고 지나갈 뿐이다.
테이블 밑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쓰레기를 훔치는 그들의 모습에 울분이 느껴졌다. 왜 저렇게 미안한 얼굴을 하고 몸을 구부려야 하는가? 식당 주인이란 인간들 눈에는 그게 당연한가? 아기의자라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부잣집 마나님들 같았으면 애들을 넷이나 이끌고 이런 가게에 올 리도 없을텐데...
엄마들의 손놀림은 화나도록 민첩하고 능숙했다. 대충 정리를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눈치라곤 있을리 만무한 아이들의 계속되는 조잘거림에 엄마들은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또 미안해하고 그랬다. 개중 한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튀김우동이 내 코로 들어가는지 감사하려던 것인지 모르겠다.
빤히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역시 불편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나무라는 동시에 더없이 허약한 웃음을 내게 보내 주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 웃음에 웃음으로 화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먹는둥 마는둥 자리를 떠난 그들의 테이블은 마치 장마철의 개울가 같았다. 셈을 치르던 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륵을 한개 깼는데예...'
영화 '친구'에서의 사투리는 그리도 터프하고 폼 나더니만 저 애기 엄마의 사투리는 어찌 저리도 가련할까... 주인 여자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됐어요' 이런다.
대한민국이 그리도 귀히 여기는 사내놈을 넷이나 키우고 있는 그녀들이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가. 무슨 죄 같지도 않은 죄를 져서 포크 하나 달라는 말을 못하는 건가.
엉거주춤 애들을 몰고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내 친구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나름의 인간적인 품위를 지켜 내기 위해, 내가 알지 못할 고된 몸부림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그녀도 나도 영영 알고 싶지 않았을... 그러나 이제 그녀만 알게 되었음을 숨기고픈 그런 몸부림 말이다.
그 날 오후, 내 친구는 서울역 개찰구 너머에 서서, ktx승차권 두 장을 쥐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년에 또 올게~"
아이와 함께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고단한 내일이 스치는 것을 내년에도 나는 그저 모른 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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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품위를 지키고 살아가기에 현실은 너무 허접할때가 있지요... 잘 읽었습니다..
그냥 스쳐가버렸을 작은 사건을 아주 재미있게 풀어놓으셨네여.^^ 재미있었고 공감했어여. 저도 제 아이랑 외출하면 일부러 더 오바하면서 한 궁상을 떨곤 하지요.ㅎㅎ 그리곤 세상을 향해 슬픈 한숨을 짓곤 합니다.푸하하하! 여튼...요즘...제대로 대접받고 살아가는 사람들...별루 없는 거 같아여.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