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서울독립영화제 영화 열대병.
-
열대병, 아핏차퐁위라세타쿤
영화 후반부터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까지 이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이 사람,,이 사람 천재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영화를 다시 되짚고 되짚으면서 나는 길을 잃고, 때로는 그의 필름 위에서 잠시 아니 꽤
오랫동안 멈추기도 하겠지.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120분이라는 시간 속에서 아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을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그는 천재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할까?
길을 잃다.
영화잡지에서 독립영화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영화제 중 아핏차풍위라세타쿤-
그의 특별전이 진행된다는 글을 접했다. 거기까지였다. 내게 그는 하나의 정보로만 다가왔었고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제안을 하였다. "영화 보러 같이 안갈래요?"
"어떤영환데요?" 부산에서 그의 영화를 접하고 서울에서 그의 영화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여하던 그.
그가 제안하는 영화였기에 그 영화는 하나의 정보에서 내게 다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핏차풍위라세타쿤-그와의 만남.
태국영화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었기에(솔직한 감정으로는 태국영화에 대한 편견이라기보다는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작용한 것이겠지) 영화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의 영화는 나의 편견을 철저히 무너뜨렸고, 그의 필름으로 인해 모든 것이 재구성되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다. 군인 켕과 시골 청년 통의 첫 번째 이야기.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솔직하게, 순수하게,
그리고 투박하게 필름은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태국의 전래동화를 읽는듯한 느낌의 그림과 영상 내레이션이 절묘한게 조화를 이루었던 이야기.
전자의 이야기와 후자의 이야기가 어찌 보면 맞닿아있고 또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영화가 하나의
필름 안에 담겨있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시체의 발견. 정글 속에서.
켕은 시체를 메고 동료들과 마을로 내려와 어느 시골집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 청년 통과의 만남...
아핏차퐁위라세타쿤_그의 영화는 참으로 거칠었다.(툭툭 끊기는 편집은 순간순간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쿵.쿵. 마치 장면이 내려앉듯) 영화의 시작은 여러 개의 시간이 뒤섞여있다.
시체를 메고 산길을 내려오는 켕과 켕의 동료들은 끊임없이 본부와 무전교신을 나눈다.
무전기 너머로 오가는 그/녀들의 농담 속에 귀에 꽂히는 대사 하나_
“잡음이 많이 들리는데...?”
“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당신을 향한 잡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런 실없는 농담을.
영화는 거칠고 투박했지만 두 가지 이야기는 아주 견고하게
연결되어있었다. 실없는 농담이 오가던 첫 장면.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놓던 호랑이를 따라
밀림으로 들어간 켕. 호랑이는 그림자처럼 켕을 뒤쫓는다.
내레이션.
호랑이는 병사의 통신기에서 전해져오는 신비한 소리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생각,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 감독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대답한다. 거창하고 위대한 이유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아주 사소한,
지극히도 사소한-예를 들어 무전기의, 통신기의 잡음과 같은 사소함이 사람을 매혹시키는 것이
사랑이야.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황홀경을 느낀다. 영화 속 통과 켕처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먹고, 키스를 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사랑이 짙어지면 사람들은 경계를 상실하게 된다. 자아 상실의 경계 위에서. 그렇게 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 그리고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존재하게 된다. 회피할 수 없다.
탕-
어둠이 내려앉은 밀림. 밀림 속에는 어둠과 두려움만이 존재한다.
탕-
드문드문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총소리.
네가 그를 죽여 그로부터 해방되거나 아니면 그에게 삼키어져 너를 버리거나 둘 중 하나야.
사랑의 색깔이 적갈색을 띌 때 즈음, 극단의 선택은 우리보다 먼저 기다리고 서있는 것이다.
내가 너를 삼켰으니 우리는 사람도 짐승도 아니야.
그렇게 밀림 속에 울려 퍼지는 총성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포섭되는 인간의 포효. 존재의 상실.
영화 마지막 장면,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수려한 CG작업의 결과물까지는 아니지만
아름다웠던 장면 하나.
밀림 한가운데 너른 풀밭, 나무한그루가 서있다. 나무 안으로 반딧불이가 날아간다.
나무가
수아아-
수아아-
레몬빛, 그린빛.
빛을 발한다.
밤, 풀벌레 소리-
지지직-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나무가 빛을 발한다.
수아아-
수아아-
그린빛, 레몬빛.
빛이 흘러나온다.
아름답다.
그리고
사르륵. 어둠이 내린다. 빛이 사르륵. 사라진다.
그런거겠지?
사랑은 찬란하게 아름답게 빛을 발하다,
어느 순간
사랑은 그 빛을 잃고,
빛이 바랜다.
once upon a time,
통이 버스를 타고 달린다. 마주 앉은 한 여자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던진다.
여자도 그 시선이 싫지만은 않다.
그렇게 설레는 눈빛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눈빛이 서로사이에 오간다.
붉은 신호등 버스가 멈춘다. 버스와 나란히 군용트럭이 멈춘다.
트럭안의 한 사내가 통의 뒷모습을
단번에 알아본다. 손을 뻗어 버스 창 너머 통의 어깨를 툭툭 친다. 그리고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니?
통은 대답한다.
응-
그런데 누구?
once upon a time,
옛날 옛적에 샤말이 살았으니
그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동안...
기억 속에 존재하는 동안 영원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통의 기억 속엔 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빛을 발하던 초원의 나무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빛을 잃듯이
사랑의 기억도 그렇게 점점 흐려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 또한 사랑인 것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순간 마음이 왜이리도 싸아-해지는지...
이 영화의 여운이 꽤 오래갈듯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그의 영화를 마주하고 싶다.
아핏차퐁위라세타쿤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였다.
아핏차퐁위라세타쿤
그는 관념의 시각화, 관념의 언어화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이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영화 느낌이 좋은 데요. 특히나 바람이 멋지게 전하니 소리와 빛이 멋있게 만난다니...
글게 아감독님(-_-) 참 이름이 기시당
나도 보고파라
바람의 감수성을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보고 싶은 마음이 팍팍 듭니다. 다만. 감독 이름을 외우지못할뿐.
이랑 랑 랑 여러가지 때문에 참 외우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