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소가 전하는 책 이야기],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이경자
1948년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했다.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종가집 맏며느리로 가사와 소설 쓰기를 병행하며 그 어느 작가보다 여성 문제에 관해 고민, 1988년 소설집<절반의 실패>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작품은 금세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작가 스스로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라고 표현을 할 만큼 커다란 이슈를 일으킨다. 그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던 사회적, 윤리적, 인습적인 여성 차별을 정면으로 고발,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얻으며 인기작가로 자리 매김 하게 된다. 소설가는 커피값이 아니라 쌀값을 해야 한다는 문학적 신념으로 갓 등단한 후배들 못지않은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언제나 ing형 작가로 불리고 있다. 산문집으로 <모계사회을 찾다>(2001), <남자를 묻는다>(2004), <딸아,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 마라>(2007)가 소설로는 <절반의 실패>(1988), <사랑과 상처>(1996), <황홀한 반란>(1996), <정(情)은 늙지도 않아>(1999), <그 매듭은 누가 풀까>(2003), <계화(桂花)>(2006), <천개의 아침>(2007)이 있다. 올해의 여성상(1990)과 제 4회 한무숙문학상(1999)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문학작가회의 자문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 주혼(走婚) : 모소(摩梭)족의 주혼 풍속은 나름대로 아주 엄격한 격식을 갖는다. 우선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열세 살이 되면 성인례를 한다. 성인례는 춘절이라고 하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하는데 남자는 삼촌이 여자는 아마가 해준다. 성인례를 하기 전까지 모소족의 어린이들은 양성의 구별이 불분명한 채 성장한다. 그러다가 성인례를 거치며 여자와 남자로 갈리는 것이다.(261쪽)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성을 만나도 된다는 의미다. 성인례를 했지만 아직 열세 살인 애송이 성인들은 우선 이성을 이성으로서 ‘보는’ 훈련을 거친다. 저 남자애는 어떻고 저 여자는 어떻고 하면서 이성을 바라보는 데 3년을 보낸다. 열여섯 살이 된다. 이 나이가 되면 더 이상 먼발치에서 보기만 하지는 않고 좋아하는 남자나 여자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일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3년을 보낸다. 열아홉 살이 되는 것이다. 열아홉 살이면 마침내 그동안 서로 좋아하면서 바라보고 말하고 했던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잠자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간다. 여자네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밤 열두시를 넘어야 하고 여자네 집에서 나올 때는 새벽 다섯 시를 넘겨서는 안 된다. 남자는 여자의 가족 누구의 눈에도 띄게 행동할 수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절대 비밀로 하는데 죽을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동안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질 수도 있고 더없이 각별해질 수도 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아무도 모르게 관계를 청산하면 되고 그렇지 않고 사랑이 온전한 것을 확인하게 되면 마침내 주혼의 관계를 맺는다. 주혼의 관계를 맺을 때는 남자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여자네 집으로 간다. 남자는 집 앞에 서서 기다리고 친구가 먼저 여자네 집으로 들어가 기다리는 남자의 ‘신상’에 대한 설명을 여자네 가족에게 충분히 한다. 이런 설명을 다 듣고 여자네 가족이 만족해하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여자네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여자네 집에서 승낙하면 남자는 여자네 집으로 드나드는 데 자유로워진다. 여자네 가족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있고 한밤중이 아니라 늦은 저녁에 여자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해가 뜬 아침에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남자는 아이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과 아이의 어머니가 몸조리하는 데 도움이 될 음식을 잔뜩 준비해서 여자네 집으로 가 큰 잔치를 베푼다. 동네 사람들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인 것을 정식으로 알리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물론 아이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평생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함께 산다. 하지만 그는,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여자형제들, 그리고 여자형제들이 낳은 자식들과 함께 산다. 여자가 자신을 무능력하거나 성격적인 결함을 들러 주혼 관계의 청산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밤이면 여자네 집에 가서 잠자리를 함께하고 아이들과 식사도 하면서 지낼 수 있다. 주혼 관계의 청산이나 해소는 그것이 성립할 때처럼 여자에 의해서이다. 여자가 남자와 주혼 관계를 청산하는 이유는 첫째가 성품이 포악하거나 게으를 때다. 이때 여자는 남자에게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이것이 두 사람의 관계를 해소하는 유일하고 완벽한 방법이다.(262~264쪽)
생각해 볼 문제 ☞ 주혼이라는 남녀관계가, 한 남성의 개인 소유처럼 되어 있는 동양의 일부일처제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모욕적이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오해와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런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주혼을 ‘혼외 정사’나 ‘프리섹스’로 연상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261쪽)
☞ 장사꾼들은 모소 사람들로부터 꺼무 여신을 떼어내서 한순간 풍요로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20년도 지나지 않아 모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것. 아주 싼값에 자신들의 정신을 팔아먹었다는 것. 탐욕과 이기심의 속도에 휘말려 생명은 지치고, 그 지친 생명을 살려낸다는 야릇한 처방들의 소용돌이에 자신을 내던지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가엽고 어리석은 사람들.(110쪽)
☞ 중국 정부는 1966년부터 1976년 사이 10년 동안 모소 사람들의 혼인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행정적으로 강화시켰다. 그 행정력은 모소 사람들의 모계혈통을 뒤집지 못해 이렇게 한 마을에 한두 집 정도가 중국식 일부일처제를 닮고 있다.(190쪽)
되새기고 싶은 구절들
화목과 평화. 안정과 안식. 아아 ‘가정’은 그런 곳이어야 하리라. 아버지가 없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아버지가 없어도 이렇게 살 수 있네요.” “어떻게?” “좋잖아요!” ...... “정말 아버지 없는 게 좋아 보여?” “네!” “그렇지. 한국에선 아버지가 없으면 가족들이 즐겁게 지내다가 아버지가 들어오면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하는 집들이 꽤 있잖아.” “그러니까 아버지가 없는 게 좋아요!” (이상 대화문만 발췌, 75~77쪽)
도균. ‘엄격하다’는 말속에 숨은 폭력성 때문에 남자로 성장하기 싫고 어른이 되는 게 두려운 남자일지 모른다. 가부장 사회는 남자를 이렇게도 ‘죽인다’.(78쪽)
아버지의 기분에 따라 우리는 모두 기쁘고 슬프고 불안하고 행복했다. ...... 그런 아버지가 ‘없어지기’를 얼마나 속으로 바랐던지. 그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살해 버렸을 때 나는 내가 그의 죽음에 연루되었다는 걸, ‘자살방조죄’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무절제, 그의 ‘권력’이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가 남자로 태어나 자신에 덧씌워진 그 권력의 무게 때문에 평생 방황했다는 거. 이제 이해하지만, 다 슬프고 서러울 뿐이다.(121~122쪽)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으로부터 떠나 전혀 다른 집으로 여자가 시집을 가는 구조 속에서 여자는 제각각 나름의 ‘문화충격’에 시달릴 것이다. 이 충격이 온전하게 질서를 잡지 못하거나 질서를 잡는 과정이 며느리에게만 가혹할 때, 결국 여자가 ‘항복’하거나 ‘기권’하거나 ‘포기’했을 때, 그 평화와 안락함은 ‘한(恨)’으로 변질되어 여러 가지 양태의 사회문제를 만들어낸다. 당당하고 발랄하게 살지 못하는 어머니, 자기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한 어머니, 비굴하고 비겁한 어머니, 교활하고 간교한 어머니, 마음속 깊은 데에 원한을 품고 사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성장하는 자식(사람)을 생각해 보라. 모소 사람들에겐 남자만 있고 아버지는 없다. 그 남자는 어머니의 아들이며 한 여자의 연인이며 모든 여자의 손님이며 친구이며 그 사회의 구성원이다. (162쪽)
집안의 어른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가장’인 것이다. 그러나 남자가 가부장인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지는 권한이며 권력으로 비치는 바로 그것, 가정과 가족에 대한 ‘지배와 통제’를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척박한 환경과 열악한 조건에서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기르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한다. 자식들의 어머니에 대한 존중과 깊은 사랑은 바로 그런 어머니의 삶 때문이다. 어머니가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진다면 바로 그 희생성에서 비롯한 것이다. 모소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고 위협적이고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무섭거나 무능력한 아버지가 아니며 불행하거나 슬프거나 원한을 품은 어머니가 아니며 단지, 자연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을 섬기고 자연의 마음을 알려고 늘 자연에 마음을 열고 귀기울이며 산다.(164쪽)
햇볕에 한껏 그을린 얼굴. 그러나 옷에 감싸인 몸매는 아직 탄탄하게 보이는 그 중년 여자들. 남자를 깊이 사랑한 적이 있거나 사랑할 줄 아는 여자. 한때 격정과 이별의 경험도 했을지 모르나 그것이 그들 삶에 결코 상처이지 않은 사회.(241쪽)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저도 여울님 보고 싶어요~~ 멋진 가을날에 꼭 얼굴 봐요~
체리향기님~ 아무래도 제 컴퓨터는 햇가을에 잘 익은 '꿀밤' 한 대를 줘야 할 것 같아요~^^
신기루님~ 그나마 글자는 크지요 ^^?
행님 수고많으셨어요~참석못했지만 자료만 읽어도 한권읽은기분이예요~! 전 남자를묻다 반정도 읽었는데! 이책이 더 좋네요^^;; 나 왜 이케 다들 보고싶지??
그래도 글자가 크니까요! 으하하.
약 좀 주세요. 알약이나 다른 약도 괜찮구요. MB바이러스가 침투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으하하.
보기 좋게 편집하려고 했는데, 잘 안되요...=.=;...
줄 간격이 너무 촘촘해서 읽기가 불편할 것 같아요. 그래도 우선 이렇게라도 올립니다~ 제 컴퓨터가 요즘 신종플루에 걸렸는지, 상태가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