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여소가 전하는 소설 이야기]박정애, 물의 말
세여소가 전하는 소설 이야기 10번째, 박정애의 '물의 말'입니다.
박정애
인하대 인문대학원 현대문학 교수. 98년 문학사상 신인공모 중편 <에덴의 서쪽>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2000년에 같은 제목의 개작장편을 발표. 단편소설<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영><천사의 도시><어느 사회주의자의 연인>중편소설<노랫가락>을 발표했다. “살아가기와 소설쓰기의 기쁨과 고통을 오롯이 즐기면서 한국문학의 등치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힘. 세여소에서는 남도에 태맥산맥이 있다면 경상도 말을 잘 살린 것은 ‘물의 말’이라고 보고(행님의 평가) 그 필력에 놀람.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여성의 역사
권약국의 두 번째 처인 ‘님이’를 중심으로 어머니 반야월댁, 그의 언니 연이, 그녀의 딸 윤아의 이야기가 흐른다. 이들 곁에서 첫 번째 처의 딸 권예지와 윤아의 관계 등등 시간의 흐름은 거꾸로 갔다 순차적으로 갔다하면서 여성 3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담고 있다. 오래된 산이나 바위, 우물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힘찬 서사로 흘러간다. 이 소설의 여자들은 대개 남성(법의 세계)에게 속아 팔려가거나 성폭력을 당해 결혼을 하고 맞으면서 아이를 낳고 혼자서 딸을 낳고 키운다. 출산을 할 때 여자는 어떤 누구도 그것을 함께 하지 못하므로 고독을 경험한다. 상처가 새겨진 딸의 몸은 강에 씻기고 그 물에 자기 눈물도 함께 흐른다.
달밭골 여자들의 정치적 성향
구조에 저항하는 개인의 사투는 여러 소설에서 반복되어온 모티브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 억압에 저항하는 여자들의 방식은 무엇인가? 지배당할수록 가면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본다. 상상하기 어려운 힘이 응축되기도 하고. 이 여자들의 성향은?
1. 반야월 댁: 방씨는 명동에서 전방을 하는 부모 밑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애지중지 키워졌다. 그러나, 정신대에 팔아먹으려는 사람한테 속아 부산까지 따라갔다가 배탈이 나서 어느 여인숙에 버려진다. 못 팔아먹은 게 아까워 장사꾼은 방씨 처녀를 성폭력 한다. 세월이 흐르고 무던한 촌각과 결혼을 하고 첫날밤 남편이 미군 총에 맞아 죽는다. 그래서 멀고 먼 달밭골까지 시집을 온다. 그녀는 기질이 약하고 마음이 순해서 무서움이 많다.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그들 앞에서 군말을 안 하고 순종하면 된다는 것을 익히고, 그것을 체화한다. 그녀는 별로 말이 없고 울음도 소리 내서 울지 않는 법을 익힌다.
2. 영진어미: 그녀는 전라도 여자이지만 서울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녀의 남편인 반야월댁의 첫째 아들과 뜨겁게 몸으로 대화한다. 시아버지의 브래지어가 뭔지 모르는 촌스러움은 적극적으로 퍼뜨려서 망신을 주고 남편과 시아버지에 대꾸하고 욕도 하고 그리고 얻어맞는다. 그리고 또 대꾸하고...소위 여우같은 여자,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그녀의 방식으로 택한 것.
3. 권예지: 권예지는 3대가 의원인 권개동의 첫째 딸로 적당히 섹시하면서 정숙하고 아름다운 여자이다. 약사라는 안정된 직업과 기독교 정신을 체화해 순종하는 여성, 가정은 운영하고 관리하는 여성으로 실제 4인 가족 류의 주부모델이 된 적도 있다. 그녀는 육아와 가사도 과학이다는 생각으로 과학적 모성을 실천하는 현모양처를 실천한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로 이 모든 것은 거품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변혁하는 과정에서 윤아와 만나 친구가 된다.
4. 연이와 필남: 연이는 반야월댁의 큰 딸로 밭에서 일하다가 장돌뱅이 최가에게 성폭력을 당해 그와 어쩔 수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 4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폭력과 강간 사이에 출산이 있을 뿐인 삶을 견딜 수가 없어진다.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그녀는 맘산을 향해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을 한다. 그녀는 후일 물의 신이 되어 달밭골 우물에 나타난다. 한없이 약했고 짓밟혔지만 죽어버리면서 어쩌면 가장 강하게 저항했던 인물.
유사하게, 님이의 딸인 필남이가 있다. 필남은 ‘고추 달리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극심한 고민을 했고 동생의 고추에 자기 몸을 대어 볼만큼 고추를 갈망하게 된다. 그녀는 친구들이 고릴라 인형을 선물할 만큼의 외모와 골격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써클 선배를 몰래 사랑하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학교 건물이 봉쇄되던 날 생리통에 몸부림치다 투신한다. 연이와 필남은 목숨을 값치르긴 했으나, 연이는 바람 신이 필남은 강에 뿌려져 물신이 된다.
5. 윤아와 님이: 님이는 작가가 실존하는 신처럼 그리는 대안이다. 강한 생명력으로 저항하고 욕하고 꺾이지 않으며 계속 살아남고 먹고 섹스하고 또 살아간다! 언니 자식을 포함 인간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한편 달밤에 홀딱 벗고 목욕을 즐기고 자신을 때리는 오빠를 팔목을 물어뜯어버린다. 윤아는 연이가 남긴 딸로 남자들에게 쿨하며 치대에 가서 열심히 일해서 돈으 모아 프랑스에 가고 도착해서 멋지게 헤어지자 전화하는 여자다. 권예지의 친구가 되어주고 보육원 아이들의 선망이 되는 존재. 윤아와 님이는 굴복하지 않는 여성들.
입에 착착 붙는 구어의 힘
이 소설은 똥개에게 고추를 잘리는 ‘병식’의 이야기. 세월로 살아온 부부가 죽기 전에 개떡을 먹이지 못하고 죽어 애닯아 하는 장면이 정말 ‘재미있게’ 쓰여 있다. 슬픈 존재 필남도 그녀의 외모와 인생 초년기의 역정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정말 웃긴다. 또 생전 못 들어본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도 생생해 잘 못 알아듣는 말은 있을지언정 낄낄거리고 웃게 만든다. 이 소설은 읽은 후에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있는데 - 세월, 습관 류들.
나이만큼 깊어지는 인간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게 됐달까.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은...사람은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그런 류의 것들은 습관으로 설명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물의 말
인간의 몸과 가장 유사한 물. 눈물 흘리는 존재들의 인정받지 못한 모든 감정들이 물의 말이 되어 흐른다. 법과 남성의 세계에서 생략된 것들이 쏟아 놓은 것들이 물의 말. 물의 말은 곧 여성의 역사, 여성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보편적 여성성을 '물'이란 상징물에 융해시키고 있다. 작품 속에서 물은 등장하는 여성들의 눈물, 아픔이고 두 번째는 달밭골의 '강물'이다. 님이의 어미가 상한 몸을 강물에 씻었고, 님이의 시모도 대를 끊은 죄의식을 그 강물에 던졌으며, 님이의 딸은 대의를 위해 죽어 그 뼛가루가 강물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강물은 외부의 오염물에 끊임없이 더럽혀져 상처받는다. 그러나 그 아픈 강물은 모든 목숨붙이의 근원으로써 맥맥히 흐른다.
님이처럼 강한 여성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 자연과 동일시되는 구조 또한 조금은 지루할 수 있지만 이렇게 장하게 견디고 살아온 존재들에게 어깨를 다독이고 안아주고 싶은 맘이 드는 건 세여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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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매력있는 책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