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안츠 제일생명 사내부부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판결 평석
대한변협신문 2002. 08. 12. 월. 10면
<판례평석>
사내부부 중 여직원을 의원면직한 구조조정의 정당성
(대법원 2002년 7월 26일 선고 2002다19292 판결)
김선수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Ⅰ. 사건의 개요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위기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의 방법으로 다양한 형태의 인력감축방안이 시도되었다. 원칙적인 인력감축방법은 근로기준법 제31조의 요건과 절차를 구비하여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하는 것이나, 대부분의 회사들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의 반대나 기타 사회여론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하여 워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대상자를 미리 선정한 후 명예퇴직 또는 자진퇴직하도록 종용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한편, 사내부부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제형편이 낫다는 이유로 부부 중 1명, 특히 여성이 사직하는 것이 동료근로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조정방안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피고 회사는 생명보험 주식회사로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사내부부 중 1명, 특히 여직원들에 대해 사직을 종용하여 사직서를 제출받았다. 그 과정에서 피고회사는 여직원들의 남편들과 여직원들 본인에게 사직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사직을 종용하였다.
그 결과 피고 회사의 본사 및 전국 각 영업소에서 근무하는 사내부부 88쌍 중 86쌍의 한쪽 배우자가 모두 사직서를 제출하여 퇴직발령을 받았는데, 86명 모두 여사원이었다. 퇴직사원들은 피고 회사의 취업규칙 소정의 퇴직금 이외에 아무런 금원도 수령한 바 없었고, 피고 회사가 퇴직사원들의 배우자들에게 인사상의 이익을 주 바도 없었다.
Ⅱ. 판결요지
대상판결은 우선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고 이를 수리하는 의원면직의 형식을 취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경우, 사직의 의사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 제출하게 하였다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판결은 나아가 이 사건에서 "원고들을 비롯한 퇴직사원과 그 배우자들로서는 퇴직 권유 또는 종용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경우 입게 도리 불이익이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들에게까지 미칠 경우에는 그 압박감이 가중되고 지속될 것이며, 그러한 권유 또는 종용이 계속 반복될 경우에는 더 이상 저항하여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상황하에 있는 원고들에 대하여 피고 회사의 중간관리자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행한 퇴직권유 또는 종용행위는 원고들에 대하여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피고 회사의 강요행위라고 인식될 것이어서, 사직서를 제출한 대가로 별도의 이득도 얻지 못한 원고들이 퇴직을 원하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표명한 사직의사는 피고의 강요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내심의 효과의사 없는 비진의표시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는 의원면직의 외형만을 갖추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피고 회사에 의한 해고에 해당하고, 나아가 원고들을 해고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고 정당한 징계절차를 밟아 해고하였다거나 근로기준법 제31조에 따른 정리해고의 요건을 갖추었다는 점에 관하여 피고로부터 아무런 주장, 입증이 없으므로 위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당연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Ⅲ. 평석
1.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근로자가 사용자의 권유 또는 종용에 의하여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용자가 이를 수리한 경우 그 외형적인 형식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해고로 볼 수 있는 가 하는 점이고, 둘째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으로 사내부부 중 1명, 특히 여성을 설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2. 실질적 해고에 해당 여부
근로자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사용자가 이를 수리하여 의원면직한 경우 이를 해고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대법원은 "사직의 의사 없느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 제출하게 하였다면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이어서 해고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정한 경우에 사직의삭 비진의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로 되거나 또는 강박이나 기망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취소할 수 있어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해고제한의 법리를 잠탈하기 위한 사용자의 편법적 시도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대법원은 위와 같은 실질적 해고의 법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 해고의 법리는 의사표시 하자의 법리와는 다른 것이다. 실질적 해고의 법리는 사용종속관계를 본질로 하는 근로계약 관계를 규율하는 노동법의 적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의사표시 하자의 법리는 추상적으로 평등한 인격체를 전제로 하는 시민법의 적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근로관계의 불평등성에 기초하여 근로관계에서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규율하는 것이 바로 노동법인 바, 근로관계에서는 시민법보다는 노동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사직의사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 제출하게 하였는가"라는 점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결국 법원의 재량에 귀착된다.
대상판결의 경우에도 1심이 2심 및 대법원과 다른 입장을 취하였고,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한 농업협동조합중앙회(농협)의 사내부부 여사원 명예퇴직 관련 소송에서 2심은 "원고들이 퇴직원을 제출할 당시 선뜻 퇴직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여 퇴직원을 제출하기에 이른 것"이므로 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2년 5우러 17일 선고2001나1661판결).
실질적 해고 여부의 판단기준은 사직서 제출이 근로자에 의해 진정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사직서제출대상자로 선정된 것이 근로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자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구조조정의 방법으로 사내부부 가운데 1명, 특히 여직원이 사직하는 것으로 사용자에 의해 방침이 결정되고, 그러한 방침에 따라 근로자가 사직을 권유 내지 종용받았다면 이는 실질적 해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퇴직금 이외의 금원을 수령한 바 없다고 설시하고 있고, 농협사건의 경우 퇴직금 이외에 명예퇴직금이 지급되었는바, 명예퇴직금이 지급되었는지 여부가 해고 해당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지 여부는 근로자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예퇴직금이 지급되었는지 여부는 해고 해당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다.
3. 경영상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의 정당성 문제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경영상 해고의 한 요건인데,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으로 사내부부 중 1명(특히 여성)을 설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 문제로 된다.
대상판결의 경우 피고 회사는 경영상 해고의 요건과 절차를 전혀 준수하지 않고 단지 여직원들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에만 주력하였기 때문에 원고들에 대한 퇴직이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순간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의 정당성 여부는 판단할 필요조차 없이 해고는 무효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농협사건의 2심 판결은 "피고가 정리해고를 실시할 경우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경제적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부부직원의 일방을 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리기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판단되지는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부부직원이라고 해서 일방의 해고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덜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또한 부부가 한 직장에서 같이 근무한다는 것만을 이유로 우선적인 해고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혼인과 가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사실상 여성직원을 퇴직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성차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4. 대상판결의 평가
대상판결은 사내부부 중 1명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으나, 구고조정의 방편으로 이루어진 사내부부 중 여성에게 남편에 대한 불이익을 무기로 해서 사직할 것을 종용하여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수리해서 행한 퇴직처분을 실질적 해고로 보아 무효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근로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형태를 취한 경우 실질적 해고의 법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바, 이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상판결을 계기로 해서 사회 구석구석에 잔존해 있는 성차별적 요소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법원이 보다 적극적인 법해석론을 전개해 주기를 기대한다.
2002.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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