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순간의 힘, 첫사람
2015년 10월 29일은 저의 두번째 공개재판이 있던 날 이었습니다. 첫 번째 공판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 하였다는 말을 듣고 답답한 마음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피해자를 위해 함께 가슴 아파 하고, 함께 고민하고, 또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온전히 전달됐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 생소 했던 법률용어와 제도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주시며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조력하는 첫사람 활동이 있다는 것을 안내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선뜻 나설 수 없었기 때문에 성폭력에 공감하는 첫사람이 함께 재판에 동행해 주셨습니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마주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함께 자리를 채워주신 든든한 '첫사람' 덕분에 괜히 나 혼자 심각하게 고민했다 싶을 정도로 의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당일 첫사람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은 법정에 미리 오셔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고, 법정에 들어가자 마자 재판에 대해 메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와 필기도구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당일 피고인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판사님이 현장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이렇게 재판이 끝나는 순간까지 첫사람은 제 옆자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사건 이후부터 현재까지 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확한 물적증거(CCTV)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수사로 진행되어 신변 보호를 받지 못한 저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 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불구속수사 기간 동안 받았던 심리적 고통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확실한 증거가 있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신변을 위해 구속 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 졌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직까지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날 함께 모니터링 해주신 첫사람의 존재가 판사님의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이루어 질것이라 생각 했던 피해자 보호에 대한 부분들이 법이라는 틀 안에서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거나, 혹은 이미 있는 제도 조차 빈 껍데기 같은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여러 지원센터들이 있었지만, 실제 문 두드렸을 때 형식적인 절차와 반응에 오히려 더 소극적이고 자신감을 잃어 가던 중 다행히 민우회와 첫사람을 알게 되어 이렇게 재판 모니터링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습니다.
사건의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성추행이라는 특수성에 의해 피해자가 당당히 나설 수 없는 현실에 또 한번 피해 아닌 피해를 입게 되는 현 사회에서 첫사람의 재판동행은 피해자의 인권을 되찾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입니다. 아직 사건이 종결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번에는 직접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증인으로서, 피해자로서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입증하고 피고인이 충분한 죄 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사건 후 받은 상처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힘 낼 수 있도록 응원 해 주신 덕분에 이만큼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늘 ‘함께’ 라는 참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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