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장혜숙 |
09.09.03 14:03

명숙언니.. 오래전 상근하실때 언제나 부드럽게 환하게 웃으시고 조근조근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오랫동안 잊고 살았었나 봐요. 언니도 민우회도.. 언뜻 아프셨다는 얘기만 들었던 것 같았는데.. 갑작스런 소식에 참 가슴아프고 한동안 멍했네요.. 진작 한번 찾아뵐걸 하는 뒤늦은 후회에... 제 생활에 치여 장례식장에도 못가보고.. 너무 죄송해요.. 하늘에서도 늘 환하게 웃고 계실것 같아요.. 찾아뵙지 못해 정말 죄송하구요..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화창 |
09.09.03 08:06

그녀가 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언제한번 문병가야지~했습니다.
언제나 의연하게 우리를 맞이할 것 같던 그녀의 부고소식에 황망할 따름입니다..

혹여 사진으로나마 그녀를 대하고 눈물이 쏟아지면 어쩌나 하며 울보인 나를 다잡으며 장례식장을 들어섰는데..어찌 이상하게 눈물이 안나오더이다.
그냥 어디선가 그녀가 뛰어나와 같이 웃으며 수다를 떨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와 같이 함께 했던 많은 동지들이 있어 안심이 되고 든든합니다.

아마 이시간 정말 생을 마감하고 있겠군요.
맑은 영혼.. 영원히 해맑은 웃음으로 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굽어보며 변함없이 보살펴 주실것만 같습니다..
고마워요.고마워요.

양희 |
09.09.02 23:31

80년대 말, 파릇한 20대에 민우회에 들어와서
황무지같던 여성운동판에 돌고르고 숨고르고 달려온 20여년.
아직도 그녀는 할 것이 참 많은데, 할 말이 참 많은데,
만나야 할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녀가, 갔다.
조그맣던 몸뚱아리보다 더 작은 영정사진으로 남은
그녀의 빈소에 흰 국화를 내려놓으며
종일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남은 이들이 너무 많이 슬퍼하면
그녀도 좋은 곳으로 가기 힘들어 한다고.
그래서 울지말고 즐겁게 보내줘야한다고.
여성장을 치르는 이들은 서로를 다독였다.

어젯밤 빈소를 다녀온 후
꿈 속에서는 오랜만에 민우회 그녀들과 해후했다.
그 속에서 나는 종종걸음으로 일하고 있었고, 즐겁고, 신이 나 있었다.
이 또한 가는 그녀가
서글퍼하는 나에게 준 선물.

몇 년 전
첫 수술에 들어가기 앞서 보냈던 그녀의 메일을 찾았다.
메일 속 그녀는 아픈 자신보다도 남아있는 이들을 걱정했었다.
이제 고통없는 그 곳에서 걱정없이 지내시기를.
다만 먼저 간 선배로 남은 이들을 기껍게 기다려주시길.

---------------------------------------------------------------------------
오늘 저녁 사무처 사람들과 저녁을 먹었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헤어지기 얼마전에 정은숙이 흰봉투를 내밀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있다가 그 봉투를 열어봤습니다.
한편으로 고맙고 또 한편으론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선뜻 열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애정어린 맘이 담긴 편지글을 읽기가 이번엔 더 부담스러웠나봅니다. 생일이나 2000년 안식휴가를 쓸 때 받았던 글들과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고맙습니다.
다양한 필체와 색깔로 쓰여진 그 편지글을 읽으며 난 참 행복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렇게 날 아껴주는 사람이 많다니... 이걸 어쩐다나? 어찌 갚아야 하나?

넘 걱정마세요.
자궁에 혹이 있고 적출을 해야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땐
처음엔 눈물도 나고 출처가 불분명한 원망도 있었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많이 정화가 되었어요.
여성에게 자궁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맹장수술과 비슷한데 왜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덕분에 20여년 줄창 붙어살던 술, 담배와 이별을 해서 좋더군요.

콘서트로 바쁠 때 자리 비우면서 여러사람에게 민폐 끼쳐 죄송하구요...
수술 잘 끝내고
2주 후에 건강하게 복귀하겠습니다 .

아침 저녁 일교차가 심한데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2004-08-25 (수) 최명숙
-------------------------------------------------------------------------

타기 |
09.09.02 01:10

명숙언니, 편히 쉬세요. 늘 따뜻했던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많이 보고 싶을거에요.

|
09.09.01 19:31

최명숙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이주 전 직접 통화를 했습니다. 현대아산병원에 계실때
문병간다고 했는데 ....오지말라는 전화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냥 갈걸 후회가 막심합니다..
80년대부터 친구요 동지로 지내오면서 최명숙선생님처럼 맑은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말을 앞세우지 않고 묵묵히 이 나라 여성운동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품고 사셨습니다.

저는 제 친구중에 최명숙선생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또 자랑하였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프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암을 잘 데리고 놀아야 할텐데 하는 말만 나누곤 하였습니다.

늘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비범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착하디 착한 마음을 늘 어려운 분에게 겨냥하면서 살아 온 동지입니다.

암치료를 받으면서 여성민우회를 못나가게 된것을 가슴아파 하였습니다.
암투병중에도 대학원에 진학 공부하면서 미래 여성의 섦과 정책에 대해 천착해 온
여성일꾼이었습니다.

20년전 실무자로 여성민우회 일을 할때 우연히 지하철안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인데 여성민우회 재정마련을 위해 포도즙을 만드느라 늦게 집에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기억납니다.

작년인가요 집에 들려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내가 따뜻한 밥 한끼 사주지 못하고 아픈 명숙이가 만들어 준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이것저것 내가 하는 일...걱정해 주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최명숙 선생 ....미안해...

맑은 영혼 감싸주지 못해서 참 미안해..

당신이
이 세상과 여성 그리고 힘든 분들을 감싸 안아 주었듯이
그렇게 살도록 노력할게....

덧없이 가는 명숙이가 너무 그립다...

전화통화할때 어서 와서 힘좀 주라고 하지 그랬니..

너무나 따뜻한 동지를 떠나 보냅니다.
저를 위로해 주던 그 맑은 영혼을 보냅니다.

미안하고 사랑한다 명숙아...

편히 쉬기 바래...

2009년 9월 1일 가을날 최명숙 선생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