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안녕한 사회를 위한 시민사회의 다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신년사
갑오년 청마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의 평안과 행복을 소망합니다.
하지만 새해 새날을 맞는 우리 마음은 여전히 어둡고 무겁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가득한 불의와 횡포, 갈등과 퇴행, 절망과 탄식 때문입니다.
지난 1년 여 동안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정의는 크게 후퇴하였고 갈등과 불신의 골은 깊어졌습니다.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개입과 선거부정, 그리고 이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정권의 노골적인 진실 은폐와 수사방해 행위로 인해 이 나라의 민주헌정질서는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현 정권과 집권여당은 국민들의 정당한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방편으로 종북몰이와 공안탄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공권력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초래함으로써 우리사회 통합의 기반을 그 근저로부터 뒤흔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항상 강조하는 ‘법과 원칙’은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거대한 범죄행위에는 적용되지 않고, 도리어 시민들과 양심적인 공직자들의 입을 틀어막거나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침탈하는 일에 남용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민주헌정질서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국가권력의 선전포고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여 동안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더욱 깊은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노인공약, 보육공약,의료보험 공약이 크게 후퇴하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시절 주장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실종되고 규제완화, 민영화, 부동산 경기부양이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환경 분야 공약이나 개선의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원전추가건설 계획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공약은 사실상 더 많은 원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4대강 파괴에 대한 책임추궁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극소수 재벌대기업과 특권층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갑을관계의 먹이사슬 속에서 고통당하는 대다수 서민들, 자본과 공권력의 횡포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내몰리는 수많은 생명들의 절망과 탄식이 전국방방곡곡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시민사회 내에서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을 부정하는 퇴행적 시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베 현상, 차별금지법의 좌초와 성소수자와 이주자에 대한 공격, 교학사 교과서 검정통과 논란은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스스로 모독하거나, 주권회복과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의 성과를 폄훼하고 심지어 최소한의 기초적인 사실관계마저도 부정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정권과 자본에 종속당한 언론과 방송이 조장한 매카시즘도 이 퇴행을 가속화했습니다.
역사의 퇴행과 왜곡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차원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정전 60주년이었던 지난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과 상호무력시위가 유래 없이 고조되어 6.15선언의 마지막 보루역할을 하던 개성공단마저 일시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습니다. 한편, 주변국간에는 한반도 문제와 영토분쟁을 구실삼아 미중간의 패권경쟁과 군사적 대결양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익은 이 틈을 비집고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북핵문제에 대응한다는 구실로 한미일 군사협력도 덩달아 빠른 속도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강대국의 패권경쟁에 휘둘려 한반도가 대리전장이 되었던 냉전시대의 아픈 역사가 다시 재연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공약한 한반도 동북아 신뢰프로세스는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근본적인 평화방안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대화는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은, 평화를 원하면서도 대결을 강요받는 한반도 주민들이 값비싸게 치르고 있습니다.
갑오년 새해에는 이 모든 불의와 횡포, 역사의 퇴행을 성숙한 시민의 연대로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 생명과 평화를 향한 거대한 전환의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지난 연말 청년들로부터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정글의 질서나 불의한 권력의 횡포 앞에 더 이상 주눅들거나 순응하지말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자고, 우리 모두의 존엄과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역사왜곡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으려는 학교구성원들의 자구적 노력들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비이성적 종북몰이 속에서도 진실과 정의,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농성장에서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현장에 이르기까지 따뜻한 연대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강대국의 패권에 휘둘리지 말고 남과 북이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2014년 갑오년을 역사의 퇴행을 막고 민주주의와 정의가 승리하는 해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기관의 대선불법개입 사건과 지난 1년간의 지속되어온 은폐축소 수사방해의 진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김없이 규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수행할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반드시 도입해야 합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종북몰이와 공안통치를 종식시키고 공권력의 남용을 심판함으로써 법과 제도가 정권안보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위해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과 노동자들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단결의 자유를 억누르는 각종 악법과 관행에 치열하고 끈질기게 맞서 민주주의의 흔들림 없는 기초를 확립해야 합니다.
2014년 갑오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향한 시대의 흐름을 복원해야 합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지난 대선에서 형성된 사회적 합의일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는 공공부문 민영화를 저지해야 합니다. 재벌체제를 개혁하고 중소상공인과 노동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도록 경제민주화를 본격화해야 합니다. 노인과 여성, 아동과 장애인 등 모두를 위한 복지를 요구하고 이를 위한 조세기반을 확충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대다수 서민들을 위해 작동하도록 감시해야 합니다. 특별히 실업으로 고통 받는 청년들에게 정당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2014년 갑오년, 생명과 평화,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전환을 시작해야 합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이에 맞서는 주민들의 환경권과 생존권을 손쉽게 강탈하는 국가공권력과 자본의 횡포가 더 이상 합법의 외피를 쓰지 못하도록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낡은 법제와 관행을 개혁해야 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혹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편견과 싸우고 낡은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이미 시작된 탈핵사회로 전망을 보다 굳건히 하고 확고한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핵무기의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고 낡은 군사주의와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 화해와 협력, 한반도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지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2014년 갑오년, 풀뿌리로부터 시민주체 시민대안의 참된 변혁을 본격화해야합니다. 독점된 재벌대기업이 지배하는 약탈적 경제, 유권자 위에 군림하는 중앙집권적 정치, 독점된 언론권력에 지배당하는 공론장에 대한 대안은 이미 풀뿌리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마을로부터 시작되는 협동경제, 대안경제, 얼굴을 맞대고 풀뿌리로부터 시작되는 참여정치, 생활정치,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민들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미디어의 실험을 통해 우리사회를 바닥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참된 변혁이 갑오년 청마의 해에 본격화되어야 합니다.
그 길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겸허하고 치열하게 행동하는 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2014. 1. 10.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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