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언론악법 원천포기 확약 후 등원이 민주당의 살 길이다.
언론악법 원천포기 확약 후 등원이 민주당의 살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과 조문 행렬,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6월 광장을 달구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불을 붙이고, 물러앉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6월의 열기를 증폭하는데 가세했다. 민주당은 탄핵 후 처음으로 광장에서 정치적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촛불 이후 1년간 저항을 잠재워왔던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 공세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할 정치세력의 힘은 미약하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당의 수적 열세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대중행동을 강력하게 이끌어갈 연대운동의 질적 변화도 당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틈에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차 미국을 향했다. 양국은 ‘한미동맹 공동비전’에 동맹국이 적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위협을 제거한다는 ‘확장 억지력’을 명문화하고, 한미FTA의 진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회담 결과를 내놓았다. 남북 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대한 이같은 우익적 처방은 한반도 위기를 심화할 뿐 아니라 보수세력의 정치적 결속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실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미국 방문을 끝낸 뒤 귀국해서도 많은 의견을 계속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념.지역갈등, 권력형비리, 정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근원적 처방’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의 개편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행정구역 개편과 맞물린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등이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미디어법 국회 통과와 4대강 살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국민위)의 파행은 이를 예고하는 단면이다. 물론 지난 운영 과정을 돌아볼 때 예고된 일이기도 하다. 국민위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은 미디어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가운데 언론 환경 재편을 위한 억지 주장을 반복하고, 국민의견 수렴을 위한 여론조사 방안을 끝끝내 거부했다. 근거 제시와 공감을 마련하려는 자세, 차이를 좁혀내며 차선의 방안을 찾는 노력 따위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시시때때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태도와 부실한 공청회 운영 및 전체회의의 일방적 운영 등으로 결국 사회적 논의기구라는 미발위의 구성 취지조차 희화화하고 말았다. 이같은 국민위의 파행은 엠비식 통치에 변화가 없는 한 앞으로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성립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국민위의 파행이 귀국 후 이명박 정부가 펼칠 정치 행보를 예고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의 등원 압박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여의도연구소의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를 들어 민주당이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조문정국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거리정치, 광장정치에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몰아세웠다. 지난 1년 1개월 동안 민주당이 약 117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등원을 거부했고, 한미FTA와 언론악법을 놓고 19일간 점거 농성을 벌인데다 조문정국을 맞아 16일째 등원을 거부하는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국회 직무 포기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며 공세를 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공세를 펴는 배경에는 조문정국의 마무리와 공권력을 통한 광장의 봉쇄가 주효했다는 자족적 판단이 깔려 있다. 이로부터 이명박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 요소를 대의질서 안으로 불러들여 수습한 후, 언론악법 국회 통과, 4대강 살리기 등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나라당의 소망처럼 순탄하게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이미 국민의 마음을 잃었다. 작년 촛불에 이어 이번 조문정국에서 보이듯이 민심은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각계 시국선언 참여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동맹과 4대강살리기, 언론악법에 찬동하는 소수의 절대지지층을 제외하면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 즈음 민주당의 태도에 주목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휘두르는 칼자루에 휘둘리고 말 것인지, 칼자루에 맞아가며 민심과 동화하는 길을 걸을 것인지를 단호하게 판단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한미FTA와 언론악법을 거부하며 정거농성을 벌였을 때, 서울광장을 지키기 위해 밤샘농성을 벌였을 때 상승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원천포기 확약 후 등원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작년 촛불 때처럼 진정성이 담기지 않는 대통령 사과라면 더이상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 용산에서 생사람들이 죽어나갔지만 눈도 깜짝 않는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사과를 하더라도 벌써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악법은 다르다. 언론악법의 국회 통과는 이후 사회구성원의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출발점이 된다. 몇 년 전 비정규법의 국회 통과가 사회적 빈곤을 고착, 심화시켜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과 생존 위협, 사회 불안을 야기한 것이라면, 언론악법의 국회 통과는 시민의 삶과 정신을 유린하는 언론 환경 구축의 시발점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언론악법 전반에 대해 언론인 80%, 언론학자 70%, 국민 70% 이상이 반대 여론을 보이고 있다. 이 여론 수치는 단지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이 수치에 깔려있는 민심의 행간을 읽어내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향후 민주당의 운명을 가름하는 수준의 문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력한 방편이기도 하거니와, 지지율 요요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우리는 귀국 후 이명박 대통령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 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아울러 일각의 예상대로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의 국회 처리를 강행한다면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칼자루를 쥔 후안무치한 권력의 횡포에 온몸으로 맞설 것이며, 광장의 정치와 사회구성원의 공분을 확장해 살아있는 민주주의와 대안의 미디어 환경을 개척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다. <끝>
2009년 6월 17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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