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글] 2008달빛시위 - 촛불과 더불어 빛나는 달빛을 바라며
<5회 밤길되찾기시위 - 촛불과 더불어 빛나는 달빛을 바라며>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의 보호담론을 거부하고, 성폭력을 양산하는 성차별적 문화와 사회 통념에 저항해 온 여성들의 밤길 축제, ‘달빛시위’가 어느덧 5회를 맞이했습니다.
2004년,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성들이 밤길을 조심해야 안전할 수 있다’는 식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이에 대한 저항으로 처음 달빛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매년 여름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몸의 권리와 힘, 기쁨을 만끽하는 동시에, 여성을 보호하고 통제하려는 가부장적 발상을 뒤집고 비웃으며 여성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외쳐왔습니다.
2008년 올해는 아동 성폭력 및 집단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면서 성폭력 근절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매우 높아졌습니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임시방편의 대책들만 줄지어 나오고 있는 실정인지라 우려가 됩니다. 이에 5회 밤길되찾기시위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폭력 통념을 깨고, 그로 인한 내 안의 공포를 깨어봄으로써 여성들의 즐거운 밤길 축제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2008년 달빛시위를 맞이하는 우리는 특히 무엇보다 최근 전 국민적 열망의 표출인 ‘촛불시위’가 벌써 두 달을 넘기며 생생하게 타오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안전한 음식을 선택할 권리,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외칠 권리, 부당한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는 지금 촛불 정국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이며, 이는 곧 여성들의 현실입니다. 그리하여 촛불이 밝혀진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이와 직업과 다양한 위치를 막론한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에 나서 촛불을 들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자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만난 그녀들은 용감하고 당당하며 힘이 가득합니다. 목소리를 드높여 외치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힘차게 행진하고, 꿋꿋이 밤을 지새우며, 기꺼이 힘껏 싸웁니다. 10대 여성들에게 밤길 위험을 들먹이며 해산을 종용하던 경찰의 방송엔 ‘우리 원래 야자 12시에 마쳐요!’라며 응수하는 위트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물대포에도 굴하지 않고 ‘온수! 세탁비!’를 요구하는 발랄함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녀들은 또한 “모래주머니를 퍼 나를 수 있는 ‘건장한 남성분’들만 모여 달라”는 사회자의 멘트도 피식 웃어넘기고 팔을 걷어붙인 채 앞장서는 든든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 몇몇의 누구들이 ‘연약한 여성들을 보호하겠다’며 사수대를 자처하는 등의 상황들이 얼마나 넌센스이며 걸맞지 않는 것인지요. 우리는 이것이 일상의 성차별적 문화와 참 많이 닮아있음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 속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발생한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촛불이 여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존엄을 밝히듯이, 달빛은 성별로 인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는 여성들과 이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평화를 밝힙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올해에도 ‘달빛 아래 여성들’을 외치고자 거리에 나와 모였습니다. 어수선한 때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모으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촛불과 달빛이 더불어 빛을 발하기를, 그럼으로 여성이 자유롭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5회 밤길되찾기시위 ‘달.타.령-달빛 타고 노는 영희’ 참가자 일동
2008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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