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상반기*함께가는여성] 회원 이야기_MA GIRLS – 일상의 ‘페미니즘 낙인’에 대하여
회원 이야기
MA GIRLS – 일상의 ‘페미니즘 낙인’에 대하여
은하수(김은아)
여는 민우회 회원 | 머릿속만 수다쟁이. 어릴 적 꿈은 작은 책방 주인이었다. 요즘 새로운 취미는 멍때리기.
“은아씨 앞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은아씨 여성인권운동가야.”
밥 먹다가 체할 뻔했다. 이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니, 나 하는 것도 없는데?’였다. 다음으로는 그 말을 들은 남성 동료들이 앞으로 나를 색안경 끼고 보겠구나 싶어 신경쓰였다.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나는 입사한 지 두세 달 만에 ‘여성인권운동가’가 돼 있었다. 올해 초 민우회 총회에 참석해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린 이후부터다.
페미니스트의 SNS
꾸준히 페이스북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올린다. 남성들에게는 ‘멍청한 소리 좀 작작해’라는 메시지를, 여성들에게는 ‘당신과 용기를 나누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다. 페이스북 친구 중엔 업계 사람들도 많다. 나를 어떻게 볼지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진 않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불행히도 최근 그 믿음마저 금이 갔지만.
3월 말 ‘반사회적’인 단체인 민우회를 팔로우하고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IMC게임즈 대표가 직원을 불러 사상 검증한 사건이 있었다. 요즘 많은 남성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메갈’을 색출하는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 나는 업무 특성상 고객들과 카카오톡 친구도 맺고 있다. 이들 중 누군가가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회사에 항의라도 한다면? 해고까지 당하진 않겠지만 그런 위협이 가능한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싶다. 참담하다. 아, 물론 프로필 사진은 그대로다.
남성들은 이미 알고 있다
2012년 비로소 나를 왜곡없이 비추고 내 삶을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언어가 생겼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주체할 수 없이 기뻤다. 카드목걸이에 페미니스트 배지를 달았고 페미니즘 책을 들고 다니며 전철에서 꺼내 읽곤 했다. 이후 메갈리아 사태, 강남역 사건 등을 겪으며 더욱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자각했다. 더 많은 우리가 생겨났다. 근데 왜일까? 그때보다 지금 더 움츠러든다. 아직 몇 발짝도 못 뗐는데 우리의 목소리를 뺏기 위한 백래시의 물살이 거세다. 이 시간에도 많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메갈 딱지를 들이밀며 위협한다. 페미니스트 낙인은 더욱 노골적이다.
미국 페미니스트재단 설립자인 엘리너 스밀은 “남성들이 과잉반응하는 것은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전 팔루디도 책 <백래시>에서 남성들은 미국 여성운동이 기회만 주어지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정작 여성들만 몰랐다. 지금 한국 상황과도 비슷하다. 페미니스트 낙인이 심화되고 반격이 강화된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들이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뜻이다.
퐁당퐁당 돌멩이를 던지자
종전의 시대를 맞이했지만 성 평등을 위한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에게는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나는 요즘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슬릭의 ‘MA GIRLS’를 듣는다. 내 옆에, 내 앞에, 내 뒤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 참. 어떤 낙인을 들이밀든 간에 페미니즘을 몰랐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아무 것도 안하는 방법을 잊었다. 차별과 혐오의 일상 속에서도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다. 참 힘겹고도 아득한 길이다. 거센 물살 속에서도 함께 손잡고 한 발짝 한 발짝씩, 밀려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강에 던진 작은 돌멩이도 모이고 모이면 둑이 된다. 그렇게 가부장제를 고립시켜 버리자. 오늘도 퐁당퐁당 희망의 돌멩이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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