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법원의 농협사내부부 부당해고 소송 기각을 규탄한다.
농협 사내부부 부당해고 소송을 기각한
서울지방법원의 결정을 규탄한다.
오늘 11월 30일 서울지방법원은 소송이 시작된지 1년 7개월만에 농협 사내부부 부당해고 청구 소송을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청구 기각의 주요 사유로 당시 정황상 피고인 농협중앙회가 원고들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하였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그동안 농협의 사내부부 대상 인력감축이 여성차별적임을 주장해왔던 우리들은 이번 판결이 법원의 가부장적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첫째, 원고의 사직서 제출이 강요나 협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은 객관적인 증거를 너무나 협소하고 편협하게 정의한 결과이다.
판결문에도 나와있듯이, 당시 농협은 명예퇴직자 선정에 있어 '상대적 생활안정자'라는 명분하에 사내부부를 1차 정리해고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농협은 이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퇴직 강요를 통해 762쌍의 사내부부 중 752쌍 부부가 명예퇴직을 신청토록 하였다. 농협은 명예퇴직 강요 과정에서 사내부부중 여성이 퇴직하지 않을 경우, 남편이 순환휴직 명령을 받을 것임을 경고하였고, 사내부부중 여성에게는 순환휴직명령 기회조차 없다고 하여 여성의 입장에서는 명예퇴직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렸다. 김미숙, 김향아씨는 당시 '남아 있다고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여성을 지방발령 내겠다' '여자가 그만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협박을 당했음을 증언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황은 왜 객관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가? 사내부부 762쌍중 752쌍 부부가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사실 자체로도 객관적 증거는 이미 충분하다.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는 노동자들이 협박과 강요 없이 어떻게 일괄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는가? 비록 명예퇴직을 노동자들 스스로 신청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내부부 중 여성이 명예퇴직하지 않을 경우, 남편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임이 뻔하고 여성 자신에게도 계속 고용이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을 때,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기준을 들이대며 명예퇴직을 종용하는 것은 분명 농협중앙회가 협박과 강요를 통해 여성들에게 명예퇴직을 명령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욱 객관적인 증거는 농협 본사 상무실에서 명예퇴직 거부자 명단을 매일 점검하는 등 여성들에게 조직적으로 명예퇴직을 종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통해 협박과 강요에 의한 퇴직종용의 객관적 증거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법원이 판결문에서 원고인 김미숙, 김향아씨가 당시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당시 농협 상황에 대한 개인적 판단 하에 자발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상식에 어긋난 판단이다.
그러나 원고인들이 현재 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자신의 남편들이 당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소송을 제기했던 것은 자신들에 대한 해고가 분명히 여성차별적인 기준과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판단이 충분히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법원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보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법원의 이번 청구 기각 판결은 상식적인 논리를 벗어난 편협한 잣대에 의한 판결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동부도 농협의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로 사내부부 중 여성이 명예퇴직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구성하여 여성을 부당하게 차별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엄중경고를 내린 바 있다.
이와같이 명백한 여성차별적 구조조정이 법원에 의해 합법적으로 인정된다면, 앞으로 여성우선해고를 누가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여성우선해고를 강력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이 이와같이 편파적 기준으로 여성우선해고를 합법화한다면 정부의 규제 의지는 아무런 규제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번 법원의 청구기각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 농협의 사내부부 부당해고가 여성차별적인 불법행위로 규정되는 날까지 함께 싸워나갈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또한 이후 농협의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판단은 좀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이후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2000년 11월 30일
한국여성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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