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_야 나두! 비건 할 수 있어!
[2020 하반기-함께가는 여성] 기획
야 나두! 비건 할 수 있어!
늘 사회에 불만은 많고, 바뀌어야 할 것은 많은데 법은 멀고, 세상은 내 맘 같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아 무력감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육식을 줄이는 건 나를 통제하여 할 수 있는, 사회변화를 향한 확실한 실천이라는 점에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확신과 만족을 준다. 기후위기의 주범이라 불리는 축산업, 동물을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해 오며 오랫동안 유지해온 육식을 한 번쯤 멈춰보면 어떨까.
한 10년 전쯤 ‘비건’이란 단어도 몰랐던 때, 채식을 시도해 보려다 빠르게 실패했던 적이 있다. 이후에도 막연히 ‘채식을 해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 여름, 어느 팟캐스트에서 ‘작심삼일이면 어떠냐.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다 보면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조금은 충동적으로 육식을 줄이고 비건을 지향해 보기로 했다. 우선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엔 책을 읽기가 귀찮아서 비건/채식 이슈를 다루는 팟캐스트를 듣고, 유튜브나 TV 프로그램을 보고, 트위터를 통해 비건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다보니 어설프게 시도해봤던 10년 전과는 달리 세상에 비건도 많아졌고 비건 상품도 많아졌고 정보도 훨씬 많아져 있었다. 왠지 이번에는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우선 소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그 이후에는 닭고기(조류)를 먹지 않는 순서로 시작했다.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과 착취당하는 동물에 대한 죄책감이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고기’가 ‘맛있는 음식’에서 ‘그저 먹기 위해 길러지고 죽여진 동물의 사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더 어려웠다. 유제품, 계란, 생선, 해산물…. 여기서부터는 바로 끊기 보다는 대체하거나 섭취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지금은 페스코 정도의 채식을 하며 가능하면 유제품, 계란, 생선, 해산물 등의 섭취를 줄여가며 비건 지향으로 살고 있다.
비건을 지향하며 육식을 줄이기 시작하니, 나름 친분이 있고 날 아낀다고 생각했던 사람조차 다양한 질문과 비아냥으로 나를 공격했다. 훨씬 엄격한 실천을 하는 비건에 비하면 내가 먹지 않는 거라곤 소, 돼지, 닭 정도인데 이 정도로도 일상에서 엄청난 질문과 공격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왜 먹냐 저건 왜 먹냐, 뭐는 먹고 뭐는 안 먹고 하는 건 진정한 채식이 아니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식물은 안 불쌍하냐, 모기는 왜 죽이냐, 까지. 끝도 없이 어떻게든 나의 모순을 지적하여 논리적으로 그럴 때면 ‘당신들은 그래서 뭘 하길래 왜 뭐라도 해보겠다는 나한테 그렇게까지 하냐!’ 화가 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내가 잘못 살았나, 내가 더 완벽하고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이런 소리를 듣나, 괜히 우울해지기도 했다.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채식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누가 왜 고기를 안 먹냐 물어보면 그냥 속이 안 좋다고 핑계를 댔다. 회식자리는 조용히 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바이어스 리나르트의 〈비건 세상 만들기〉 책 표지
그런데 얼마 전 민우회 소모임에서 〈비건 세상 만들기〉라는 책을 읽고, 비건을 지향하는 여러 사람과 이야기 나누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책에는 비건이 목표로 하는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사람들이 더 참여하고 행동하게 만들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담겨 있었다. 비건이 아닌 사람에게 분노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조금 더 현실적으로 실천을 앞당길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보자는 내용이었다. 비건 지향으로 살아간다는 건, 육식을 하는 사람에게 존재만으로도 죄책감을 상기시켜 불편함을 준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존재만으로도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육식을 줄인 후 다른 사람에게 공격과 비아냥만 받았다고 생각해, 앞으로는 가능하면 나의 지향에 관해서는 대화를 피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채식이 어렵진 않은지 묻거나, 본인도 하고 싶긴 한데 엄두가 안 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도 일주일에 한 끼 혹은 하루는 비건식을 했다는 사람도, 같이 밥을 먹을 때 내가 준비해 간 비건 도시락, 비건 만두를 먹어보고는 의외로 맛이 좋다며 상표를 알려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끼치는 불편, 그들이 나에게 끼치는 불편이 마냥 소모적이지만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내가 비건을 지향하는 건 동물착취를 없애고 환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목표를 위해선 내가 숨어서 조용히 비건/ 비건지향인과만 접촉하고 소통하는 게 아니라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갈등해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아주 사소하지만 SNS에 비건식을 찍어 올리고 비건 음식점이 있음을 알리고, 비건식도 맛있다고 떠들어 주변 사람과 함께 방문하는 것. 육식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SNS엔 육식 사진을 올리지 않는 것. 한 달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 나아가 하루에 한 끼 비건식/채식을 시도해 보는 것이 결국 변화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실천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혹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비장하게 나의 정체성을 비건이라고 다짐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가끔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실천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부담감과 강박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때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비건 세상은 빨리 가까워질 테니까!
김회장
❚여는 민우회 회원
노는 게 제일 좋은 비건지향 페미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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