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10월호 [민우역사기행]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 웃어라 명절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데이!!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 웃어라, 명절! (1999년부터 현재까지)
나디아
20세기 한국이 낳은 신종병- 명절 증후군
한때 엠본부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안녕, 프란체스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한국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지내기 위해, 여느 집과 똑같은 명절을 지내기 위해 역할놀이를 하기로 한다. 명절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며느리와 잔소리에 여념이 없으신 시어머니, 명절일은 나몰라라 밖에 나가는 밉살맞은 시누이, 아무 일도 안하고 게으름 피우는 남편. 결국 참다못한 프란체스카는 열이 받아 손 하나 꿈쩍 않는 가족구성원들에게 혼자 일하는 것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를 표출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한국의 명절은 원래 이렇다잖니, 니가 참아라’고 다독인다. 그리고 귀향차량으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소변과 울화를 참는 것을 마지막으로 한국에 낯선 그들의 명절탐험은 끝이 난다.
한국 최대의 명절인 설과 추석.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날 결혼한 여성들은 명절 몇 주 전부터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는 병을 얻는다. 명절이 끝난 후에도 명절노동으로 인한 몸살로 며칠간 끙끙 앓기도 한다. 민족 최고의 명절이 여성에게는 1년 중 가사노동이 최고로 집약되는 날인 것이다. 그뿐만인가. 간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웃들 간에 정을 나누기보다는 경제적 부담과 힘든 노동, 그리고 소외감과 차별로 얼룩진 시간으로 달갑지 않게 명절을 맞이하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평등한 명절과의 첫 만남 - 웃어라, 명절!
1999년 민우회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직·간접적인 일상의 차별들을 조사하여 그 대안을 만들어가기 위해 ‘나의 여성차별 드러내기’(이하 ‘나여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나여기’수첩을 배포하여 자신이 경험한 생활 속 차별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도록 했는데 그 중 ‘명절, 제사상의 성차별’을 제일로 뽑았다. 명절에서의 차별경험은 그야말로 가족주의, 혈연주의, 결혼중심주의,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집약적으로 작동되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명절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그해 9월 추석을 기점으로 명절과 제사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대안적인 명절문화를 만들기 위한 ‘웃어라, 명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갔다. 서울역에서 귀향객들에게 명절지침서 등을 나눠주며 함께 쉬고, 함께 일하는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만들자는 거리 캠페인과 온라인 캠페인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상의 변화, 명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다!
그간 제사나 명절에 대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사회적인 반향은 놀라울 정도였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대단했고, 언론에서도 열띤 취재를 했다. 민우회에 관한 기사가 언론을 타면 으레 울리던 욕설이 난무하는 항의성 전화대신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전화와 주변에 뿌릴 테니 지침서를 보내달라는 전화로 활동가들을 ‘웃게’ 했다. 2000년부터는 평등한 명절을 지내는 다양한 대안명절사례를 발굴하여 ‘웃어라, 명절!’캠페인이 그저 슬로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모습임을 널리 알려내기도 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종갓집의 명절풍경 대신 남녀노소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명절모습, 가족주의를 뛰어넘는 공동체의 명절풍경, 친가와 시가에서 번갈아가며 지내는 사례 등 평등하고 다양한 방식의 명절을 지내는 다양한 가족들의 명절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매년 ‘좋은 명절을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 ‘남자도 명절을 바꾸고 싶다’,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신나는 명절’, ‘추석엔 평등을 챙기세요’, ‘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정겨운 한가위’등을 통해 소개된 평등명절 지침들은 방송·신문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보와 각종 잡지 지면에 실리며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사회적 공감과 호응도 있었지만 소위 ‘전통을 거스르는 막돼먹은 것들’이라는 식의 항의전화도 있었다. 과연 ‘웃어라, 명절!’캠페인은 전통을 거스르는 것인가. ‘전통’이라는 이유로 소외받고 차별받는 이가 존재해도 이를 무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지금의 명절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전통’이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2001년 ‘21세기 명절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라는 공개토론회를 통해서 역사속에서의 명절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할 명절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장을 마련하였다.1)
명절, 이제는 바꾸고 싶다!
1999년 추석부터 매년 설과 추석에 ‘웃어라, 명절!’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명절이 다가오면 다양한 방식으로 평등명절을 지내는 이들의 사례와 평등명절 지침내용이 각종 매체에 소개되었다.
(성평등한) 법·제도가 제정이 되어도 개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사회적인 의식도 제자리에 머물게 될 수밖에 없다. 캠페인이라는 운동방식 역시 일상의 실천 없이는, 그리고 변화에 대한 필요성이 납득되지 않으면 구호에 그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명절캠페인은 사회적 공감대와 변화의 필요성, 그리고 개개인의 실천들이 있었기에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들내외와 이웃들에게 나눠주겠다’며 명절지침서를 보내달라는 어느 할아버님의 전화와 시어머니와 함께 명절지침서의 내용대로 했다며 뿌듯한 미소를 내보이는 이들, 명절엔 설거지만이라도 꼭 하겠다며 서약했던 많은 남성들, 그리고 지침서를 내보이며 이런 명절도 있음을 알리는 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바뀐 명절을 찾아라!
2002년, 어느 정도 명절이 변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현재의 제사나 명절모습에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현재의 방식에 대한 불만과 변화의 바람은 상당히 높았다.
형식에 치우친 의식의례에 관한 변화는 높았지만, 명절의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사노동-여성, 생계부양-남성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한국사회에 상식처럼 뿌리박혀 있는 문화를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명절문화를 바꿔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명절이라는 계기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족주의, 혈연중심주의,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내고 이를 바꿔내자는 것이었다.
남성들이여, 설거지부터 시작하자!
평등한 명절을 만들기 위한 7가지의 실천지침들은 매년 당시의 사회이슈에 따라 조금씩 내용을 첨가하여 소개되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더라도 실천지침의 내용이 크게 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일상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대상과 집중실천내용을 기획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먼저 나서면 가족들도 따르지 않을까? 라는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 연령을 불문하고 남성들이 명절 때 ‘정말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해보기로 했다.
바로 ‘남성들이여, 설거지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아내의, 누이의, 어머니의 명절 가사노동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실천서약운동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약 1천여 명의 남성들이 참여하였고, 연령대 또한 다양했다.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다양성과 열림의 명절로!
1999년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차별 중 으뜸으로 꼽았던 ‘제사·명절에서의 차별’문화를 바꿔내기 위한 ‘웃어라, 명절!’캠페인은 해를 거듭하며 내용이 조금씩 변화했다. 민우회에서 ’90년 초반부터 한부모 운동과 열린가족 캠페인과 같이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해체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결혼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가족형태만을 ‘정상’으로 의식하는 고정관념과 문화를 바꿔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의 명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결혼과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뿐만 아니라 비혼여성들, 한부모 가족, 입양가족과 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명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냄으로써 한국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졌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대대적으로 진행했던 ‘웃어라, 명절!’캠페인이 2008년 추석에 다시 돌아왔다. 2008 웃어라, 명절! 캠페인은 ‘다양한 가족들이 새롭게 만드는 명랑 한가위’라는 슬로건을 통해 다양한 가족들의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즐거운 명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진행하였다. 생활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혼자 아이를 낳거나 입양해서 키우는 여성(남성)들,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족들 등 가족의 모습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당연히 생각하고 있던 ‘가족’에 대한 통념을 바꾸고, 있는 그대로의 가족들간의 편안한 만남과 공동체적 나눔과 흥겨움이 함께하는 즐거운 명절문화를 만들어보자!
[평등한 명절을 만드는 7가지 약속]
1. 온 가족이 웃는 명절계획을 세워 보세요!
명절준비는 가족회의부터! 각자 명절 때 역할을 나눠봐요!
2. 남녀가 모두 함께 합니다!
장보기, 음식만들기, 차례지내기, 설거지 등 온 가족이 나누어 함께 합니다.
3. 형편에 따라 형제자매, 시가와 친가 구분 없이 명절을 지내요!
명절은 맏며느리, 장남만의 몫은 아니죠. 딸, 아들, 장남, 차남이 형편에 따라 돌아가며 지냅니다. 출가외인은 옛말, 친정과 시댁의 구분을 뛰어넘어 열린 명절을 지냅니다.
4. 환경과 지구를 살리는 기본! 음식과 차례상은 간소하게 합니다.
환경과 경제를 살리는 명절. 음식은 먹을 만큼 나눠서 준비하세요.
5. 조상모시기는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여자도 남자도 함께 고인을 기릴 수 있는 열린 명절을 지내보세요.
6. 모두가 함께 즐거운 명절놀이를 찾아보세요.
아이들에겐 명절이 잠만 자거나 고스톱에 열중하는 날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절놀이를 찾아보세요.
7. 이웃과 정을 나누는 명절이 되세요!
혈연, 가족관계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명절을 보냅니다.
1) 명절이란 좋은 시절(절기)을 말하는 것으로 농경을 기반으로 한 당시의 문화에서는 풍년에 대한 기원과 수확에 대한 감사,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마을공동체 행사이자 축제였다. 그러면 본래는 없었던 조상제사가 명절행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언제쯤일까? 역사학자 이순구씨에 따르면 조선시대 후대 즉, 대략 180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한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전국의 주요한 행사로 자리 잡힌 것은 개항이후 근·현대라고 한다. - 「21세기 명절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토론회 자료집 중 <새롭게 만나는 역사속 명절 이야기>, 이순구
나디아 ● 민우회 재정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바리스타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는 나디아.
손재주가 좋아 우등생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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