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상반기 [민우ing] 스토킹범칙금이 8만원이라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다
[민우ing]
스토킹범칙금이 8만원이라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다
이선미(썬)| 여는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지난 3월 전(前)데이트 관계였던 남성으로부터 지속적인 스토킹 피해에 시달리다 살해된 여성의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피해자가 목숨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피해의 심각성이 가시화된 것은, 스토킹의 특수성과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채 8만원의 경범죄 범칙금**으로 규율할 수 있다고 여겼던 우리 사회의 안이한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피해자는 수많은 괴롭힘과 위협을 지속적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 행위를 제재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있었더라면 살인과 같은 극단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스토킹 피해 중단을 위한 사회적 개입이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의 경범죄로는 해결할 수 없다. 법제도와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지금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에 왜 스토킹을 경범죄로 해결할 수 없는지, 무엇이 필요하며 변화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피해
스토킹 상담은 전체 성폭력 상담에서 5%정도를 차지한다. 수치상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스토킹 문제에 주목해야하는 것은, 스토킹은 단회의 피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현재도 진행되며 점차 피해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3년간 상담을 통해 만난 스토킹 피해자는 총 240명으로 이중225명(93.8%)이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를 겪은 경우였다. 특히 225명 중 136명인 56.7%가 (전)데이트 관계의 사람에 의한 피해를 겪는 것으로 나와 스토킹이 친밀한 관계에서 다수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스토킹은 유명인이나 젊은 여성에게 국한된 피해라는 통념이 있는데 대부분은 친밀했던 사람에 의한 것으로, 스토킹은 남녀노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피해이다.
반복되고 지속될수록 심각해지는 피해
스토킹 피해 이외에도 성폭력 피해를 중복으로 경험한 피해자는 81명(33.8%)으로 나타났다. 중복 피해로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이 40명(31.7%)로 가장 높았고, 강간31명, 성희롱 24명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이때 스토킹이 아닌 중복으로 발생한 개별적인 단회의 성폭력 피해로 가해자를 성폭력특별법이나 형법 안에서 건건이 처벌할 수 있겠지만, 이는 스토킹 자체에 대한 제재 수단이나 방지가 될 수는 없다. 스토킹은 연속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묶어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지속적인 피해가 장기화 되어 악화될 수 있다는 특수성을 반영할 수있는 처벌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스토킹 가해 방법 및 수단을 보면 협박에 그친 사례와 침입, 상해 등 구체 실행까지 이어지는 등 다양한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중 240명 중 207명(86.3%)에 해당하는 피해자가 겪고 있는 주요한 피해는 바로 통신 및 사이버 상 괴롭힘으로 피해자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였다. 전화, 문자, 주변 배회 등 단회의 상황만 볼 때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위로 간주될 만한 일련의 행위들이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했을때, 피해자는 일상생활에 심각한 침해를 느끼게 되지만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피해는 ‘입증’ 앞에 힘을 잃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사례 1
‘입증’ 앞에 힘을 잃는 피해 경험
선배였던 가해자가 10년 이상 피해자의 학교 및 집근처를 배회하고 피해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지속적으로 유포함. 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했음에도 피해자의 학교에 자주 나타나고 피해자에게 전화하여 침묵하다가 끊는 전화를 지속적으로 거는 상황.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증거가 없어서 신고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피해자는 “차라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은데”라며 스토킹 상황에 대한 힘듦을 호소. |
현행 법체계상에서는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여 가시화되기 전에는 스토킹 피해에 대한 구제도, 가해에 대한 규제도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피해에 혼자 대응하기란 매우 버겁다.
범칙금 8만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사례 2
8만원으로 해결되지 않는 스토킹 피해
소개팅 한 남성이 만나주지 않는다며 직장과 집 앞을 배회하고 꽃과 선물을 보내며 지속적으로 괴롭히며 따라다님. 한 번은 신고를 하여 경찰이 출동했지만 가해자는 벌금 8만원만 냈을 뿐, 스토킹은 지속됨. 신고를 해도 지속되는 상황에 두려움을 호소. |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음에도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에 해당하기에 8만원의 범칙금만을 부과하였다. 경범죄로는 가해 행위가 중단되지 않았으며 피해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다. 두려움을 느끼는 피해자의 안전은 확보되지 않았다. 경범죄로는 아무런 경고나 제재 수단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스토킹에 대한 실질적 처벌 조항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경범죄로 범칙금을 낸 스토킹 가해자에게 ‘가벼운’ 범죄 행위라는 왜곡된 인식을 강화시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게끔 학습하는 경험이 될 수 있기에 더욱 문제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스토킹은 법제정만 되면 해결될까.
스토킹 피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사례 3
‘둘이 만나서 잘 해결하라’는 현장 실무자
만날 것을 요구하여 거절 의사를 밝히자 몰래 촬영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지속적인 협박을 하고 괴롭히며 스토킹함. 피해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며 신고했지만,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개인적 해결을 권유하며 “몰래 가지고 있는 영상의 복사본이 있을 경우 유포 등 보복할 수 있으니 일단 가해자랑 둘이 만나서 잘 해결해서 영상을 지우게 해라”라는 부적절한 안내를 받은 상황에서의 불안을 호소함. |
법도 사람이 하는 일. 현장 실무자의 인식이 부재하면 스토킹은 해결할 수 없다. 해당 사례의 경찰은 지속적인 협박과 괴롭힘을 겪고 있는 피해자의 상황을 전혀 스토킹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이에 공적 해결을 원하는 피해자에게 ‘개인적 해결법’을 안내하며 스토킹 가해자와 둘이 만나서 잘 해결하라는 말로 위험을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이미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동하고 있는 가해자를 설득하라고 하는 것은 피해를 경험하는 피해자에게 더욱 고립감을 느끼게 하기에, 매우 문제적이고 인식 제고를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법안들을 살펴보면 스토킹 행위의 위법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사법경찰관리와 검사, 경찰서장, 판사 등으로 법적 개입과 조치를 위한 해석의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에 이들이 스토킹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거나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있을 경우 스토킹을 더욱 사소한 개인의 문제로 여길 수 있고 법제도가 마련되어도 적용하지 않는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때문에 법제정은 스토킹의 배경이 되는 일상화된 폭력적 성규범에 대해 성찰하고 우리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토대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피해 경험과 현장의 목소리가 스토킹 입법 과정에서 삭제되지 않고 반영되어야 한다. 스토킹 피해 경험을 법적으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요구되는 증명력과 스토킹 피해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심각한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기 이전의 피해 경험을 포섭할 수 있는 스토킹 법제정이 매우 절실하다.
스토킹 피해 중단을 위한 디딤돌
스토킹 피해, 두려움과 싸우기 위해 혼자 힘을 내기란 불가능하다. 스토킹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인식과 피해에 공감하는 문화, 피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보태야 한다. 이제는 대응에 힘을 실어 줄 더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두려움을 넘어 설 수 있는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제도· 정책의 적극적 개입과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축에서 상담소도 스토킹 피해 중단을 위한 디딤돌을 놓고자 노력할 것이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