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과 '가족의 탄생'
최근에 개봉한 <귀향>은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등을 만들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으로 2006 칸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페넬로페 크루즈), 각본상을 받았다. 칸느영화제가 평가한 것처럼 <귀향>은 잘 짜여진 각본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절정에 다다른 연기력에 스페인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 해진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런데 <귀향>을 보는 내내 난 뭔지 모르지만 쉽게 동화되지 않았다. 그건 최근에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여성에 관해 만든 세 편의 영화인 <내 어머니의 모든 것><그녀에게><귀향>을 보면서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저런 반전을 준비하다니 치밀한 걸’ 외에 왜 다른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안토니아스 라인>처럼 가슴이 훈훈해진다거나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은 건 왜 일까?
<귀향>과 <가족의 탄생>에는 ‘남성이 부재한’ 여성들만의 가족이 등장한다. 내가 바라던 ‘여성들만의 공동체’인데 근데 뭔가가... 두 편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만의 가족은 <안토니아스 라인>의 공동체처럼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만든 공동체, 여성의 욕망에 의해 구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버림받거나 상처를 받고, 남성은 이미 죽었거나 집을 나갔으나 가족들은 여전히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 결국 남성은 성폭행을 일삼거나 무책임하지만 가족이 구성되거나 재구성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귀향>에서 라이문다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하고 고향을 떠난다. 그녀의 딸마저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당할 위기에 처하자 살인을 저지른다. 라이문다의 언니는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홀로 살아간다. 라이문다의 어머니는 나중에 남편이 딸을 강간했으며 옆 집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남편을 살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남성에 의한 피해자이다. 강간당한 라이문다, 성추행 당한 딸, 남편에게 버림받은 언니, 남편에게 평생을 속고 산 어머니. 이 여성들이 상처를 준 남성들을 살해했다는 비밀은 그들이 가족을 꾸리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가족의 탄생>에서 형철은 5년 만에 부인이라며 무신을 데리고 누나 미라네 집으로 들어온다. 무신의 딸도 형철에 의해 같이 살게 되는데, 형철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 동생의 무책임함을 책임져야 하는 미라, 형철 때문에 미라네 집에 얹혀 살아야 하는 무신. 형철에게 버림받으며 탄생된 이 당황스런 가족은 형철을 기다리는 것으로 독특한 동거를 시작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귀향>에서 감독은 돌봄의 모성을 강조한다. 이 돌봄의 윤리는 이미 자신을 떠난 남편이 수녀와의 관계에서 낳은 사생아를 책임지게 하고, 남편과 바람핀 여성의 딸을 돌보게 한다. 또한 <가족의 탄생>에서 미라는 어쩔 수 없이 동생이 데리고 온 여성들을 책임지고, 무신의 딸인 채현은 지나칠 정도로 주위 사람을 돌보고 배려한다. 배려와 돌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책임한 남성을 배려하면서까지 여성은 돌봄을 강요받아야 하는지,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은 단순히 가해자인 남성을 살해하는 것인지, 설정된 남성캐릭터가 왜 하나같이 몹쓸 것들인지,,, 많은 생각이 들게 했지만 역시 쉽게 감정이입이 되진 않는다.
<귀향>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굉장히 유머러스하며 코믹하고 판타스틱하다. 보고 나면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아 살짝 뿌듯함도 느끼게 한다. <가족의 탄생> 또한 <여고괴담 2>를 만든 감독답게 기존의 사회의식을 답습하지 않는 신선함이 있다. 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들은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심각한 상황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매력이 있다.
* <귀향>을 본 후 다른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생각났다. 성폭행이라는 측면에서는 <끔찍하게 정상적인>이,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살인을 저지르는 측면에서는 <침묵에 대한 의문>이. 성차별적인 발언일 수는 있으나 같은 소재를 가지고 여성감독과 남성감독이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친절한 금자씨>와 <오로라 공주>가 다른 것처럼. 이것에 대해 지껄이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글을 쓸 때마다 좌절감을 느낀다. 모성에 대해서 쓸 때는 쫌 읽다 던져버린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를 다시 시도해 읽어 봐야 할 것 같고, 좀 더 깊이 있게 통찰력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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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는데 뭘... 가족의 탄생이랑 귀향 꼭 봐야겠다는 생각도 절로 들고...
나노의 성원(?!)에 힘입어 방금 읽은 소설 서평을 하나 올려따우, 흠흠;
흐흐 잘읽었음.. 이런 거였군요.. 그 부분이..껄쩍지근한..참 귀향에서도 엄마가 남자에게 복수하고 나서 꼭 누군가 돌보게 되죠.. 그게 좀.. 거기 나온 아이도 피해자지만 끊임없이 엄마가 돌보길 기대하고..당연한 얘기같지만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단 말씀~
우와! 잘 읽었어. 나도. 나도 그 영화 보고싶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봐야겠다
비됴가 나왔을까요? 지금 씨네큐브에서 하고 있는 영화에요..ㅋ
난 지난 주에 봤는데...음.. 라이문다가 파코를 힘들게 묻고 나서 옆에 서 있는 나무를 깎아 묘비를 새겨주는 장면에서.. 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답니다.
편안하게 줄줄 잘 읽었슴다. '귀향'봐야것당
나두 보고싶다. 근데 이거 비됴 나왔어?
잼있다. 잘 읽었어요. 날리님 말대루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구만.
'귀향'은 아직 안봤는데, 글을 읽으니 보고싶은 맘이 확~ 생기네~^^ 저도 '놀러와!'가 마음놓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회원들의 공간이었음 좋겠어요! 글솜씨는 없지만 조만간 한편 올려야겠네요! 모두들 많이많이 올려주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