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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후기] 10월의 어느 멋진 날(들)에 열린 2024 하반기 민우회원 책 세미나

2024-10-29
조회수 427

 

“페미니스트 정체화를 넘어 페미니즘은 무엇이고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탐구해보자” 라는 다소 큰 목표로 시작한 2024년 하반기 민우회원 책 세미나에 희구, 선명, 혜진, 까망, 음표와 활동가 바사, 새길이 함께했습니다.

 

상반기에는 정희진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이번에는 데머라 캐머런의 『페미니즘』을 읽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큰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얼마나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9월 24일 첫 모임에는 희구, 까망, 음표, 혜진, 새길, 바사가 함께했어요. 첫 만남인 만큼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깜짝 프로그램으로 지금 이 순간(!!) 핸드폰 잠금화면을 공개하고 왜 이 잠금화면인지 소개하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답니다.

 

첫 모임에서는 서문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와 1장 ‘지배구조’, 2장 ‘권리’를 다뤘어요.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말을 인용함과 함께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시행한 조사에서 절반가량의 여성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않겠다.”라고 답했고, 5명 중 1명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모욕으로 여겼다.(7p)”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언제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는지, 또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는지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페미니즘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또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공격받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분개하기도 했어요.

 

1장에서는 소개하는 남성지배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며 지금 한국 사회와 어떤 면에서 맞닿아 있는지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어요. 남성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주류 정치판에서 나오는 여성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정책들,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 속에서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기 쉬워지는 여성의 지위,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등. 그리고 “남성이 여성과 아이 그 자체를 재산으로 바꿔놓았다. 노예가 된 여성과 아이는 최초의 사유재산이다.”라는 거다 러너의 주장(31p)에서 출발해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는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에 대한 의문을 나누기도 했죠.

 

2장의 후반부에서는 유럽에서 있었던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니캅이나 얼굴 베일처럼 종교적 상징이 드러나는 옷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 등장하는데(57p) 특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정작 이 주제의 주체인 무슬림 여성은 배제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 되야 할까’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무슬림 여성의 니캅 착용을 금지하는 정책이 정말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결정인지, ‘테러리스트’와 ‘무슬림’을 연결시키며 특정 집단의 신상 파악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는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개인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때 과연 개인이 내린 선택은 어디까지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고 모두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렸어요. 



한 주를 쉬고 10월 8일 열린 두 번째 모임은 혜진, 선명, 새길, 바사가 참석했어요. 적은 인원이었지만 혜진님이 준비해오신 천도복숭아와 바사가 공구한 김부각으로 단란하고 오붓하게 세미나를 시작했어요.

 

‘노동’(3장)과 ‘여성성’(4장)을 다룬 만큼 각자의 경험과 여러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누어졌습니다. 3장에서는 ‘무급’돌봄 노동이 온전히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상황에서 ‘유급’ 노동 시장에 있는 시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평등과 이중의 부담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노동 시장의 많은 분야에는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이 나타난다. 여성과 남성은 다른 업무를 하고, 여성이 하는 일은 여성이 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저평가된다.(76p)”에 특히 공감하며 각자의 노동 경험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어요.

 

4장을 다루면서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에 공감하며 남성과 여성으로 성을 양분하고 그에 따라 특정한 행동을 요구/강요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특히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을 거부하며 있었던 ‘탈코르셋’ 흐름을 다루며 고민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이전 모임에서 나누었던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은 얼만큼이나 가능한 것인지부터 ‘꾸밈’을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어떤 것일지까지 정말 현실과 가깝게 맞닿아있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10월 15일에 있었던 세 번째 만남에는 선명, 혜진, 까망, 바사, 새길이 참여했어요. ‘성’(5장)과 ‘문화’(6장)을 다루었는데, 여성의 성을 둘러싸고 있었던 다양한 논쟁을 읽으며 열띤 이야기가 오고갔답니다.

 

“캐럴 밴스가 1984년에 쓴 글에 따르면, 여성에게 성이란 “탐험과 쾌락, 행위성의 영역인 동시에 금기와 억압, 위험의 영역이다.” 페미니스트가 오로지 쾌락의 측면에만 집중한다면 남성 폭력과 억압이라는 현실을 외면할 위험이 생기고,위험의 측면에만 집중한다면 여성이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즐기는 성이라는 경험을 무시할 위험이 생긴다. 성에는 이처럼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하며, 페미니즘은 양측을 모두 다뤄야 한다는 밴스의 주장에 반기를 들 페미니스트는 거의 없을 것이다.(107p)”

 

“포르노가 ‘쾌락’과 ‘위험’ 중 어느 것을 재현하는지에 관한 물음은 페미니스트를 극명하게 갈라놓는다. 포르노의 섹스 재현은 실제 세계에서 성폭력과 성적 학대를 조장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 포르노는 특히 여성이나 성 소수자를 포함해 많은 이가 욕망을 탐구하고, 육체를 알아가며, 자신을 성적 존재로 인식하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보는 시각이 오랫동안 팽팽하게 맞섰다.(111p)”

 

앞에 소개된 두 문단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가면서 점점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포르노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여성을 위한 포르노가 존재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고민해보기도 했습니다.

 

이성애자 남성을 위한 포르노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성매매’ 또한 빠질 수 없는 주제입니다. 성노동과 성착취라는 언어에서 조금 벗어나 의견을 나누었는데요, 성매매 현장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인입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과 점점 그 형태를 바꾸는, 또는 확장되는 성매매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0월 22일, 7장 ‘경계와 미래’를 읽고 만난 마지막 모임에는 참여자 전원이 참여했어요. 한 가지씩 음식을 가지고 와서 포트럭 파티도 진행했는데요, 자리도 복닥복닥 책상도 복닥복닥 알차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젠더 정체성과 다양성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제4 물결’에 대해 저자는 로라 페니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나는 젠더 없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세상은 젠더가 억압적이거나 강제적이지 않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젠더를 표현하고 수행하며, 자기 정체성과 연관시킬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젠더가 고통스럽지 않고 즐거운 세상을 원한다.(153p)”

 

“젠더를 여성과 남성 구성원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제한적이고 불평등한 역할이라고 보는 제2 물결 페미니즘(152p)”과 페니의 주장에 대해 각자 이해한 바를 나누며 최근 파리 올림픽에서 염색체로 선수의 성별을 가름하며 마치 남성이 이기기 위해 성확정 수술을 하고 대회에 나섰다는 식의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트랜스젠더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채 돌연 성별염색체라는 수단을 들이세우고 있는 올림픽과 스포츠계에서 트랜스젠더가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는가.’라는 날카로운 지적이 나오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민우회원 책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는데요, 참여한 분들의 소감과 책의 짧은 구절을 인용하며 후기를 마무리할게요:)

 

혜진: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유익한 시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배운 것도 많지만 궁금해진 것도 많아서, 앞으로도 책세미나 자주 열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까망:

지난 4주간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의가 가득한 이야기장이었어요. 컨텐츠에 관심이 많고 국내 페미니즘 운동에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페미니즘 운동의 원칙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일상과 미디어 저변으로 이야기가 쭉쭉 뻗어지고 모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어요. 화요일 저녁시간을 귀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신 귀한 분들과 바사, 새길님께 감사드려요!

 

희구:

일상을 지내다 보면 ‘이럴 땐 어떤 생각을 해야 페미니즘에 맞는 걸까?’라는 물음표가 계속 떠오르곤 했다. 화장을 해도 되는걸까?, 젠더 이슈는 어떤 관점에서 봐야할까? 하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나가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반짝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하는게 맞나?’ 라고 눈치 보던 저를 ‘자유롭게 하는 페미니즘’의 입구로 가이드 해주신 바사, 새길님과 모임원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

 

음표:

주제별, 쟁점별로 페미니즘의 이론과 운동의 역사를 고루 배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노동, 권리, 성, 문화 등 굵직한 주제에 따라 참여자 분들과 일상의 고민과 경험을 나누고 엮어볼 수 있는 자리였어요. 다양한 페미니스트 '정체성'들이 경합하고 교차하는 요즘 우리 사회의 국면도 함께 토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풍성한 시간을 함께 만들어간 바사, 새길 활동가님과 회원 분들께 모두 감사합니다! (덧, 마지막 포틀락에서 새길님의 *그라탕* 넘 맛있었어요~ㅎㅎ)


“페미니스트는 왜 페미니즘을 하는 걸까? 한 페미니스트 단체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자, 그들은 정치적 활동에 따르는 곤란함과 희생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방식에 중점을 두어 대답했다. 그들은 페미니즘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그들이 다른 여성과 긍정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급진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약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했다고 말했다.(159p)”

 

물음표가 가득했던 우리의 만남은 명료한 마침표로 끝나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함께였기에 물음표가 ‘반짝이는 느낌표’가 되기도 하는 시간을 나눌 수 있었겠지요.

 민우회와, 그리고 민우회가 또 다른 반짝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며,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민우회원 세미나는 내년에도 또 열릴 예정이에요.

“나도 참여하고 싶어!”생각하신 회원이 계신다면 우리 꼭꼭 내년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