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포럼후기-1]민우회, ‘국제행사’ 하다.
[국제포럼후기-1]
민우회, ‘국제행사’ 하다.
: 생명과학기술시대, 여성인권확보를 위한 국제포럼을 마치고
1. 결정의 순간
처음 ‘국제포럼’이란 말을 들었을 때, 도무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국제포럼’이 얼마만한 행사인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놀라야 하는 건지 담담히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뭐 별 거 있겠어?’라고 생각했던가. 이젠 그 기억도 가물가물. 몇 년 전 민우회가 ‘평등한 일, 출산, 양육 국제포럼’을 개최했던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 ‘국제적인’ 일들은 다른 단체에서 담당했던 터였다. ‘감당할 만하니까 하기로 결정했겠지’라고 그냥 무작정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이후 포럼이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 결정은 늘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2. 갑자기 ‘국제포럼’은 왜?
황우석 사태의 혼란과 여파는 많은 고민들을 하게 했다. 생명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예측보다 훨씬 심각하고 복잡했다. 황우석 사단은 검찰조사까지 받았지만, 여성과 관련된 문제들은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들은 그대로 남겨두고 사회는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황우석 개인에 대한 논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았다. 그 속에서 민우회도 많은 어려움이 겪었다. 태풍처럼 몰아쳤던 황우석 사태 속에서 좌초하고 방향을 잃기도 했었다. 그 상황은 때로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태풍이 지난 후에는 피해를 수습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일이 남겨졌다. 인공수정법안, 난자채취 피해자 청구소송 등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민우회의 자세’는 여전히 갈팡질팡이었다. 생명과학기술과 여성인권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토론회 등을 개최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점점 잊혀져가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것, 그리고 여성운동의 개입과 대응 방법을 찾아 가는 것이 필요했다.
3. 두드려라. 그러면...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는 않았다. 가장 큰 관건은 ‘펀드’를 구하는 일이었다. 기획서를 쓰고 제출하고 ‘다음 기회’로 밀려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3월부터 펀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소득이 없었다. 아무런 기약 없이 흘러가는 시간. 포럼 예정일인 7월 5일이 다가오면서 민우회의 결단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국제포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이번 행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펀드가 없어도 포럼은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각종 ‘후원금’ 모집 방안들이 제안되기도 했다. 최후의 방안은 ‘국제포럼 행사비 마련을 위한 일일호프’, 그리고 본격적인 행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있는 단체 Center for Genetics and Society(CGS)를 알게 되었고, 그 단체를 통해 이 문제에 관심 있는 해외 단체, 개인들과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포럼의 방향과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한 전문가 간담회도 진행되었다. 포럼 개최일도 9월 중순으로 연기 되었다. 행사의 윤곽이 조금씩 그려져 가고 있었다. 그 윤곽의 마무리는 바로 펀드의 확정, CGS의 도움으로 미국 글로벌 펀드로부터 행사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역시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
4. 영어는 어려워!!
초기 준비는 펀드지원, 해외 참가자들의 섭외와 관련된 일이 주를 이루었다. 외국인들이라 보니 한글이 통하지 않는 법, 영어 사용이 필수였다. 기획서와 메일 영역 등은 민우회 회원의 자원 활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않았던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였다. 간혹 메일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민우회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헬로우, 캔유스피크잉글리쉬?’ ‘(큰 목소리로)영어야 영어, 누구 전화 좀 받아봐’, 그 순간 숨죽이는 민우회 활동가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게 된 담당자. 떠듬떠듬 서툰 영어로 대충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메일 주소를 알려 주면서 ‘...위민링크점오알점’라고 했단다. ‘점’의 영문표현인 ‘dot'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 전화통화가 끝나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활동가들은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는 후문이 전해온다. 믿거나 말거나.
하여간 이런 우여곡절 끝에 기조연설자, 참가자들이 확정되고, 글로벌펀드 뿐만 아니라 여성플라자 등 다른 후원단체들도 추가되었다. 민우회의 취약한(?) 영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통역, 번역 서포터즈들도 모집되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들 속에서도 행사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5. 민우회의 밤은 낮처럼 환했다.
미국에서 유전자, 재생산기술과 관련하여 활동해 온 CGS, 인도에서 여성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온 SAMA, 영국에서 사회운동, 건강, 여성,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해 온 The Corner House, 여성 건강에 관한 정보를 담은 ‘Our Bodies Ourselves’를 출간한 보스턴여성건강서공동체, 일본에서 여성의 재생산권리에 관해 활동해 온 SOSHIREN, 연구용 난자채취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HOOO(HandsOffOurOvaries)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등이 포럼 참가자로 확정되었다. 또 난자채취를 경험한 여성들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미국 다큐 제작자도 포럼을 기록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행사일이 다가오면서 포럼 준비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료집을 만드는 일만 남았는데 그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고마감 시간을 지킨 발표자들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하긴 단체 활동가들의 바쁜 일정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몰려드는 원고를 번역하고 편집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하여 자료집을 앞에 두고 민우회 활동가들의 잠 못 자는 밤들이 이어졌다.
6.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행사 시작 3일전부터 해외 참가자들이 입국하기 시작했다. 민우회 활동가들과 써포터즈들이 참가자들을 마중 나가고, 그들의 첫인상에 대한 즐거운 수다들이 이어진다. 숙소인 여성플라자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여성플라자의 ‘현대적(?)’ 시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들도 들린다. 이제야 행사가 개최된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준비하려고 했던 ‘난자채취 및 제공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폐기되었고, ‘서울 선언’의 마무리 작업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최종 대박은 행사 하루 전날에 벌어졌다. 일본 참가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할 수 없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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