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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후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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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우리는 언론을 통해 딥페이크 성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접하였습니다. 여성의 얼굴과 몸을 평판하는 일상의 문화 속에서 지인의 사진을 능욕하겠다는 마음으로 합성하고 배포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대학, 직장을 넘어서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만연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소라넷, 웹하드카르텔, 텔레그램 성착취 등의 이슈가 연달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국회는 뒤늦게 법안을 발의하고 관련법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몸을 함부로 촬영하고, 유통하고, 여성의 몸을 합성하고 재가공하는 일상의 놀이문화는 급기야 온라인 플랫폼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였습니다. 폭력이 돈이 되는 끔찍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 그 어느 곳에서도 여성들은 안전을 느끼지못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그저 끔찍하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민우회는 20024년 9월 6일(금) 오후 7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 -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를 144개 단체와 함께 개최했습니다.

 

이날 집회에서는 1,2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였고, 참가자 자유 발언과 개인 참가자들이 사전에 남긴 메시지를 함께 공유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9명의 시민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겪은 경험들을 말하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고 변화해야하는지 고민을 나눠주었습니다. 시민 발언의 내용을 상세히 전해보아요. 


(노란색 박스 다음에 집회 퍼포먼스와 행진 후기 기록도 있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 


■ 발언 1.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온라인 환경이 일상화되기 전부터 성폭력 영상은 ‘음란’ 비디오로 팔렸습니다. 그리고 ‘야동’으로 유통되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 소라넷을 비롯해 온라인 공간의 성폭력 고발과 공론화가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웹하드 카르텔 사건, 버닝썬 사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최근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또 그 사이사이에 각종 대학 내 단톡방 성폭력, 무슨 방, 무슨 방, 무슨방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이 참담함이 반복되자 국가는 ‘몰카’를 불법촬영이라고 명명하고, 범정부 대책을 발표하고, 여가부를 중심으로 지자체 등 피해지원을 제도화했습니다. 경찰과 방심위는 전담팀을 신설했습니다. 국회는 웹하드 카르텔 방지법,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키고, 찍고 유포하는 것에 이어 보는 것, 합성하는 것, 협박하는 것까지 모두 성폭력 범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계속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왜 기시감을 느끼게 됩니까?

 바로 이 문제가 젠더권력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여성혐오에 기반한다는 것, 구조적 성차별 때문이라는 핵심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폭력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명명하는게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범죄라서 문제입니까? 불법촬영이 불법이라서 문제입니까? 불법이라는 기준은 무엇을 근거로 합니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이 불법의 기준입니다. 결국 성폭력의 판단 기준이 ‘음란’이 되고, 음란해야지만 불법이 됩니다. 피해촬영물이 얼마나 음란한지에 따라 피해 여부가 인정되고, 지원 여부가 결정됩니다. 음란하지 않은, 젖꼭지나 성기가 등장하지 않는 촬영물은 성폭력 피해가 될 수 없고 삭제지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걸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합니다. 권력형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을 국정과제로 설정했으면서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지원 예산은 142억을 감축했습니다. 국가가 통제하기 편리하도록 말뿐인 ‘통합’으로 상담소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성 인권 교육사업을 폐지했습니다. 직장 내 여성폭력 방지 사업을 폐지했습니다. 성매매 피해자 지원 예산도 삭감했습니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도 삭감했습니다. ‘비동의 강간죄’ 신설을 거부하고 무고죄를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저출생 대책으로 이주여성 대상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차별금지법 도입을 번번히 가로막고 있습니다. 여가부 장관은 지금까지 공석입니다.

 국가는 여성을 국민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이 사회는 여성을 동료시민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엊그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신체 노출과 성충동으로 급증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국가는 디지털 성폭력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벌어지는 일이라며 젠더 권력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모두의 안전 문제로 귀결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랄한 범죄인지만을 강조하고, 가해자 개개인을 악마화 시키며 단죄해야 되는 문제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신종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수법이라는 점만 주목하며 전에 없던 기술의 폐해처럼 얘기합니다.

본질을 외면한 채로 오로지 엄벌과 기술적 대응으로만 해결하려는 사이, 가해는 고소각을 재며 불법의 경계를 타고 위법하지 않게 여성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촬영하고 녹음하고 합성하고 유포하고 협박하고 의뢰하고 공모하면서 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대책이라곤 여전히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를 강조할 뿐입니다.

온라인 공간은 위험과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해방과 자유의 공간입니다. 피해를 겪을까봐 로그아웃하고, 사진을 내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온라인은 대체 누구를 위한 공간입니까? 플랫폼 사업자들이 여성혐오로 돈을 벌고, 폭력을 방조하거나 조력하면서 이익을 얻고 있는데 이 책임을 어떻게 지게 할 겁니까?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관계 영상 비동의 유포, 각종 단톡방 성희롱, 불법촬영,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돌파구가 있다면, 바로 성평등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단절된 세계가 아니므로 우리는 이 세계의 성평등을 원합니다.

 국가는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본질을 외면하며 책임을 방기한 것에 필사의 성찰을 해야합니다.

여가부 장관을 세우고 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펼쳐내야 합니다. 음란한 것을 기준으로 하는 성폭력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여 형법과 피해지원 체계를 정비해야합니다.

지금까지의 변화들에서 국가가 알아서 잘한 건 없습니다. 이 문제에 분투해온 모든 사람들,

자신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각자의 현장에서 불안을 삼키며 싸워온 사람들, 피해를 겪어낸, 겪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과 용기 덕분에 우리는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발짝 전진하면 두세걸음 퇴보하는 감각에 답답하고 분통터지지만, 혹시 내가 피해자가 되진 않을까 불안하고 걱정스럽지만, 위로와 온기를 나누며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는 정책에서, 법과 제도에서, 교육에서, 가정에서 변화를 불씨를 피우고 있습니다. 절망을 분노로, 불안을 용기로 전환하며 이 퇴행의 시대를 함께 통과합시다.

 

 

■ 발언 2. 강나연 서페대연(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서페대연 운영위원 강나연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정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 자리에서는 딱 2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여성 폭력 중에서도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가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가해자 비율의 75%가 미성년자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반이 어떤 모습인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대학교와 군대 등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성인 집단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올해 5월 즈음부터, 서울대와 인하대에서 먼저 거론되었습니다. 이 두 개 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교와 중고등학교, 군대까지 이런 방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가해의 양상에는 단순히 성적 영상물을 합성하고 돌려본 것뿐만 아니라, 악질적으로 피해자를 협박하고 스토킹 하며 괴롭힌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하대 사건의 경우, 피해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에게 하루에 20통, 30통씩 전화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욕설을 남기거나 주변 지인의 모습으로 합성물을 만들면서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강요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상처받을 수 있고, 고통받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상처주면 안된다는. 그런 아주 기본적인 사회적 도덕선이 무너진 문제입니다. 이런 우리사회의 최소한의 기준선이 무너진 채로는, 아무리 좋은 법제도와 높은 양형 기준이 있어도 사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웠던 것은, 딥페이크 성범죄를 둘러싼 대학사회와 일각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도 하기 전에, 그 피해가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부터 합니다. 이준석 의원이 대표적으로 해당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또한 딥페이크에 목소리 내는 여성들에게는 딥페이크 당할 걱정도 없는 애들이 왜 나서냐는 말을 합니다. 왜 나서냐고요?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받았을 고통이 내가 겪는 일처럼 느껴지니까 나섰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들은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신뢰를 회복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왜곡된 남성문화와 남성 권력에 대한 직시와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소중한 남성 동료들이 있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들려주자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던 남성 동료의 모습입니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는 비판을 듣고, 남성으로서 공동행동에 함께하는 남성 연대자의 모습입니다. 사회의 부조리 앞에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부끄러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고 믿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충격을 받은 여성과 시민들이 뭐라도 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서페대연과 서울여성회가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을 만든 이유도 공감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인하대와 서울대 사건을 봤을 때만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막막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반복되고 계속되는 여성 대상 폭력 소식을 8년간 견뎌오며, 무기력이 저 깊은 마음 속에 생겨났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친구들이 딥페이크 때문에 화가 나고 불안해서 잠이 안 온대"라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더 이상 여성들에게 이 사건이 더 무기력과 두려움으로만 남는 사건으로 남아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물러나, 여성들이 평생 안전한 곳 없는 세상에서 불안해하며,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이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습니다.ᅠ

 어제 서페대연은 이화여대에서 공동행동과 오늘 집회를 알리는 캠페인을 했는데, 딥페이크라고 하면 대부분 전단지를 받아가고 먼저 와서 한 장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집회에 나가자, 무서우면 같이 나가자는 여론도 계속해서 모이고 있습니다. 8년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보고, 성차별은 나의 문제임을 깨달았던 여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도 이 문제가 나의 문제임을 실감하게 만드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8년 전과 조금 다른 것은, '나의 문제'라고 느낀 사람이 젊은 여성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사, 기자 직업을 불문하고 노동자와 학부모를 불문하고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과 페미니즘은, 일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다음주부터 강남역에서 저녁 7시에 이어말하기 <분노의 불길>이 시작됩니다. 이제부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성과 시민들의 힘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게 관건입니다. 정부부처와 수사기관이 대책을 마련하는 척 흐지부지하는 모습, 국민의 힘이 N번방 방지법 같이 만들 때는 언제고 시간이 흐르자 순식간에 뒤집는 모습 우리는 지겹게 봐왔습니다. 이 힘이 임계점을 넘을 때까지, 되돌아가지 않는 수준까지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은 "너희는 우리를 능욕할 수 없다."는 구호로 강남역에 다시 섰습니다. 이 말은 가해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을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아무리 흔들어도 존재 가치를 해칠 수는 없습니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의 생존자 루마님이 추적과정에서 마음이 어려울 때, "그들은 나의 존엄성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는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거대한 부조리와 싸울 때,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확신은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 여성들을 해치지 못하는 공격은 여성들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손쉽게 AI로 사진을 합성하는 것만으로 여성들의 삶을 휘두를 수 있다는, 그들이 믿고 휘두르는 남성 권력을 무력화시킬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의 아픔과 고통에 충분히 공감합시다. 충분히 슬퍼하고 눈물 흘립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비롯한 여성 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그리고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말합시다. 교육현장과 대학사회, 방송계, 군대, 가정 그 외 더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해야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건, 20대 초반 여성들이 일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여성 세대를 위해서라도 성차별과 여성 폭력을 먼저 알게 된 선배들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주부터 강남역 저녁 7시에, 이어말하기 <분노의 불길>이 이어집니다. 강남역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닐 공간을 보장하라고 요구합시다. 감사합니다.

  

■ 발언 3. 최지수 30대 시민


안녕하세요. 저는 더 이상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자리에 나온 30대 직장인 최지수입니다.

 대학 신입생 때, 동아리방에서는 남자선배들이 저열한 단어로 동기들의 외모를 평가했습니다. 학교 앞 골목에서 술을 마시고 몰려있던 과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 대해 성희롱적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너무나 부지기수였지만, 저는 그 때마다 그저 그 곳을 지나쳐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는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단톡방 성희롱 사건과 N번방 사건, 그리고 딥페이크 성범죄를 알게 되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와 문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외모와 성을 남성들이 마음껏 평가하고 희롱하고 놀잇감으로 대해도 괜찮은 성차별적인 문화는 하루 아침에 생긴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알고도 그 순간을 지나쳤던 그 과거들이 너무나 후회됩니다.

이 국가와 사회는 그동안 온라인 상의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못한 것도 아니고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안 한겁니다. 그렇게 성폭력을 그저 여성들이 알아서 참고 감내하게 하였습니다.

 성착취 영상을 피해자가 직접 찾고 정리해가야 경찰은 사건을 받아주었고, 끊임없이 ‘다 삭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거나 ‘어차피 못 잡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잡히거나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지현 검사님이 이끌던 디지털성범죄TF는 정부가 방해했습니다. 이준석 같은 정치인들이 여성혐오를 부추기며 자기 이익을 챙기고,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꺼내들며 표를 얻는 동안 우리의 일상은 계속해서 위협받았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여성의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강남역여성살해사건 이후 저는 페미니스트로 각성한 다른 수 많은 여성들과 함께 더 이상 성차별과 성폭력을 지나치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백래시 사회가 우리의 목소리를 묵살하려고 들고, 페미니스트들을 왜곡하여 비난합니다. 많은 주위의 여성들이 뉴스를 피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며,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성차별적 사회가 여성에 대한 성착취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포기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 때 강남역에서처럼 서로 고통을 어루만지고, 분노를 확인하고, 손을 내밀며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런 세상을 절대 두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이렇게 잘못되었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의 역할이자 권리일 것입니다. 여성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성평등 사회를 위해 국가가 책임지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절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미래로 이끌어갑시다. 감사합니다.

 

■ 발언 4. 2018년 한양대학교 ‘지인능욕’ 사건 피해경험자 발언(대독 : 이도경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한양대학교에서 일어난 지인능욕 딥페이크 사건의 피해자 약 20명 중 한 명입니다. 당시 가해자는 학과 절친, 동아리 선후배, 고등학교 동창과 같은 학원을 다녔던 사이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사진을 수집하였고, 트위터에서 지인능욕 사진을 합성해주는 계정에 합성사진을 의뢰하며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까지 전달하였습니다.

이후 가해자가 휴대폰을 잃어버리면서 수많은 합성사진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가해자가 인간관계 내 모든 여성들을 본인의 성적 호기심을 위해 모욕하고 착취하면서도, 사회성이 뛰어난 건실한 청년으로/좋은 친구로 가장하여 우리 사회에, 학내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가장 화가 나고 두려웠습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갓 20대가 된 어린 여성들이었고, 지인능욕/합성사진에 대한 세상의 이해도도 전무하다 싶을 때였지만. 이대로 가해자를 다시 사회로, 다른 여성들의 곁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고, 피해 당사자로서 이 사태를 제대로 짚어 가해자에게 죗값을 물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은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론화에 힘썼고, 학교 측의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가해자는 징계 위원회 등 학내 규정에 따른 적절한 절차를 통해 제적 처리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공동 행동으로 첫 결실을 이뤄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몇 년에 걸친 재판 끝에 가해자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해자가 의뢰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은, 형법에서 규정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 등의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달해 더욱 교묘해지는데, 법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처벌하지 못한 명백한 법적 공백입니다. 이후 딥페이크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제정되었다고 하나, 피해가 크지 않거나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하는데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피해자와 더 큰 피해가 있어야 할까요?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취했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범죄의 결과값이 얼마나 대단한가가 아니라, 강력한 처벌법을 통해 더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추가 범죄를 예방하고, 그 심각성을 인지시켜 우리 사회를 자정하는 것입니다. 점점 발전하는 기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처벌법, 그리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사회적 인식. 이 세가지의 높은 수준의 균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피해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된 후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저는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어 살아가다 보니 이 사건에 무뎌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동일한 피해를, 어쩌면 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미래의 또 다른 여성들을 생각하면 좀 더 강인해지고 세상에 맞서야 한다는 마음이 불피어 오릅니다.

 범죄가 용인된 사회는 힘차게 미래를 설계하려던 사람조차 무력감에 빠뜨립니다. 저 또한 혼자였다면 그 무력감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의 공동 행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처벌을 위해 힘 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가 아님에도, 더 나은 여성들의 삶을 위해 오늘 이 자리를 찾아주신 분들께도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고, 함께여서 더 강인합니다.

공동 행동을 통해 이 범죄의 심각성을 외치고, 이 범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법의 허점을 지탄하고, 집요하게 변화를 요구하면 우리 사회는 느리지만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여러분이 존재하기 때문에요.

마지막으로 늘 애써주시는 한사성 및 단체 여러분들과 집회 참여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발언 5. 김찬서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운영위원


2주 전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익숙함이었습니다. 기사에서 묘사된 가해자들의 행동은 제가 남고에 재학할 때 수없이 목격하고 경험했던 일들과 너무나 유사하여,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겹지인방에 모인 가해자들이 여성 지인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평범한 사진을 공유한 뒤 이를 악용해 불법 합성물을 제작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교실에서 여러 학생이 모여 공개적으로 학교 내 여성 교사나 다른 학교의 여성 학생, 여성 연예인 등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돌려보며 외모를 평가하거나 성희롱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가해자들이 자신이 찍은 친족이나 지인의 사진을 공유하며 명예욕이나 성취감을 느꼈다는 대목에서, 저는 몇몇 남학생들이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신이 누구와 성관계를 가졌다든지, 또는 성매매 집결지에 가서 성구매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나누고, 이를 듣는 다른 학생들이 그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과 제가 남고에서 만난 많은 남학생들 사이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실 제가 남고에서 만난 학생 중 이번 사건에 가담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해에 경찰이 검거한 딥페이크 이용 성범죄 가해자 중 무려 75.8%가 10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특별히 악랄하거나 나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각자의 고민과 생각, 취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그들 중에는 사회적 약자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번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단순히 몇몇 일탈적인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남성들이 실제 여성을 단순한 성착취물로 간주하며 소비하는 등 폭력적인 섹슈얼리티를 집단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고, 다시 이를 일종의 놀이 문화로 간주하며 묵인해온 '남성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만약 사회가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을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악마화하고, 이번 사건을 단순히 몇몇 악마적인 개인들의 문제로만 간주하다면, 만약 사회가 이번 사건을 가능케 한 '남성문화'도 함께 문제시하고 이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남성문화에 기반을 둔 집단적 성폭력은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번 사건에 대한 사회의 대책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가해자가 되지 말라, 딥페이크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서 멈춘다면, 대다수의 남성들은 자신이 공유하는 '남성문화'도 문제의 일부분이라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이번 사건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며,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악마라고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여성 지인들의 인스타 사진을 다른 남성들과 돌려보며 외모를 평가하거나 성희롱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내에서 (특히 동성 남성 집단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수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대신, 그들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소비할 수 있게 해온 남성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개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만 이러한 개입이 우리의 삶과 성을 분리하고, 성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은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며, 우리는 성을 삶에서 계속 마주치고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애써 부정하고 성을 낙인찍으며 성에 대한 모든 언급을 금기시하는 순간, 우리가 삶에서 성을 둘러싸고 겪는 수많은 문제나 어려움 등은 공론장에서 언급되지 못한 채 은폐되며, 사회가 성을 둘러싼 여러 문제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혹은 김대현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 안에서 서로 영영 섞이지 않을 부분이란 없다. 나의 일상 속 가장 후미진 성의 일이야말로 내 인격을 좌우한다. 그렇기에 그곳에서의 일에 대해 스스로 무언가 대책이 있어야 한다. 그 대책의 시작은 삶과 성을 서로 떼놓지 않고 묶을 때 비로소 발생하는 쟁점과 불화에 충실히 응답하는 것이다.“

 반대로 저는 성을 단순히 "음란한 것"으로만 인식하며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강간과 섹스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강간문화가 남성 사회 내에서 이토록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재생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성이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국한되었으며 성에 대한 공적 서사가 완전히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학교 내에서 대부분의 성교육은 "성폭력하지 마세요"라고만 얘기하는 방식의 성폭력방지교육이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란이 돼요" 내지 "월경은 이런 식으로 생겨요" 수준의 보건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교육은 정작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성, 특히 성적 욕망을 어떻게 대해야 하며,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적 서사의 부재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사적 영역에서 유통되고 있는 '강간문화'에 의존하는데요, 이는 수많은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성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 그리고 그 성적 자기결정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사회가 남성들 사이에서 범죄에 가까운 폭력적인 방식의 섹슈얼리티 실천을 끊임없이 '정상화'하는 남성문화를 멈추고, 그 대신 타인과 자신의 성을 긍정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과도 서로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성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성평등의 인식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성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사회가 해야 할 것은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와 모습을 숨기고 일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자유롭게 자신의 일상과 섹슈얼리티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성을 인식하고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에 대해서 더 높은 수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사회 안팎에서 가능하기 위해선,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성에 대해 얘기하더라도 폭력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어떤 공간에 모여서 성에 대해 안전하게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해당 공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성평등의 감각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 성평등의 감각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삶과 성에 대해 자유롭게 들어낼 수 있으려면, 설령 누군가가 그들에 대해 혐오표현을 하거나 성희롱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즉시 제지될 수 있을 만큼 성평등의 감각이 폭넓게 확산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평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성평등 의식이 바로 페미니즘의 핵심임을 고려하면, 양지혜 활동가의 말대로 페미니즘 교육은 공론장의 조건인 공통의 감각과 합의를 만들기 위한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평등의 인식의 확산은 단순히 교사 개인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나 교육 공동체, 사회 전체를 토론이나 논쟁을 통해 성평등하게 재배열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페미니즘 교육은 단순히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참여하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저는 제가 다녔던 남고에서도 이제는 누군가가 여성 지인의 사진을 톡방에 올리고 외모평가를 하더라도, 톡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타인의 사진을 올리고 외모평가를 하는 것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라고 즉시 제지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남고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게 탐구하고, 자신이 타인과 풍성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배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사진을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도, 청소년의 삶으로부터 성을 분리하려고 시도하는 것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는 오로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평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성이 인식되고 향유되는 방식이 성평등하게 바뀌고, 우리가 다른 사람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식 전반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재배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발언 6. 이명화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상임대표

 

전환적인 남성성을 위한 성평등 성교육 활동에 힘을 모으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상임대표라는 직함을 걸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집회 주최 측으로부터 청소년성문화센터 얘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당연히 해야지 이 시국에, 같이 연대해야지라는 당위성,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나요? 당연히 나와야지. 모여야지, 뛰쳐 나와야지 우리 화가 났다고 소리 지르고 같이 분노하는 모습 보여야지. 이 지경이 되도록 국가는 무엇을 했냐고 소리라도 쳐야지, 적극적인 수사로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소리쳐야지라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서서 발언을 하려고 하니 너무 너무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이 앞섭니다. 솔직히 너무 미안해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는 청소년 성교육과 상담, 성문화활동이라는 일을 하면서 20년이 넘게 밥을 먹고 살아 온 사람입니다. 소위 국가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평등하고 안전한 청소년성문화를 만들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런 제게 왜 책임이 없겠습니까? 내가 일을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 지경이 된 걸까? 4년전 n번방 때도 여기 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할 일들을 했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한 것일까? 이번 딥페이크 사태, n번방과 다르게 10대가 피‧가해 모두 70%를 넘는다는 현실 앞에서 요즘 청소년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아연실색 청소년전문가라는 사람이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전국에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아청법 이것도 IMF 지나고 하도 나쁜 놈들, 멀쩡한 아저씨들이 여성아동청소년을 원조교제네 뭐네 하면서 가지고 놀아서 그 놈들 처벌하자고 신상공개제도 만들고 뭐하고, 처벌만으로는 안되니 장기적으로 문화를 바꿔야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동법에 47조 건전성가치관 조성을 위해 아동청소년성교육 전문기관을 두도록 했는데. 법에는 성교육전문기관이라고 했는데 왜 청소년성교육센터라고 하지 않고 청소년성문화센터라고 했을까요? 청소년은 그저 교육을 받아야 하는 피교육자가 아니라 문화를 만들고 이끄는 주체적인 존재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워서 좋은 시민으로 자라게 해서 우리사회 성문화를 바꿔야한다는 의지를 담아낸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이 이름에 걸맞게 제대로 일을 한건가 심각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성교육이 효과가 있으려면 강당교육이 아니고, 일방적인 주입식이 아닌 소규모로 다양한 교구를 가지고 체험하며 토론하는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런거 학교에서 하지 못하니 학교가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그래서 체험형 교육장도 만들고, 이동형 성교육버스도 만들고 사각지대 도서산간벽지 찾아가는 성교육도 진행했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5명의 인력으로 몰려오는 교육을 겨우 겨우 감당하기 바빴고 열악한 노동조건에 2년만 되면 나가 떨어지는 활동가들 자리 채우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센터 수가 늘어나기는 커녕 줄어들고 최근엔 성평등교육을 한다고, 피임교육을 한다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논한다고, 성소수자를 포용한다고 성문화센터가 아니라 성문란센터라고 센터장 물러가라, 여가부는 예산을 깍아라, 급진적성혁명, 레디컬 패미니즘 교육한다고 말만들어서 민원테러로 교육을 마비시키고 의회 불려다니게 하고 최근 2-3년 저희를 지쳐 나가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n번방 사태가 나고 성문화연설대전에서 목소리 높였던 여성청소년의 이야기가 귓가를 계속 맴돕니다. “교실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배울 수 있게 해달라. 성에 관심 많은 청소년들 남자애들은 그들에게 성이야기는 혐오와 욕설, 색드립과 패드립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하는데 아무도 그걸 제지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를 배우질 못한다. 인터넷만 접하면 자기도 모르게 접하게 되는 더 쎄어 보이는 욕설들, 제발 이 남자애들 좀 가르쳐달라”

“학교만 가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귀를 막아도 막아도 들려오는 남자애들 드립치는거 기분너무 나쁘고 스트레스 받아 학교가기 싫어요.”라고 하는 여성청소년의 목소리가 이젠 제 마음에 묵직한 짐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 청소년들이 전 세계에서 1등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딥페이크포르노제작유포 범죄자 1등ㅠㅠ. 가까이 아는 학교 친구, 학교 선생님, 여동생, 엄마의 사진으로 남자청소년/남자청년들만의 방에서 히히덕 거리고 웃고 떠들고 니 것이 더 쎄다느니 아니 더 쎈거, 더 쌔끈한거 있으니 서로 부추키고 박수치고 ‘영웅’이라하고 잘난척하는 문화가 그 사이에 돈을 벌려는 플랫폼 업자들과 만나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소프트던 하드던 포르노로 만들어 딸치라고 강간하라고 물건 취급하며 돈받고 주고받을 때 ‘야 그건 선넘었어’라고 한마디 하는 또 다른 ‘전환적인 남성성’을 장착한 남성청소년들의 문화를 만드는데 실패를 했습니다.

 너무 미안합니다. “지인능욕” “노예놀이”이라는 단어를 이미 6-7년전부터 성교육하는 현장에서 들었을 때 좀 더 일찍 발화하고 사회적인 문제로 강력하게 문제화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제 오기가 생겨서, 분노가 생겨서, 책임감이 느껴져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성문화센터 활동가들 고작해야 300명 한 줌입니다. 성평등성교육강사까지 합쳐봐야 1000명이 안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열심히 성평등성교육 철학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들도 있고 결혼평균연령 32.4세인데 그때까지 순결지키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섹스해야한다고 하는 학부모들 그러니 성 얘기는 나중에라고 하는 학부모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조기성교육이 성폭력을 예방한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양육자들도 있으니. 나아가 봐야겠지요.

 무엇보다 ‘저 남자 싫어하지 않아요. 동료시민으로 같이 살고 싶어요.’라고 하는 여성청소년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 없으니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겠습니다. 정부에 국회에 요구도 하겠습니다. 우리 제대로 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런 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좀 많이 배치 하라고 성평등과 성교육에 중장기 국가 비전 만들고 국가예산 투자 좀 하라고

여러분 저희 이렇게 앞으로 더 나아가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투쟁!

 

■ 발언 7. 공무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직 교사이며, 여성이고, 노동 조합원이자 여러분의 동료 시민입니다. 제가 그 모든 정체성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제 삶의 자리에서 해온 고민을 나누고, 여러분과 함께 나아가고 싶은 길을 제안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회가 발생시킨 문제를 놓고 사회는 학교가 교육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깁니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중 여교사방이 있다고 합니다. 몇백 원이면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고 모욕당할 수 있는 노동환경에서 성범죄 예방을 위해 교육하라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해 그 원인이 여성혐오라고 말할 때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것으로 비난받고, 사상 검증을 받는 문화 안에서 성교육은 불가능합니다. 위축된 교사들이 소극적인 교육을 하도록 만드는 사회는 교육을 이용하여 여성혐오를 은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교사가 여성 의제에 대해 말할 때 스스로 검열하는 것을 목격하면 학생들은 여성혐오가 이 공간에서 용인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여성 의제를 논하는 사람들이 공격받고, 그러한 상황이 방관된다면 그 다음 단계의, 더 심각하고 직접적인 폭력도 쉽게 발생합니다.

 폭력은 사회 내에서 재생산된 혐오의 연장입니다. 여성혐오 세력에게 표를 얻고 싶어서 그들의 입맛에 맞춘 정책을 내놓은 정부, 성착취를 통해 돌아가는 자본 구조, 자극적인 말로 여성혐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미디어. 이 거대한 여성혐오의 구조를 성찰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성에게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구조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여성에 대한 성범죄와 성착취는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만을 바꾸어 재생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민 여러분, 여성혐오가 표가 되고 돈이 되지 못하도록 막아주십시오.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용인하지 마십시오. 여성주의에 대한 검열을 비판하고, 여성이 자기 문제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도록 지지하고, 그 문제들에 대해 함께 분노해 주십시오.

 이것은 고작 일상의 존엄이라는 당연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투쟁입니다. 인간의 자아가 말소되고 신체가 고깃덩어리처럼 사고 팔리며, 이미지로 물화 되는 것을 거부하는 투쟁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비단 여성만이 아닌 시민 모두의 투쟁이어야 하며, 연대만이 우리가 서로의 존엄을 염려하는, 인간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 발언 8. 지혜복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해 싸우고 있는 교사

 

안녕하세요.

저는 A학교에서 일어난 학내 성폭력 사안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 부당전보 되어 8개월 째 투쟁하고 교육노동자 지혜복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작년 5월 말 여학생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학생 간 성폭력 사안이 2년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학교관리자들에게 보고하고 무기명 설문조사를 긴급하게 실시하였더니 여학생의 3분의 2가 다양한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6명의 피해 학생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A학교 관리자들은 성폭력을 제대로 해결하기는커녕 사건을 축소하고 2차 피해를 유발했습니다. 학교 내 학폭전담기구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사 담당자가 피해 학생 신원을 유출했고, 그는 피해학생들을 생활지도부로 불러 공개 조사하였으며, 심지어 수업 시간까지 찾아가 생활지도부로 오라며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였습니다. 또한 가해 학생 보호자만 연락을 취하고 피해 학생 보호자에게 일체 연락하지 않았으며 피해 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 법정대리인 내지 보호자가 동석하는 보호조치도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서울시교육청에 이 사안을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며 공익제보했습니다. 그러나 교육청은 2달 후 학교 조사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안 상황은 최악이었고 피해 학생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타에 재조사를 요청하였습니다. 8개월 만에 작년 말 12. 27. 다행히 시정 권고 조치가 학교에 내려왔습니다. 시정 조치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올해 하나씩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생각이었습니다. 피해 학생들이 이제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그리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내게 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A학교는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는커녕 저를 부당전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폭력 사안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 학생들을 두고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당전보된 학교로의 출근을 거부하고 다시 A학교로 되돌아가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1. 21. 아침, 서울시교육청 앞으로 나가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싸움을 시작해 이제 가장 더운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학교관리자, 중부교육지원청, 서울시교육청은 하나가 되어 누구도 일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피해 학생과 보호자, 교사의 목소리를 지우며 조력한 교사의 노동권을 박탈하면서까지 이 사안이 잘 해결된 것으로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를 중징계하겠다고 9. 12. 징계위를 소집한 상태입니다.

 저는 딥페이크 성폭력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성차별과 성폭력을 외면해 온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와 교육당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단적인 사례로 A학교에서 일어난 사안입니다. 그래서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75.8%가 10대이며, 디지털 성범죄 가해 아동·청소년 10명 중 9명은 ‘범죄’라는 인식 없이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가 일어나자 교육 현장에서는 여학생들을 모아놓고 “니들이 스스로 사진을 지우고 조심해야 된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SNS 사진을 지우게 한다고 딥페이크가 사라질까요? 그동안 과연 교육당국은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청소년 딥페이크 성폭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포괄적 성교육을 비롯해 성평등한 교육을 위한 교육당국의 긴급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들과 이들의 곁에 선 교육노동자들의 목소리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학교 내 성폭력 피해를 외면하는 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중징계 협박에 맞서서, 싸우겠습니다.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A학교로 돌아가 성폭력 사안이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로서, 교육노동자로서 당당하게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이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더 많은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투쟁!

 

■ 발언 9. 나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안녕하세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나나입니다.

 2020년 N번방 성착취 사건이 터져서 전국민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던 사건, 여기 계신 여러분들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4년 후인 2024년 오늘, 우리는 여전히 여성을 물화하고, 놀잇감으로 여기는 남성문화의 변화되지 않은 현실에 분노하여 이 자리에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터지자, 언론은 이 사건의 아직 ‘어린’ 10대 가해자를 악마화하거나, 일반인 혹은 ‘유명’ 연예인도 피해자라는 방식으로 보도를 연달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회는 “엄정 대응”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며, 각종 법안들을 발표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습니다. 또한 온라인상에서는 다시 젊은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메르스 갤러리가 탄생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충격과 분노로 들끓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분노에 함께 공명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뒤틀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 일입니다. 유명 여성 BJ가 나이 많은 남자와 그저 길거리를 걸었다는 이유로 사실과는 상관없이 ‘스폰’ 관계라는 논란이 발생하고, 그 여성은 ‘벗방’ 컨텐츠를 통해 ‘돈’을 버는 BJ라며 호도되는 현실, 그리고 이 BJ를 향한 사회적 비난을 잊지 못합니다. N번방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섹계와 일탈계를 하는 여성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고, ‘자발적’으로 한 것이기에 ‘당해도 싸다’라는 인식, 그 인식은 과거나 현재나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저항이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 우리의 분노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 문화가 변화 발전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 즉 딥페이크 피해와 벗방 비제이, 그리고 성매매는 결코 동떨어진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남성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공모자가 되어 여성을 성산업으로 내몰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었던 ‘유흥업소’의 역사에서 이미 딥페이크는 배태되어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놀이로 여기는 오프라인에서의 뒤틀린 남성문화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공간을 이전하였습니다. 젠더폭력이 배태되어있는 디지털 공간은 오프라인 공간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욕’을 긍정하고, 추동하고, 여성의 몸을 경유하여 돈을 벌며,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키스방 알리미’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고, 또 누군가는 여성에게 돈을 ‘대가’로 줌으로써 성적 행위를 요구하고, 성적 요구를 수행하는 여성의 모습을 시청함으로써 전능감을 느끼는 벗방 시청자, 여성의 몸을 통해 수익을 얻는 벗방 플랫폼과 엔터사. 일상이 된 기형적인 남성 문화가배태된 디지털 공간에서의 벗방, 성매매와 성산업, 그리고 그 연장선 안에 엔번방과 딥페이크가 있습니다. 따라서 딥페이크는 딥페이크만의 문제가 아니며, 엔번방은 엔번방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딥페이크 성산업 역시 남성 성욕의 절대화, 여성의 몸을 경유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거대한 디지털 성 산업 중 하나입니다.

김정희원 선생님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등장한 몸이 누구의 “몸”인지’ 질문합니다. AI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으므로 원본으로 쓰일 몸이 필요한데, 그렇게 동의 없이 멋대로 사용된 몸이 성노동자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여성의 몸이 사용되었다면, 요즘은 “온라인 스트리머”라고 불리는, 즉 여캠 혹은 벗방 bj의 몸입니다. 따라서 딥페이크는 이중, 삼중의 착취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노와 저항의 폭을 더욱 확장해야 합니다. ‘딥페이크’만의 문제, ‘일반’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딥페이크와 성착취물의 논의 안에 남성중심적인 경제체제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활용하여 ‘돈’을 버는 여성에 대한 비난을 멈춰야 합니다. 성매매 여성들은 어쩌면 젠더폭력의 담론에서 가장 오래된 피해자이자, 그 존재가 자체가 피해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잊혀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성매매 여성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한 인격을 가진 존재이자 시민입니다. 

우리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몸이 돈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활용하여 이득을 보는 대상은 누구인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더불어 ‘일반’인, 어떤 연예인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가해자들은 어느 정도로 어렸는지 별로 안 궁금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질문을 전환해야 합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를 집중하기보다, ‘많은 돈’이 벌리는 성산업, 그 자체에 질문할 것을 요청합니다.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한 성산업은 결코 순결한 여성의 문제도 아니고, 돈에 눈이 밝아 음란한 여성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산업이 ‘산업’으로 작동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 남성의 폭력적인 남성성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이를 유머로 여기는 남성 문화의 문제입니다. 이상입니다.

 


시민 발언에 이어 우리의 분노를 담을 수 있는 퍼포먼스를 1,200여명의 집회 참여자들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텔레그램에서 아무렇지 않게 딥페이크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여성혐오가 당연한 공기를, 더이상 국가가 방조하지 않기를 국가의 제대로 된 역할과 공동체의 역할로 경계가 없이 폭주하는 남성문화, 강간문화가 중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회 참여자들 한분 한분이  ‘여성혐오 딥페이크 우리가 뒤엎는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 스티커를 붙여주셨습니다. 스티커를 붙이는 마음 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우리가 직접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국가 방조’, ‘여성혐오’, ‘남성문화’라고 적혀있던 핸드폰 모형의 피켓을 구호를 외치며 부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해 분노하면서 온라인 남성문화 해체 촉구와 반성폭력을 외쳤습니다. 



퍼포먼스를 진행 한 이후에 보신각을 시작으로 광화문역, 청계광장, 광교, 보신각으로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며 야밤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광화문 일대를 40분 가량 행진하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성평등)

학교에서도 (성평등)

직장에서도 (성평등)

가정에서도 (성평등)

지금 당장 (성평등)

우리 힘으로 (성평등)



한번의 집회로 절망의 시간을 단번에 바꿀 수 없지만, 한번의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목소리로 국회를, 국가를, 사법부를, 성폭력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9월 6일 1,200여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습니다. 집회 마무리에는 함께 핸드폰 불을 밝히고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여성혐오 딥페이크 우리가 뒤엎는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