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3월 28일 출범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강간죄개정연대)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로 개정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올해 강간죄개정연대는 미국의 ‘동의’ 기준 성폭력 법의 실제를 톺아보고 한국에서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미국 라모나 알빈(Ramona Albin) 샘포드 대학교 컴벌랜드 로스쿨 교수를 초청하여 국회 토론회와 활동가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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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목),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활동가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활동가 간담회에는 라모나 알빈 교수와 강간죄개정연대 활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스물 아홉명의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다양한 피해를 지원하며 강간죄개정을 위해 애써왔던 활동가들이 활동 경험 속에서 떠올린 고민을 적극적으로 나누면서 풍부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간담회의 이야기는 크게 미국의 강간죄 개정 과정, 개정 이후 사법 체계 실무 및 사회문화적 변화, 강간죄 개정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와 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간죄가 개정되기까지
Q. 미국에서 강간죄가 개정될 수 있었던 배경/조건은 무엇이었나요?
: 미국의 경우 주마다 기준 법과 법체계가 다르고, 모든 주에서 동의 중심 법을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주에서는 동의 기준 법이 빠르게 통과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주도 있습니다.
2024년 논쟁 끝에 동의 기준으로 강간죄를 개정한 메릴랜드를 예를 들면, 메릴랜드에서는 1) 동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함, 2) 법문 내용과 교육 현장에 괴리가 있음-교육 현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으나, 법은 이를 반영하지 않음, 3) 동의 기준으로 변경될 경우 피고에게 입증 책임이 몰릴 수 있음, 4) 동의 기준으로 변경 시 유형력 기준보다 유죄판결이 낮아질 수 있음, 5) 저항은 상호정의가 아니지 않냐는 우려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메릴랜드는 성폭력 피해자 지지집단 <성폭력에 반대하는 메릴랜드 연합>(Maryland Coalition Against Sexual Assault)이 법 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입법자와 긴밀하게 소통하여 법 개정의 정당성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법안 통과가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주는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Q. 강간죄 개정 과정에서 걸림돌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걸림돌은 ‘강간 신화’, 피해자 여성에 대한 편견이었고, 개정에 대한 여러 저항도 있었습니다.
Q. 법 개정 과정에서도 개정 반대-‘무고 우려’, ‘억울한 처벌 증가’, ‘자연스러운 성적 접촉의 저해 요인’ 등-주장이 있었나요? 어떻게 대응하고 설득했나요?
: 미국에서도 한국과 유사한 반대 의견이 있었는데요. 무고 우려의 경우, 데이터가 이를 반증해주었습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무고죄 비율은 2-8%로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성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절도나 폭력 등 다른 범죄도 피해자-가해자 진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빙성을 입증하는 방식도 다른 범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범죄는 증인이 많지 않을 수 있으나,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의 지지자가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강간죄 개정 이후, 사법 실무 변화
Q. 동의 중심 법체계에서는 피해자의 동의/비동의를 어떤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나요?
: 여전히 미국의 대다수 법이 동의 기준과 유형력 기준을 바탕으로 함께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1980년대부터 저항보다 동의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물리적인 저항이 없어도, 거부 의사가 있으면 동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마다 동의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1975년부터 법령에 동의 규정을 명시한 위스콘신은 동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며, 확실한 행위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고, 버몬트는 명확하고 자발적인 동의로 규정하며 동의에 대한 요건 또한 정의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는 동의는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Q. 동의 정의(자발적/자유로운/명확한 등)가 실제 범죄 입증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합니다.
: 버몬트주 법안에서 동의는 verbal word가 아닌 agreement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의는 말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위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의 여부 판단에는 피해자 진술과 신빙성이 중요한데요. 만약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피해자 진술과, 이와 관계된 모두의 진술을 듣습니다. 범죄 여건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피해자 말대로 동의 없음이 확인되면 기소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가해자와 이별 후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상황에 질투한 가해자(전 남자친구)가 집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폭행하고 두 차례에 걸쳐 강간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는데요. 가해자가 비동의 의사를 표현한 적 없다, 동의에 의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기각하고 두 차례 모두 유죄 선고를 내렸습니다. 피해자의 눈물을 비동의 의사로 보고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낀 상태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Q.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가해자의 말이 다를 경우 어떻게 수사·기소가 이루어지나요?
: 피해자가 증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수사관이나 검사는 피해자 조사를 할 때 진술을 통해 정보를 상세히 파악해야 하며, 올바른 진술과 신빙성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전달한 주변인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도 파악해야 합니다. 수사사법기관이 피해자에게 지지적인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수사사법기관에서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중심 조사, 사후 검사, 증거 채집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필요하며, 이러한 가이드에 기반하여 증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하는 책임은 사법기관에 있기 때문입니다.
Q. 한국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 단계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피/가해자 진술만 있는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더 많은 의심을 받고, 진술만으로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 미국에서도 담당 수사관과 검사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편견을 지닌 수사관이나 검사가 배정되면 제대로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가져야 하는 범죄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데요. 법 개정은 지금 당장 문제를 바꿀 수 없더라도, 사회적 통념을 바꾸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법 개정 후에도 여러 걸림돌을 넘어야 하지만, 법 개정은 최소한의 변화를 이끄는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얼마나 ‘강간 신화’가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수백 년간 ‘강간 신화’나 ‘피해자다움’ 편견이 지속된 게 사실입니다. 법 개정은 작은 변화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쌓이면 더 큰 인식 변화나 개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이 과정에서 실무적인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가장 큰 실무적인 어려움은 ‘강간 신화’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대해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진술을 못 믿겠다 등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 기준으로 법 개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수사 진행 시 가졌던 ‘강간 신화’나 편견 때문에 고소된 사건의 75%가 기각당합니다. 수사와 처벌이 진행되어야 할 사건들이 수사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에서 검찰로 이첩된 성폭력 사건 중 20%만 기소되며, 나머지는 불기소되는데 이 또한 ‘강간 신화’와 편견에 의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교육과 올바른 정책이 진술 신빙성과 ‘강간 신화’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배심원 평결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전히 판사나 배심원에 대해 동의 기반 법안 설명과 교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Q. 법 변화도 중요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감수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찰, 검찰, 판사의 인식 변화를 이끄는 게 어려운 일인데요. 미국에서는 경찰, 검찰, 판사를 교육·재교육하는 제도가 있나요?
: 미국도 한국처럼 편견을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경찰과 검찰에게 막강한 권한이 있어 교육이 쉽지 않지만, 다양한 트레이닝과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들에게 어떤 점이 문제인지, 동의 기준에 맞추어서 수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강간죄 개정 이후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성폭력 관련 데이터가 없고, 주별로 신고율·기소율 등 데이터가 다르게 집계되어 있습니다. 연방 차원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면 아직 동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주에서 법 개정 촉구를 하는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동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주에서 ‘확정적 동의 의사 모델’을 기준으로 채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한국의 강간죄개정 운동이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 저항이 많은 환경에서 법 개정이나 사회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입법자를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 같습니다.
강간죄 개정 이후, 사회문화적 변화
Q. 미국에서 강간죄 개정 이전과 이후, 시민들의 인식과 사회 변화는 어땠나요?
: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명확한 데이터는 없으나, 많은 대학에서 캠퍼스 성범죄를 다룰 때 확실한 동의 모델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민 보호이기에 법에 명문화되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서서히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죄 개정과 다양한 이슈‧연대
Q. 장애 여성의 경우, 동의를 표현하거나, 표현하지 않더라도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이를 동의가 없거나, 동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장애를 동의 능력의 결어나 제한으로 해석하고 있나요?
: 많은 경우 무의식 상태, 인지 능력이나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알코올에 영향을 받은 경우 등을 가중처벌의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능력이 없거나, 인지를 못하거나, 무의식 상태였다고 하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협박이나 원치 않은 위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가중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체성으로만 보지 않고 상황과 맥락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 강간죄 개정 이후 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 판단‧수사‧기소에서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 미국의 경우 피해자 연령이 어릴수록 가해자를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특별수사팀에서 피해 아동을 위해 배치하는 변호사가 있고 담당 심리치료사, 활동가들이 피해 아동 진술시 조력하며, 사법기관에서도 다각도로 피해 아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도시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나, 작은 도시에서는 여러 한계가 있으나, 그럼에도 사법기관에 전담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이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연령이 어린 피해자는 여러 이유로 신고를 망설이기 때문에 초기 대응 단계에서 만난 사법기관 인력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냐가 이후 대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Q. 한국에서는 성매매를 동의가 오간 거래로 간주하고,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성매매는 대가가 있었다는 이유로 마치 여성이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대가=동의’라는 견고한 명제를 부수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 미국에는 ‘성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없으며, 일부 주에서는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습니다. 검사 시절, 성매매 여성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피고인이 기소당했으나, 많은 사람이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 편견을 없애는 일이 더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와 관련된 영역에서 동의의 명확한 정의와 기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도 강간죄 정의나 피해자보호법령에 성별이 명시된 것으로 인해 생긴 고민이 있나요? 혹은 퀴어 또는 트랜스 맥락에서 지원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제도가 있나요?
: 법률에 어떠한 용어가 쓰였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스콘신주는 법령에 person으로 명시되어 있는데요, 이는 특정 사람에 대한 정의가 아닌, ‘그냥’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률 용어 표현이 모두를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성소수자 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높은 기소율과 유죄 판결 비율을 보이기도 합니다. 관련 담당자를 트레이닝하고 교육하는 경우도 있구요.
Q. 동의 중심의 강간죄 개정이 미국 내 이주민,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퀴어 인권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 메릴랜드주의 법 개정에 흑인 인권 단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기존 유형력 중심의 기준에는 오류가 많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범위의 피해자를 아우를 수 있도록 법개정과 사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19년 3월 28일 시작된 개정연대 활동이 어느덧 7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간, 개정연대는 기자회견과 집회, 간담회, 토론회, 자료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개정을 촉구해왔습니다. 강간죄 개정의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고 많은 오해와 편견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간담회에서는 활동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모나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강간죄 개정 이후 변화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동의기준의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피해자가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성폭력으로 이야기하고, 법적 대응 과정에서 수사사법기관 관계자들이 피해자를 존중하며, 피해자가 놓여 있던 상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살피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에 더해 법 개정이 실질적인 변화로, 사회문화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간죄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민우회와 개정연대 활동에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이 궁금하다면?
📍 경향신문 공동기획 릴레이 인터뷰 <비동의강간죄, 다시 국회로>
일상적·문화적·법적 차원의 '동의'를 폭넓게 살펴보고 싶다면?
📍 <강간죄 개정을 위한 동의 안내서>
지난 5월 28일(목),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활동가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활동가 간담회에는 라모나 알빈 교수와 강간죄개정연대 활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이 있는 스물 아홉명의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다양한 피해를 지원하며 강간죄개정을 위해 애써왔던 활동가들이 활동 경험 속에서 떠올린 고민을 적극적으로 나누면서 풍부한 이야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간담회의 이야기는 크게 미국의 강간죄 개정 과정, 개정 이후 사법 체계 실무 및 사회문화적 변화, 강간죄 개정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와 연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간죄가 개정되기까지
Q. 미국에서 강간죄가 개정될 수 있었던 배경/조건은 무엇이었나요?
: 미국의 경우 주마다 기준 법과 법체계가 다르고, 모든 주에서 동의 중심 법을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주에서는 동의 기준 법이 빠르게 통과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주도 있습니다.
2024년 논쟁 끝에 동의 기준으로 강간죄를 개정한 메릴랜드를 예를 들면, 메릴랜드에서는 1) 동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함, 2) 법문 내용과 교육 현장에 괴리가 있음-교육 현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으나, 법은 이를 반영하지 않음, 3) 동의 기준으로 변경될 경우 피고에게 입증 책임이 몰릴 수 있음, 4) 동의 기준으로 변경 시 유형력 기준보다 유죄판결이 낮아질 수 있음, 5) 저항은 상호정의가 아니지 않냐는 우려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메릴랜드는 성폭력 피해자 지지집단 <성폭력에 반대하는 메릴랜드 연합>(Maryland Coalition Against Sexual Assault)이 법 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입법자와 긴밀하게 소통하여 법 개정의 정당성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법안 통과가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주는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Q. 강간죄 개정 과정에서 걸림돌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걸림돌은 ‘강간 신화’, 피해자 여성에 대한 편견이었고, 개정에 대한 여러 저항도 있었습니다.
Q. 법 개정 과정에서도 개정 반대-‘무고 우려’, ‘억울한 처벌 증가’, ‘자연스러운 성적 접촉의 저해 요인’ 등-주장이 있었나요? 어떻게 대응하고 설득했나요?
: 미국에서도 한국과 유사한 반대 의견이 있었는데요. 무고 우려의 경우, 데이터가 이를 반증해주었습니다. 데이터에 따르면 무고죄 비율은 2-8%로 매우 낮게 나타납니다.
성폭력 범죄뿐만 아니라 절도나 폭력 등 다른 범죄도 피해자-가해자 진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빙성을 입증하는 방식도 다른 범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다른 범죄는 증인이 많지 않을 수 있으나,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의 지지자가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강간죄 개정 이후, 사법 실무 변화
Q. 동의 중심 법체계에서는 피해자의 동의/비동의를 어떤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나요?
: 여전히 미국의 대다수 법이 동의 기준과 유형력 기준을 바탕으로 함께 판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1980년대부터 저항보다 동의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물리적인 저항이 없어도, 거부 의사가 있으면 동의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마다 동의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1975년부터 법령에 동의 규정을 명시한 위스콘신은 동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며, 확실한 행위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고, 버몬트는 명확하고 자발적인 동의로 규정하며 동의에 대한 요건 또한 정의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는 동의는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자발적이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Q. 동의 정의(자발적/자유로운/명확한 등)가 실제 범죄 입증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합니다.
: 버몬트주 법안에서 동의는 verbal word가 아닌 agreement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동의는 말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위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의 여부 판단에는 피해자 진술과 신빙성이 중요한데요. 만약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피해자 진술과, 이와 관계된 모두의 진술을 듣습니다. 범죄 여건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피해자 말대로 동의 없음이 확인되면 기소합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가해자와 이별 후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 상황에 질투한 가해자(전 남자친구)가 집에 침입하여 피해자를 폭행하고 두 차례에 걸쳐 강간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는데요. 가해자가 비동의 의사를 표현한 적 없다, 동의에 의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기각하고 두 차례 모두 유죄 선고를 내렸습니다. 피해자의 눈물을 비동의 의사로 보고 피해자가 두려움을 느낀 상태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Q.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가해자의 말이 다를 경우 어떻게 수사·기소가 이루어지나요?
: 피해자가 증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수사관이나 검사는 피해자 조사를 할 때 진술을 통해 정보를 상세히 파악해야 하며, 올바른 진술과 신빙성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전달한 주변인이 있다면 이들의 이야기도 파악해야 합니다. 수사사법기관이 피해자에게 지지적인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수사사법기관에서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 중심 조사, 사후 검사, 증거 채집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필요하며, 이러한 가이드에 기반하여 증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 증거를 수집하고 입증하는 책임은 사법기관에 있기 때문입니다.
Q. 한국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 단계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피/가해자 진술만 있는 상황에서는 피해자가 더 많은 의심을 받고, 진술만으로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 미국에서도 담당 수사관과 검사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편견을 지닌 수사관이나 검사가 배정되면 제대로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가져야 하는 범죄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데요. 법 개정은 지금 당장 문제를 바꿀 수 없더라도, 사회적 통념을 바꾸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법 개정 후에도 여러 걸림돌을 넘어야 하지만, 법 개정은 최소한의 변화를 이끄는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사회적으로 얼마나 ‘강간 신화’가 지속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수백 년간 ‘강간 신화’나 ‘피해자다움’ 편견이 지속된 게 사실입니다. 법 개정은 작은 변화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쌓이면 더 큰 인식 변화나 개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이 과정에서 실무적인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가장 큰 실무적인 어려움은 ‘강간 신화’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대해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진술을 못 믿겠다 등 편견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동의 기준으로 법 개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수사 진행 시 가졌던 ‘강간 신화’나 편견 때문에 고소된 사건의 75%가 기각당합니다. 수사와 처벌이 진행되어야 할 사건들이 수사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에서 검찰로 이첩된 성폭력 사건 중 20%만 기소되며, 나머지는 불기소되는데 이 또한 ‘강간 신화’와 편견에 의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교육과 올바른 정책이 진술 신빙성과 ‘강간 신화’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배심원 평결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전히 판사나 배심원에 대해 동의 기반 법안 설명과 교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Q. 법 변화도 중요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감수성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찰, 검찰, 판사의 인식 변화를 이끄는 게 어려운 일인데요. 미국에서는 경찰, 검찰, 판사를 교육·재교육하는 제도가 있나요?
: 미국도 한국처럼 편견을 바꾸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경찰과 검찰에게 막강한 권한이 있어 교육이 쉽지 않지만, 다양한 트레이닝과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들에게 어떤 점이 문제인지, 동의 기준에 맞추어서 수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강간죄 개정 이후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성폭력 관련 데이터가 없고, 주별로 신고율·기소율 등 데이터가 다르게 집계되어 있습니다. 연방 차원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면 아직 동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주에서 법 개정 촉구를 하는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동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주에서 ‘확정적 동의 의사 모델’을 기준으로 채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Q. 한국의 강간죄개정 운동이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 저항이 많은 환경에서 법 개정이나 사회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입법자를 움직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 같습니다.
강간죄 개정 이후, 사회문화적 변화
Q. 미국에서 강간죄 개정 이전과 이후, 시민들의 인식과 사회 변화는 어땠나요?
: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명확한 데이터는 없으나, 많은 대학에서 캠퍼스 성범죄를 다룰 때 확실한 동의 모델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민 보호이기에 법에 명문화되면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서서히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죄 개정과 다양한 이슈‧연대
Q. 장애 여성의 경우, 동의를 표현하거나, 표현하지 않더라도 표현되기도 하는데요. 이를 동의가 없거나, 동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장애를 동의 능력의 결어나 제한으로 해석하고 있나요?
: 많은 경우 무의식 상태, 인지 능력이나 자기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알코올에 영향을 받은 경우 등을 가중처벌의 요소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능력이 없거나, 인지를 못하거나, 무의식 상태였다고 하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협박이나 원치 않은 위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가중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체성으로만 보지 않고 상황과 맥락을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 강간죄 개정 이후 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 판단‧수사‧기소에서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 미국의 경우 피해자 연령이 어릴수록 가해자를 가중처벌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특별수사팀에서 피해 아동을 위해 배치하는 변호사가 있고 담당 심리치료사, 활동가들이 피해 아동 진술시 조력하며, 사법기관에서도 다각도로 피해 아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도시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나, 작은 도시에서는 여러 한계가 있으나, 그럼에도 사법기관에 전담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이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연령이 어린 피해자는 여러 이유로 신고를 망설이기 때문에 초기 대응 단계에서 만난 사법기관 인력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냐가 이후 대응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Q. 한국에서는 성매매를 동의가 오간 거래로 간주하고,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성매매는 대가가 있었다는 이유로 마치 여성이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대가=동의’라는 견고한 명제를 부수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 미국에는 ‘성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없으며, 일부 주에서는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습니다. 검사 시절, 성매매 여성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피고인이 기소당했으나, 많은 사람이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 편견을 없애는 일이 더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와 관련된 영역에서 동의의 명확한 정의와 기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도 강간죄 정의나 피해자보호법령에 성별이 명시된 것으로 인해 생긴 고민이 있나요? 혹은 퀴어 또는 트랜스 맥락에서 지원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제도가 있나요?
: 법률에 어떠한 용어가 쓰였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스콘신주는 법령에 person으로 명시되어 있는데요, 이는 특정 사람에 대한 정의가 아닌, ‘그냥’ 사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배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률 용어 표현이 모두를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성소수자 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높은 기소율과 유죄 판결 비율을 보이기도 합니다. 관련 담당자를 트레이닝하고 교육하는 경우도 있구요.
Q. 동의 중심의 강간죄 개정이 미국 내 이주민,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퀴어 인권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 메릴랜드주의 법 개정에 흑인 인권 단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습니다. 기존 유형력 중심의 기준에는 오류가 많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범위의 피해자를 아우를 수 있도록 법개정과 사법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2019년 3월 28일 시작된 개정연대 활동이 어느덧 7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간, 개정연대는 기자회견과 집회, 간담회, 토론회, 자료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고 개정을 촉구해왔습니다. 강간죄 개정의 가능성이 잘 보이지 않고 많은 오해와 편견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간담회에서는 활동가들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라모나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강간죄 개정 이후 변화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습니다. 동의기준의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피해자가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성폭력으로 이야기하고, 법적 대응 과정에서 수사사법기관 관계자들이 피해자를 존중하며, 피해자가 놓여 있던 상황과 맥락을 구체적으로 살피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에 더해 법 개정이 실질적인 변화로, 사회문화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간죄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민우회와 개정연대 활동에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의 기준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이 궁금하다면?
📍 경향신문 공동기획 릴레이 인터뷰 <비동의강간죄, 다시 국회로>
일상적·문화적·법적 차원의 '동의'를 폭넓게 살펴보고 싶다면?
📍 <강간죄 개정을 위한 동의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