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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민우회 시민모니터링단 멤버들이 미디어 속 스포츠 장면에서의 여성 재현에 관한 모니터링 활동을 모두 마치고, 활동소감을 한 편의 글로 적어주셨습니다. 모니터링단 6명의 이야기를, 두 개 게시글로 나누어 세 편씩 소개합니다. 여기서는 쓸구, 디디푸, 진원님의 이야기를, 다음편 글에서는 시원, 함박, 이현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목은 (진원님의 글을 제외하고) 편집팀에서 임의로 달았답니다. 2개월 동안 함께 시간과 공들여 모니터링 활동에 함께 해주신 멤버 여러분께 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편집(성평등미디어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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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은 많이 말해야 한다,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글쓴이: 쓸구 안녕하세요, 저는 민우회의 숨은 지지자 쓸구라고 합니다. :) 매번 뉴스레터를 통해 다른 분들이 활동하시는 것을 봐오다가, 이렇게 덥석 시민모니터링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워크숍을 통해서 다양한 분들의 생각과 시선을 엿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뜀박질할 때마다 차오르는 숨,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제 마음껏 발을 구르고 힘을 쓰는 대로 움직여지는 게 신이 났다. 어느 겨울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가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정면을 응시하고 팔을 열심히 앞뒤로 휘저으며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쭉 달려나갈 것. 달리기를 ‘익히던’ 그때의 벅참은, 곧 초등학생이 되어 무너지기 시작한다.
백말띠 남자애들은 어쩜 그렇게 무례하고 기고만장하였을까.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빠가 가르쳐주던 그 겨울날의 운동장과 똑같은 학교 운동장에서 부끄러움을 배웠다. 여자인 주제에 용을 쓰며 너무 열심히 달린 것이, 부끄러워야 했던 이유였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인 주제에, 몇몇 남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뭉쳐서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달리는 여자아이들의 몸짓을 흉내 내고 하나같이 거기에 조롱과 비웃음을 달았다. 그 아이들에 대한 제재는 없었고, 그래서 일종의 놀이 마냥 체육 시간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놀림 때문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그저 뛰는 시늉만을 하곤 마쳤다. 하얀 선이 그어진 출발선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뛸지, 아니면 저들의 비웃음을 피하여 가장 중립적인 어떤 적당한 상태를 연기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곤 했다. 슬프게도, 나에게 ‘스포츠’란 늘 여성다움과는 대치되는 것. 그래서 진심으로 그것을 좋아하면 부끄러워지는 것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스무 살 이후, 나는 ‘여대’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스포츠를 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남자(아이)들은 그토록 여자(아이)들에게서 스포츠를 빼앗아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만의 것인양 전유하려 하였을까. 너무너무 좋아서 독점하고 싶었을까. 나에게 다시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려준 건, 그렇게 언젠가 ‘적합하지 않다’고 스포츠를 누릴 권리를 한 번씩 빼앗겨본 적 있던 여성들이었다. 그들 손에 이끌려 필라테스를 배우고, 크로스핏(이라는 당시 신종? 스포츠?)도 접하고, 복싱을 배우고, 클라이밍을 하고, 난생 처음 마라톤을 나가면서 나는 ‘운동하는 여성들’에 대해 이 세상이 더 많이 보고 말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지금까지의 미디어는 여성의 스포츠를, 여성과 스포츠를 어떻게 재현해 왔는지.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누릴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어떤 시선으로 여성과 스포츠를 바라보고 있는지.
민우회의 모니터링단 활동은, 근래에 나왔던 다양한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을 훑으면서 우리가 고군분투해온 어떤 시간들의 과정과 결과를 포착해 내는 시간이었다. 여러 시즌을 거듭해 나갈수록 뜻밖에(?) 젠더감수성이 올라가는 과정을 읽어낸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편협함에 한탄한다던가, 그간 조금씩 바뀌어온 사회적 젠더감수성을 바탕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프로그램을 맛보며 서로 흡족한 미소를 나눈다든가.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랜선으로 함께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의 시선을 나누고 얽히는 것이었다. ‘나’에게 익숙했던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뾰족한 가시처럼 걸리곤 했고, 남들은 말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나는 입을 떼보고 싶은 것들을 진솔하게 나누었는데, 그건 마치 각자가 경험한 스포츠의 역사를 공유하는 일인 것 같아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몇 번씩 내가 빼앗겼던 스포츠의 시간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이차 성징이 나타나던 시기, 나의 모든 몸은 ‘정적인 것’으로 박제되길 요구받았다. 얌전히, 조신하게,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중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축구하고 농구하는 남자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 부러움은 사실 서러움이었고, 그래서 스포츠가 비단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은 많이많이 많이 말해야 한다.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스포츠가 여성들에게 주는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성장이 얼마나 애틋한지에 대해서 세상은 더 많이 말해야한다. 함께함으로써,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곳까지 가닿게 되는 경험을. 작년, 나는 처음으로 마라톤을 나가보았다. 생애 첫 마라톤. 그것도 용감하게 10km를. 마라톤 연습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복싱으로 늘려온 심폐지구력을 믿고서 냅다 지른 거였다. 그 첫 도전에 오랜 선배인 S 언니가 함께했고, 서로가 함께 또 따로 달리면서 각자의 한계를 넘어섰다.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차원이라는 것을 첫 마라톤에서 확인한 뒤, 내친김에 초보운전자이면서 첫 부산 원정 마라톤을 떠났다. 이번에는 기록 갱신. 외국에서 근무하는 B 언니도 이번엔 함께였다. 언니들은 모두 하프 마라톤. 나는 혼자서 달려보는 10km 달리기. 우리 모두 저마다 넘어서고 싶은 선이 있었고, 스스로와 마주한다는 공통감각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 마라톤을 마친 뒤, 노곤한 상태에서 무심코 킨 호텔 티비에 <무쇠소녀단> 마지막회가 나왔다. 각자 강점이 너무나 뚜렷한 네 명의 여성 인물들, 그러나 또 각자의 약점이 너무나 뚜렷한 이들이 ‘철인 3종 경기’라는 실전에 투입되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미 저마다의 스포츠를 마치고 온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카메라도, 제작진도 보이지 않고 그저 힘이 부쳐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다독이고, 때로는 먼 곳에 있는 동료를 응원하고, 당혹스러워하고, 낯설어하고, 이 꽉 깨물고 다시 도전하는 여성들의 맨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결승점을 마침내 통과한 뒤 서로 부둥켜 안고 울 때, 우리는 이렇게 그려지는 여성의 우정이, 여성의 도전이 정말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 뒤에 어마어마한 스포츠용품 협찬 광고가 있다는걸 알고 있지만!)
포효하는 여성들,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아이씨’ 작게 비속어를 직전까지 읊조리는 여성들, 도 닦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나아가려고 하는 여성들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일까, <무쇠 소녀단>이 나에게 주는 울림은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게 단순히 ‘여성들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도 인상 깊었다. 여성들의 도전을 도와주는 보조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관습적인 행동에 제한선을 걸고 조심스러워하는 유명 격투기 남성 선수의 모습(행동거지)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것까지 담아냈기 때문에, 이 네 여성들의 도전이 더 조명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분들의 모니터링을 보면서, 어떤 종목이든 상관없이 ‘여성’과 ‘스포츠’를 나란히 둘 때 미디어 상에서 이미 생각하는 그림들, 연출의 방향들이 있다는 것을 굉장히 많이 느꼈다. 스포츠 하는 주체로서의 진정성이나 진지함을 생각보다 당사자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개인이 각자 어떤 도전을 하는 종목이 아니라, 팀 대항의 구도로 간다면 이건 너무나 쉽게 남성 감독의 대결 구도로 빠져버린다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포켓몬’ 같은 느낌이 자꾸 연출되어 버린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쇠소녀단>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은 반가워할 일이다. 마음껏 승부욕을 드러내고 소리지르고 울고 웃고 화내는 여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 그런 <무소쇠녀단>이 이번에는 복싱 종목으로 귀환했다. (아직 보지 않았다. 아껴두고 있다.) 마우스피스를 물어서 튀어나온 입에, 얼굴을 잔뜩 찌그러트리는 헤드기어, 얼굴과 몸으로 날아드는 주먹들, 맞아서 또 호흡이 벅차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균형이 풀려 얼핏 우스꽝스러워보일 수도 있는 난타전의 모습 등등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기대감이 크다.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않는, 스포츠의 몰입을 부디 그대로 담아주길!
요즘 나는 다시 복싱을 시작했다. 20대 때 처음 배웠던 복싱은, 부끄러움과 마주함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한껏 남성성을 드러내는 남자 회원들이 대부분인 복싱장의 한복판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주먹을 쥐고 거울을 보면서 스텝을 밟던 스스로가 너무 어색하고 낯설고 모자란 것 같아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몇 번은 도망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결국 그 거울 앞에 섰고, 지금은 내 무게 중심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온전한 힘을 (손실 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 번쯤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스포츠의 순간에 몰입할까? ‘결과’로서의 화려함이 아닌, 스포츠를 하는 순간과 과정에서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코멘터리 같은 순간들을 좀 더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들은 없을까. 좀 더 내밀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스포츠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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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사이렌> 다음 시즌을 만들어주세요!
🌿 글쓴이: 디디푸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일상의 무료함을 극복해보고자 한국의 스포츠 프로들을 즐겨보곤 했었다. 그러다가 골때녀로 시작해서 한국 여자 축구 프로리그와 (마침 미국 리그로 이적한) 지소연 선수 경기들을 챙겨보며 여자 축구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 민우회가 여성x스포츠 시민모니터링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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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왜 '스포츠 장면 속 여성'을 모니터링하는 활동에 관심 가지게 되었나요?
어려서부터 한국 사회를 겪으며 남녀 차별을 많이 느껴왔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실체를 책으로, 혹은 여러 매체의 글들로 접하면서 페미니즘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집안 내력 덕분에 (비록 몸은 약했지만) 어려서 롤러스케이트부터 수영, 발야구, 피구, 수영 등 학교에서 혹은 스포츠센터에서 여러 운동을 두루두루 접하며 스포츠와 친근하게 지내왔었다. 그런데 특히 코로나 판데믹 이후에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달리기를 시작했고, 풋살과 축구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하고 싶게 되었다.
사실 한국의 예능 프로들을 볼 때, 여성들이 되도록 많이 나오는 프로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편이라서(빻은 소릴 덜 듣고 싶어서), <노는 언니>를 시작으로 여성 스포츠인 혹은 예능인들이 주로 나오는 다른 프로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까다롭게 기준을 두고 찾아봤던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답답한 상황들/차별적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며 혼자 욕하며(?) 보곤 했었는데,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잘못된 것들을 얘기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지금, 여성의 스포츠 or 스포츠 하는 여성들의 미디어 재현이 중요한 이유’
노는 언니와 사이렌, 그리고 강철부대w 같은 프로들을 접하면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않게 강한 체력이나 힘을 필요로 하는 장면들을 해내는 것을 볼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그리고 어릴적 신체적으로 약했어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 그들처럼 씩씩하게 되고 싶고, 대단하지 않아도 그저 뭐라도 시도해 보고 싶게 만들었다. 특히, 최근 나이 어린 여성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접하며 거리낌없이 운동을 시작하고 골때녀를 보면서 풋살하는 여성들이 매우 늘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아 왜 우리 어릴적에는 운동장에서 남자들만 농구, 축구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우리도 어려서부터 운동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무수히 하게 되었다. 또한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남녀 성별 구분없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시키는 문화를 보면서 매우 부러웠고, 또한 내 자신이 직접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강한 신체에서 강한 정신력이 나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했기에, 여성들의 미디어 재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니터링한 콘텐츠와 내가 관심을 가진 모니터링 질문 소개(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피지컬100 시즌2>
콘텐츠의 기본적 포맷 자체가 평면적인 신체의 대결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이 살아남기 어려운 경기들을 배치함으로써 여성들의 비중이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고, 왜 여성들만 따로 경기를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동네 예체능> 호신술편+유도
꽤 예전 프로그램이라 요즘과는 또 다른 꽤 심각한 남녀차별적인 관점이 돋보인(?) 프로그램이었어서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충분히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자 아이돌들을 대하는 방식이 그저 그들을 우스운 존재로만 만드는 것이어서 제작진의 태도가 매우 잘못되었다 느꼈고 그나마 이런 프로그램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지금이라도 그런 방식이 조금 줄어든 것에 대해 안도해야 할 정도였다.
<강철부대W>
여성들만 나올 수 있었던 프로그램들이라선지 패널들로 나온 남자 출연자들이 여성 차별적인 발언이 많이 배제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하는 등, 몇몇 장면들은 가학성을 띄기에 보기가 불편했고, 좀 더 창의적인 포맷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니터링을 통해 내가 발견한 성차별적/성평등한 장면들 소개
평소에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잘 시청하지 않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피지컬100>을 모니터링 하다가 확실히 느꼈던 부분이 남성들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은 주로 환호나 응원처럼 부차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견한 장면들뿐 아니라 여러 다른분들이 소개해 주신 컨텐츠들만 봐도 미디어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들러리나, 응원 등으로 국한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금 느꼈다.
이와는 반대로 강철부대 W에서는 여성들만 등장해서인지 다양한 여성들의 성격과 모습이 보여지는데 특히, 우리 사회에서 보통 남자들에게 부여되는 몇몇 감정들(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이기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기 위해 비열하게 보일 수도 있는 태도 등등)이 이프로그램에서는 아주 자주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렇게 조금씩 진보적으로 변화하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모니터링 하면서 들었던 생각
이전에 <사이렌:불의 섬>을 보면서, 또 이번에 모니터링한 <피지컬100>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넷플릭스의 컨텐츠들에서는 (글로벌 매체라서인지?) 한국 예능에서 주로 쓰이는 무분별한 자막 사용이 없어서 프로그램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눈도 편안하다). 자막에 사용된 표현도 제작진들이 꽤나 신경을 써서 문제시 되는 것들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 그와 대비하여 한국 프로그램들에 등장하는 자막들은 (물론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문제가 개선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글로벌 자본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에 비해 여전히 문제가 많이 보인다.
●한 달 간의 모니터링 활동 회고와 이 활동이 나에게 남긴 생각들
사실 해외에 오래 체류하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기에 정착하고 일을 찾느라 바쁜 중에 모니터링에 참가하여서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 처음에는 이 모임을 오프라인 모임으로 생각해서 직접 멤버들을 만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설렘도 있었기에(외국에 있느라 한국 사람 만날 기회가 귀함),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비록 온라인 모임이었지만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새로이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서 정말 뜻 깊었고 재미도 있었다. 전과정 올출석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일 때문에 한번을 빠지게 된 것도 조금 아쉽다.(야근을 규탄!) 우리의 이 모니터링 활동을 바탕으로 한국의 제작자들이 조금 더 신경쓰고 조심해서 성평등한 프로그램들이 더욱 더 많이 제작되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만나보고싶은 콘텐츠, 덜 보고 싶은 콘텐츠(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스포츠 콘텐츠란?)
<사이렌: 불의 섬> 같은 콘텐츠.
정말 팬이었는데(절대 같은 것을 여러번 못보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봤던 프로그램), 물론 그안에 문제점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이 나오는 것이 좋았고 나오는 대결 게임들의 내용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워 좋았다. 그래서 여전히 <사이렌: 불의 섬>의 다른 버전들을 너무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다음 시즌 만들어주세요!!!)
덜 보고 싶은 콘텐츠는 남성들만 그득그득 나와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프로그램, 어린 여성들(특히 아이돌)을 들러리 정도에 세우고 하찮은 일만 시켜서 그들을 우습게 만드는 프로그램, 여성들의 능력보다 외모를 우선시 하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배제되길 바란다.
●미디어 제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이미 꽤 몇 년 전부터 나는 남성들만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불쾌한 언행과 자막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은 아예 시청할 콘텐츠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는 남성 일색이거나, 성차별적인 프로그램들과 출연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선진국 전부는 아니더라도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당연시 여겨지는 나라들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제안드리고 싶다. 이런 나라들도 우리나라같은 문제점(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백래시 등등)들을 이전에 겪고 과도기를 거치며 지금까지 나아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그들이 지양하는 바를 연구하고, 왜 그런 걸 배제하는지 생각하며 더 나은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시길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이전보다야 덜하지만 여전히 공중파 프로그램들의 영향력은 크다는 것을 생각하며 책임감을 갖고,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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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아, 더 설치자! 미디어 안에서도!
🌿 진원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진원’ 입니다! |
●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야구를 가장 좋아하고, 현재 여성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공을 쫓고, 집에서는 스포츠 중계와 예능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하죠. 그만큼 스포츠는 제게 일상이자 즐거움이며, 때로는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가 추천한 활동이 바로 민우회의 ‘여성×스포츠 시민모니터링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금세 여러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여성 중심의 스포츠 예능이 새로 시작된다는 소식에 늘 기대감을 가졌지만, 막상 방송을 보고 나면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왜 해설은 늘 남성이 맡을까?
왜 여성 선수들의 실력은 자막 너머로만 전달되고, 경기력은 분위기를 해친다는 듯 가볍게 다뤄질까?
실제로 나는 그렇게 운동하지 않는데, 화면 속 여성들은 왜 늘 ‘막 시작한 사람’처럼 묘사되는 걸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이런 의문과 불편함은 점점 익숙한 감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본 장면들을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모니터링 활동은 그런 첫걸음이었습니다.
● 여성 스포츠의 재현, 왜 지금 더 중요한가
야구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여자도 야구해요?”
“남자들이랑 똑같은 규격과 룰로 경기하나요?”
정작 저는 야구 유니폼을 입고 매주 훈련을 하며 경기를 뛰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걸 실감합니다. 여성들이 스포츠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희귀한 사례’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 저는 이 거리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미디어의 재현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SBS <골때리는 그녀들>이 방영된 이후에 풋살을 시작한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그런 변화들을 실제로 목격했고, “여자가 축구해도 재미있네”라는 반응을 이제는 종종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tvn <달려라 불꽃소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고, 그것이 특별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분명 미디어의 힘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공을 차고, 뛰고,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감동의 장면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스포츠는 더 이상 남성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성의 스포츠가 미디어 속에서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재현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여성들이 ‘눈치 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존중받으며’ 운동할 수 있습니다.
● 내가 본 콘텐츠와 품었던 질문들
저는 약 6주의 기간 동안 <강철볼(피구)>, <마녀들(야구)>, <몸쓸것들>, <씨름의 여왕(씨름)>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했습니다. 각 프로그램마다 장르나 연출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지켜봤습니다.
여성 출연자의 경기력은 어느 정도 진지하게 다뤄지는가?
실력에 비해 외모나 감정 표현이 더 부각되지는 않는가?
해설, 자막, 편집 포인트는 여성의 몸과 행동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예를 들어, <씨름의 여왕>의 경우, 여성의 근력과 기술을 주목하는 장면들이 많아 긍정적이었지만, 동시에 경기 중간중간 출연자들의 개인사, 감정선, 가족 이야기 등이 강조되는 방식은 “여성 서사는 언제나 ‘사연 중심’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녀들>은 다소 가볍게 접근하는 포맷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 출연자의 실력은 종종 ‘웃음 코드’나 ‘몸 개그’로 소비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의 신체가 스포츠 안에서 능력의 근거로 존중받고 있는가, 아니면 웃음의 도구로 다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모니터링을 이어갔습니다.


반면 <강철볼>이나 <몸쓸 것들>에서는 오히려 여성 출연자들의 실력 그 자체에 집중하며 존중하는 태도가 두드러졌습니다. 무학여고 학생들을 ‘선배’라고 부르며 칭찬받고 싶어하는 <강철볼> 출연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몸쓸것들>에서는 국가대표 출신의 남성 게스트가 여성 출연자를 피지컬 순위에서 후순위로 두었을 때, 다른 남성 출연자들이 즉각적으로 이를 비판하고 여성의 실력을 인정하는 장면이 등장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히 여성 출연자에 대하여 어떤 시선과 연출로 담아내는가, 그 안에서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남성의 지도를 따르는 여성' 구도는 이제 그만, '지도하는 여성'이 보고 싶다
스포츠 예능을 보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 가지 구도가 있습니다. 바로 ‘여성 선수’와’ 남성 지도자’의 조합입니다. 여성 리그도 분명 존재하고 훌륭한 여성 지도자들도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프로그램 속 감독과 코치는 항상 남성일까요? 여성 경기라면 오히려 여성 지도자가 더 높은 공감력과 이해도를 보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강철볼>에서 무학여고 학생들이 남성 출연자에게 피구를 가르치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긴 했지만, 그것조차 일회성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결국 스포츠계 전반에서 여성 지도자가 안정적으로 진입하고 활약하기 어려운 구조를 반영한 단면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패턴은, ‘운동하는 남성’과 ‘응원하는 여성’ 구도입니다. 평소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그 장면의 반복성에 대해 무심했던 저였지만,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강야구>나 실제 야구 중계를 보면서도 경기의 주체는 늘 남성이고, 여성은 열정적으로 응원하거나 사연이 강조되는 서브 역할로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도가 당연하게 반복되면, 여성의 스포츠는 여전히 보기 드문 일로 여겨지고 여성 시청자 역시 주체적 감상자가 아닌 관찰자로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프로 스포츠를 보면서도 이러한 시선의 틀을 스스로 자각하고 문제 의식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활동을 마치며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경기를 즐기고, 예능을 챙겨보며, 때로는 웃고 감탄하며 넘기던 수많은 장면들. 그런데 이 활동을 하면서부터, 그 장면들을 그냥 지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막하나에 멈춰 서게 되었고, 카메라의 시선, 해설의 언어, 편집의 구조가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배제 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이런 바람이 생겨습니다. 저와 같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들, 실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경기를 마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화면에서 더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당연한 주체로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또한, 다른 모니터링단 분들의 결과를 보며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불편을 느꼈던 분들도 있었고, 내가 지나쳤던 장면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포착해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의문이 아니었구나, 나만 이렇게 보는 게 아니었구나. 함께 보는 시선을 확인하고,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 시야도 훨씬 더 넓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 내가 더 보고 싶은 콘텐츠, 덜 보고 싶은 콘텐츠
‘잘 하는 사람을 잘 한다고 말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여성이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잘해서 멋진 장면들이 화면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과장없이, 웃음으로 무마하지 않고 보여주는 장면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모니터링단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력을 중심으로 다루는 콘텐츠, 그리고 여성 출연자가 단순히 신선한 캐릭터가 아닌 주도적인 선수이자 주인공으로 서 있는 장면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훈련과정이 진지하게 그려지고 출연자의 감정이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흐름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의외로 잘 하네”, “귀엽다” 같은 뉘앙스로 편집되는 장면은 이제 좀 덜 보고 싶습니다. 운동하는 여성을 여전히 예외적인 존재로 다루는 방식은 아무래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스포츠를 즐기고 진지하게 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서사적입니다. 웃음이나 사연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그들의 경기력과 표정 하나가 충분히 감동을 줍니다. 가볍게 다루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주는 시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화면을 바꾸는 건 결국 보는 사람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의 시선이 더 많아지고, 더 말하고, 더 설치길 바랍니다.
우리 계속 뛰어다녀요! 미디어 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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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활동소식 소개
성역할, 승부욕, 팀워크, 성장서사, 외모재현 4개의 모니터링 키워드를 가지고 시민들과 함께 스포츠 콘텐츠 속 여성 재현 모니터링한 이야기! 2025 여성x스포츠 미디어 시민모니터링단의 활동 후기를 보시려면 클릭해주세요!
2025 시민모니터링단 활동 후기 바로가기
스포츠x여성 모니터링 이야기는 2025년 10월 24일 금요일 저녁 7시, 민우회 '미디어 다양성 PT쇼' 행사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어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소수자 재현이 더욱 성평등하고 다양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올해는 미디어 속 #장애, #아동, #여성, #트랜스젠더 재현 관련 이야기들을 준비했습니다. 행사에 함께 해주세요!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2층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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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민우회 시민모니터링단 멤버들이 미디어 속 스포츠 장면에서의 여성 재현에 관한 모니터링 활동을 모두 마치고, 활동소감을 한 편의 글로 적어주셨습니다. 모니터링단 6명의 이야기를, 두 개 게시글로 나누어 세 편씩 소개합니다. 여기서는 쓸구, 디디푸, 진원님의 이야기를, 다음편 글에서는 시원, 함박, 이현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제목은 (진원님의 글을 제외하고) 편집팀에서 임의로 달았답니다. 2개월 동안 함께 시간과 공들여 모니터링 활동에 함께 해주신 멤버 여러분께 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편집(성평등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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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은 많이 말해야 한다,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글쓴이: 쓸구
안녕하세요, 저는 민우회의 숨은 지지자 쓸구라고 합니다. :) 매번 뉴스레터를 통해 다른 분들이 활동하시는 것을 봐오다가, 이렇게 덥석 시민모니터링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워크숍을 통해서 다양한 분들의 생각과 시선을 엿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뜀박질할 때마다 차오르는 숨,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제 마음껏 발을 구르고 힘을 쓰는 대로 움직여지는 게 신이 났다. 어느 겨울날,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가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정면을 응시하고 팔을 열심히 앞뒤로 휘저으며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쭉 달려나갈 것. 달리기를 ‘익히던’ 그때의 벅참은, 곧 초등학생이 되어 무너지기 시작한다.
백말띠 남자애들은 어쩜 그렇게 무례하고 기고만장하였을까.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빠가 가르쳐주던 그 겨울날의 운동장과 똑같은 학교 운동장에서 부끄러움을 배웠다. 여자인 주제에 용을 쓰며 너무 열심히 달린 것이, 부끄러워야 했던 이유였다.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인 주제에, 몇몇 남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뭉쳐서는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달리는 여자아이들의 몸짓을 흉내 내고 하나같이 거기에 조롱과 비웃음을 달았다. 그 아이들에 대한 제재는 없었고, 그래서 일종의 놀이 마냥 체육 시간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놀림 때문에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그저 뛰는 시늉만을 하곤 마쳤다. 하얀 선이 그어진 출발선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뛸지, 아니면 저들의 비웃음을 피하여 가장 중립적인 어떤 적당한 상태를 연기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곤 했다. 슬프게도, 나에게 ‘스포츠’란 늘 여성다움과는 대치되는 것. 그래서 진심으로 그것을 좋아하면 부끄러워지는 것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스무 살 이후, 나는 ‘여대’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스포츠를 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남자(아이)들은 그토록 여자(아이)들에게서 스포츠를 빼앗아서, 마치 그것이 자기들만의 것인양 전유하려 하였을까. 너무너무 좋아서 독점하고 싶었을까. 나에게 다시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려준 건, 그렇게 언젠가 ‘적합하지 않다’고 스포츠를 누릴 권리를 한 번씩 빼앗겨본 적 있던 여성들이었다. 그들 손에 이끌려 필라테스를 배우고, 크로스핏(이라는 당시 신종? 스포츠?)도 접하고, 복싱을 배우고, 클라이밍을 하고, 난생 처음 마라톤을 나가면서 나는 ‘운동하는 여성들’에 대해 이 세상이 더 많이 보고 말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지금까지의 미디어는 여성의 스포츠를, 여성과 스포츠를 어떻게 재현해 왔는지.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누릴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어떤 시선으로 여성과 스포츠를 바라보고 있는지.
민우회의 모니터링단 활동은, 근래에 나왔던 다양한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을 훑으면서 우리가 고군분투해온 어떤 시간들의 과정과 결과를 포착해 내는 시간이었다. 여러 시즌을 거듭해 나갈수록 뜻밖에(?) 젠더감수성이 올라가는 과정을 읽어낸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편협함에 한탄한다던가, 그간 조금씩 바뀌어온 사회적 젠더감수성을 바탕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프로그램을 맛보며 서로 흡족한 미소를 나눈다든가.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랜선으로 함께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로의 시선을 나누고 얽히는 것이었다. ‘나’에게 익숙했던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뾰족한 가시처럼 걸리곤 했고, 남들은 말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나는 입을 떼보고 싶은 것들을 진솔하게 나누었는데, 그건 마치 각자가 경험한 스포츠의 역사를 공유하는 일인 것 같아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몇 번씩 내가 빼앗겼던 스포츠의 시간들을 생각할 때가 있다. 이차 성징이 나타나던 시기, 나의 모든 몸은 ‘정적인 것’으로 박제되길 요구받았다. 얌전히, 조신하게,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중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축구하고 농구하는 남자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 부러움은 사실 서러움이었고, 그래서 스포츠가 비단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은 많이많이 많이 말해야 한다.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많이!
스포츠가 여성들에게 주는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성장이 얼마나 애틋한지에 대해서 세상은 더 많이 말해야한다. 함께함으로써,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곳까지 가닿게 되는 경험을. 작년, 나는 처음으로 마라톤을 나가보았다. 생애 첫 마라톤. 그것도 용감하게 10km를. 마라톤 연습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간 복싱으로 늘려온 심폐지구력을 믿고서 냅다 지른 거였다. 그 첫 도전에 오랜 선배인 S 언니가 함께했고, 서로가 함께 또 따로 달리면서 각자의 한계를 넘어섰다. 체력보다는 정신력의 차원이라는 것을 첫 마라톤에서 확인한 뒤, 내친김에 초보운전자이면서 첫 부산 원정 마라톤을 떠났다. 이번에는 기록 갱신. 외국에서 근무하는 B 언니도 이번엔 함께였다. 언니들은 모두 하프 마라톤. 나는 혼자서 달려보는 10km 달리기. 우리 모두 저마다 넘어서고 싶은 선이 있었고, 스스로와 마주한다는 공통감각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 마라톤을 마친 뒤, 노곤한 상태에서 무심코 킨 호텔 티비에 <무쇠소녀단> 마지막회가 나왔다. 각자 강점이 너무나 뚜렷한 네 명의 여성 인물들, 그러나 또 각자의 약점이 너무나 뚜렷한 이들이 ‘철인 3종 경기’라는 실전에 투입되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이미 저마다의 스포츠를 마치고 온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카메라도, 제작진도 보이지 않고 그저 힘이 부쳐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다독이고, 때로는 먼 곳에 있는 동료를 응원하고, 당혹스러워하고, 낯설어하고, 이 꽉 깨물고 다시 도전하는 여성들의 맨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결승점을 마침내 통과한 뒤 서로 부둥켜 안고 울 때, 우리는 이렇게 그려지는 여성의 우정이, 여성의 도전이 정말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이 프로그램 뒤에 어마어마한 스포츠용품 협찬 광고가 있다는걸 알고 있지만!)
포효하는 여성들,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아이씨’ 작게 비속어를 직전까지 읊조리는 여성들, 도 닦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며 끝까지 나아가려고 하는 여성들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일까, <무쇠 소녀단>이 나에게 주는 울림은 굉장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게 단순히 ‘여성들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도 인상 깊었다. 여성들의 도전을 도와주는 보조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관습적인 행동에 제한선을 걸고 조심스러워하는 유명 격투기 남성 선수의 모습(행동거지)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그것까지 담아냈기 때문에, 이 네 여성들의 도전이 더 조명 받았던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분들의 모니터링을 보면서, 어떤 종목이든 상관없이 ‘여성’과 ‘스포츠’를 나란히 둘 때 미디어 상에서 이미 생각하는 그림들, 연출의 방향들이 있다는 것을 굉장히 많이 느꼈다. 스포츠 하는 주체로서의 진정성이나 진지함을 생각보다 당사자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개인이 각자 어떤 도전을 하는 종목이 아니라, 팀 대항의 구도로 간다면 이건 너무나 쉽게 남성 감독의 대결 구도로 빠져버린다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포켓몬’ 같은 느낌이 자꾸 연출되어 버린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쇠소녀단>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은 반가워할 일이다. 마음껏 승부욕을 드러내고 소리지르고 울고 웃고 화내는 여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 그런 <무소쇠녀단>이 이번에는 복싱 종목으로 귀환했다. (아직 보지 않았다. 아껴두고 있다.) 마우스피스를 물어서 튀어나온 입에, 얼굴을 잔뜩 찌그러트리는 헤드기어, 얼굴과 몸으로 날아드는 주먹들, 맞아서 또 호흡이 벅차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균형이 풀려 얼핏 우스꽝스러워보일 수도 있는 난타전의 모습 등등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면 기대감이 크다. ‘아름다움’을 재현하지 않는, 스포츠의 몰입을 부디 그대로 담아주길!
요즘 나는 다시 복싱을 시작했다. 20대 때 처음 배웠던 복싱은, 부끄러움과 마주함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한껏 남성성을 드러내는 남자 회원들이 대부분인 복싱장의 한복판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주먹을 쥐고 거울을 보면서 스텝을 밟던 스스로가 너무 어색하고 낯설고 모자란 것 같아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몇 번은 도망쳤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결국 그 거울 앞에 섰고, 지금은 내 무게 중심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온전한 힘을 (손실 없이)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 번쯤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스포츠의 순간에 몰입할까? ‘결과’로서의 화려함이 아닌, 스포츠를 하는 순간과 과정에서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코멘터리 같은 순간들을 좀 더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들은 없을까. 좀 더 내밀하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스포츠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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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사이렌> 다음 시즌을 만들어주세요!
🌿 글쓴이: 디디푸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일상의 무료함을 극복해보고자 한국의 스포츠 프로들을 즐겨보곤 했었다. 그러다가 골때녀로 시작해서 한국 여자 축구 프로리그와 (마침 미국 리그로 이적한) 지소연 선수 경기들을 챙겨보며 여자 축구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귀국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연히 민우회가 여성x스포츠 시민모니터링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왜 '스포츠 장면 속 여성'을 모니터링하는 활동에 관심 가지게 되었나요?
어려서부터 한국 사회를 겪으며 남녀 차별을 많이 느껴왔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실체를 책으로, 혹은 여러 매체의 글들로 접하면서 페미니즘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집안 내력 덕분에 (비록 몸은 약했지만) 어려서 롤러스케이트부터 수영, 발야구, 피구, 수영 등 학교에서 혹은 스포츠센터에서 여러 운동을 두루두루 접하며 스포츠와 친근하게 지내왔었다. 그런데 특히 코로나 판데믹 이후에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달리기를 시작했고, 풋살과 축구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하고 싶게 되었다.
사실 한국의 예능 프로들을 볼 때, 여성들이 되도록 많이 나오는 프로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편이라서(빻은 소릴 덜 듣고 싶어서), <노는 언니>를 시작으로 여성 스포츠인 혹은 예능인들이 주로 나오는 다른 프로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까다롭게 기준을 두고 찾아봤던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답답한 상황들/차별적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며 혼자 욕하며(?) 보곤 했었는데, 이렇게 다같이 모여서 잘못된 것들을 얘기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지금, 여성의 스포츠 or 스포츠 하는 여성들의 미디어 재현이 중요한 이유’
노는 언니와 사이렌, 그리고 강철부대w 같은 프로들을 접하면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고 여성들이 남성들 못지않게 강한 체력이나 힘을 필요로 하는 장면들을 해내는 것을 볼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그리고 어릴적 신체적으로 약했어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때 그들처럼 씩씩하게 되고 싶고, 대단하지 않아도 그저 뭐라도 시도해 보고 싶게 만들었다. 특히, 최근 나이 어린 여성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접하며 거리낌없이 운동을 시작하고 골때녀를 보면서 풋살하는 여성들이 매우 늘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아 왜 우리 어릴적에는 운동장에서 남자들만 농구, 축구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 우리도 어려서부터 운동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무수히 하게 되었다. 또한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남녀 성별 구분없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시키는 문화를 보면서 매우 부러웠고, 또한 내 자신이 직접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강한 신체에서 강한 정신력이 나온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했기에, 여성들의 미디어 재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모니터링한 콘텐츠와 내가 관심을 가진 모니터링 질문 소개(어떤 질문들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피지컬100 시즌2>
콘텐츠의 기본적 포맷 자체가 평면적인 신체의 대결을 바탕으로 하여 여성이 살아남기 어려운 경기들을 배치함으로써 여성들의 비중이 매우 적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고, 왜 여성들만 따로 경기를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동네 예체능> 호신술편+유도
꽤 예전 프로그램이라 요즘과는 또 다른 꽤 심각한 남녀차별적인 관점이 돋보인(?) 프로그램이었어서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충분히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자 아이돌들을 대하는 방식이 그저 그들을 우스운 존재로만 만드는 것이어서 제작진의 태도가 매우 잘못되었다 느꼈고 그나마 이런 프로그램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지금이라도 그런 방식이 조금 줄어든 것에 대해 안도해야 할 정도였다.
<강철부대W>
여성들만 나올 수 있었던 프로그램들이라선지 패널들로 나온 남자 출연자들이 여성 차별적인 발언이 많이 배제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신체를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하는 등, 몇몇 장면들은 가학성을 띄기에 보기가 불편했고, 좀 더 창의적인 포맷으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니터링을 통해 내가 발견한 성차별적/성평등한 장면들 소개
평소에 남성들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잘 시청하지 않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피지컬100>을 모니터링 하다가 확실히 느꼈던 부분이 남성들이 주가 되는 프로그램에서 여성들은 주로 환호나 응원처럼 부차적인 역할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견한 장면들뿐 아니라 여러 다른분들이 소개해 주신 컨텐츠들만 봐도 미디어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들러리나, 응원 등으로 국한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금 느꼈다.
이와는 반대로 강철부대 W에서는 여성들만 등장해서인지 다양한 여성들의 성격과 모습이 보여지는데 특히, 우리 사회에서 보통 남자들에게 부여되는 몇몇 감정들(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이기고자 하는 욕망과 이기기 위해 비열하게 보일 수도 있는 태도 등등)이 이프로그램에서는 아주 자주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렇게 조금씩 진보적으로 변화하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모니터링 하면서 들었던 생각
이전에 <사이렌:불의 섬>을 보면서, 또 이번에 모니터링한 <피지컬100>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넷플릭스의 컨텐츠들에서는 (글로벌 매체라서인지?) 한국 예능에서 주로 쓰이는 무분별한 자막 사용이 없어서 프로그램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눈도 편안하다). 자막에 사용된 표현도 제작진들이 꽤나 신경을 써서 문제시 되는 것들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 그와 대비하여 한국 프로그램들에 등장하는 자막들은 (물론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문제가 개선되어 보이기는 하지만) 글로벌 자본이(?)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에 비해 여전히 문제가 많이 보인다.
●한 달 간의 모니터링 활동 회고와 이 활동이 나에게 남긴 생각들
사실 해외에 오래 체류하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었기에 정착하고 일을 찾느라 바쁜 중에 모니터링에 참가하여서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 처음에는 이 모임을 오프라인 모임으로 생각해서 직접 멤버들을 만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설렘도 있었기에(외국에 있느라 한국 사람 만날 기회가 귀함),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비록 온라인 모임이었지만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고 새로이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 많아서 정말 뜻 깊었고 재미도 있었다. 전과정 올출석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일 때문에 한번을 빠지게 된 것도 조금 아쉽다.(야근을 규탄!) 우리의 이 모니터링 활동을 바탕으로 한국의 제작자들이 조금 더 신경쓰고 조심해서 성평등한 프로그램들이 더욱 더 많이 제작되는 자양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더 많이 만나보고싶은 콘텐츠, 덜 보고 싶은 콘텐츠(내가 생각하는 더 나은 스포츠 콘텐츠란?)
<사이렌: 불의 섬> 같은 콘텐츠.
정말 팬이었는데(절대 같은 것을 여러번 못보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봤던 프로그램), 물론 그안에 문제점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이 나오는 것이 좋았고 나오는 대결 게임들의 내용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워 좋았다. 그래서 여전히 <사이렌: 불의 섬>의 다른 버전들을 너무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다음 시즌 만들어주세요!!!)
덜 보고 싶은 콘텐츠는 남성들만 그득그득 나와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프로그램, 어린 여성들(특히 아이돌)을 들러리 정도에 세우고 하찮은 일만 시켜서 그들을 우습게 만드는 프로그램, 여성들의 능력보다 외모를 우선시 하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배제되길 바란다.
●미디어 제작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이미 꽤 몇 년 전부터 나는 남성들만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불쾌한 언행과 자막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은 아예 시청할 콘텐츠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는 남성 일색이거나, 성차별적인 프로그램들과 출연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선진국 전부는 아니더라도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당연시 여겨지는 나라들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제안드리고 싶다. 이런 나라들도 우리나라같은 문제점(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백래시 등등)들을 이전에 겪고 과도기를 거치며 지금까지 나아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그들이 지양하는 바를 연구하고, 왜 그런 걸 배제하는지 생각하며 더 나은 프로그램이 되도록 노력하시길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이전보다야 덜하지만 여전히 공중파 프로그램들의 영향력은 크다는 것을 생각하며 책임감을 갖고,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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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아, 더 설치자! 미디어 안에서도!
🌿 진원
여성들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는 ‘진원’ 입니다!
●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스포츠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야구를 가장 좋아하고, 현재 여성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공을 쫓고, 집에서는 스포츠 중계와 예능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하죠. 그만큼 스포츠는 제게 일상이자 즐거움이며, 때로는 세상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은신처이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가 추천한 활동이 바로 민우회의 ‘여성×스포츠 시민모니터링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금세 여러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여성 중심의 스포츠 예능이 새로 시작된다는 소식에 늘 기대감을 가졌지만, 막상 방송을 보고 나면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왜 해설은 늘 남성이 맡을까?
왜 여성 선수들의 실력은 자막 너머로만 전달되고, 경기력은 분위기를 해친다는 듯 가볍게 다뤄질까?
실제로 나는 그렇게 운동하지 않는데, 화면 속 여성들은 왜 늘 ‘막 시작한 사람’처럼 묘사되는 걸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이런 의문과 불편함은 점점 익숙한 감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내가 본 장면들을 해석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모니터링 활동은 그런 첫걸음이었습니다.
● 여성 스포츠의 재현, 왜 지금 더 중요한가
야구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여자도 야구해요?”
“남자들이랑 똑같은 규격과 룰로 경기하나요?”
정작 저는 야구 유니폼을 입고 매주 훈련을 하며 경기를 뛰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는 걸 실감합니다. 여성들이 스포츠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도 ‘희귀한 사례’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 저는 이 거리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미디어의 재현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SBS <골때리는 그녀들>이 방영된 이후에 풋살을 시작한 여성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저 역시 주변에서 그런 변화들을 실제로 목격했고, “여자가 축구해도 재미있네”라는 반응을 이제는 종종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또 tvn <달려라 불꽃소녀>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고, 그것이 특별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분명 미디어의 힘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공을 차고, 뛰고, 소리 지르고, 눈물 흘리는 모습이 감동의 장면으로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스포츠는 더 이상 남성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전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성의 스포츠가 미디어 속에서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재현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여성들이 ‘눈치 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존중받으며’ 운동할 수 있습니다.
● 내가 본 콘텐츠와 품었던 질문들
저는 약 6주의 기간 동안 <강철볼(피구)>, <마녀들(야구)>, <몸쓸것들>, <씨름의 여왕(씨름)>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했습니다. 각 프로그램마다 장르나 연출 방식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지켜봤습니다.
여성 출연자의 경기력은 어느 정도 진지하게 다뤄지는가?
실력에 비해 외모나 감정 표현이 더 부각되지는 않는가?
해설, 자막, 편집 포인트는 여성의 몸과 행동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예를 들어, <씨름의 여왕>의 경우, 여성의 근력과 기술을 주목하는 장면들이 많아 긍정적이었지만, 동시에 경기 중간중간 출연자들의 개인사, 감정선, 가족 이야기 등이 강조되는 방식은 “여성 서사는 언제나 ‘사연 중심’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녀들>은 다소 가볍게 접근하는 포맷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 출연자의 실력은 종종 ‘웃음 코드’나 ‘몸 개그’로 소비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성의 신체가 스포츠 안에서 능력의 근거로 존중받고 있는가, 아니면 웃음의 도구로 다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모니터링을 이어갔습니다.
반면 <강철볼>이나 <몸쓸 것들>에서는 오히려 여성 출연자들의 실력 그 자체에 집중하며 존중하는 태도가 두드러졌습니다. 무학여고 학생들을 ‘선배’라고 부르며 칭찬받고 싶어하는 <강철볼> 출연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몸쓸것들>에서는 국가대표 출신의 남성 게스트가 여성 출연자를 피지컬 순위에서 후순위로 두었을 때, 다른 남성 출연자들이 즉각적으로 이를 비판하고 여성의 실력을 인정하는 장면이 등장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히 여성 출연자에 대하여 어떤 시선과 연출로 담아내는가, 그 안에서 어떤 이미지로 소비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남성의 지도를 따르는 여성' 구도는 이제 그만, '지도하는 여성'이 보고 싶다
스포츠 예능을 보다 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 가지 구도가 있습니다. 바로 ‘여성 선수’와’ 남성 지도자’의 조합입니다. 여성 리그도 분명 존재하고 훌륭한 여성 지도자들도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프로그램 속 감독과 코치는 항상 남성일까요? 여성 경기라면 오히려 여성 지도자가 더 높은 공감력과 이해도를 보일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강철볼>에서 무학여고 학생들이 남성 출연자에게 피구를 가르치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긴 했지만, 그것조차 일회성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결국 스포츠계 전반에서 여성 지도자가 안정적으로 진입하고 활약하기 어려운 구조를 반영한 단면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패턴은, ‘운동하는 남성’과 ‘응원하는 여성’ 구도입니다. 평소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그 장면의 반복성에 대해 무심했던 저였지만,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강야구>나 실제 야구 중계를 보면서도 경기의 주체는 늘 남성이고, 여성은 열정적으로 응원하거나 사연이 강조되는 서브 역할로만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도가 당연하게 반복되면, 여성의 스포츠는 여전히 보기 드문 일로 여겨지고 여성 시청자 역시 주체적 감상자가 아닌 관찰자로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프로 스포츠를 보면서도 이러한 시선의 틀을 스스로 자각하고 문제 의식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활동을 마치며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경기를 즐기고, 예능을 챙겨보며, 때로는 웃고 감탄하며 넘기던 수많은 장면들. 그런데 이 활동을 하면서부터, 그 장면들을 그냥 지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막하나에 멈춰 서게 되었고, 카메라의 시선, 해설의 언어, 편집의 구조가 무엇을 중심에 놓고 무엇을 배제 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이런 바람이 생겨습니다. 저와 같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들, 실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경기를 마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화면에서 더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당연한 주체로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또한, 다른 모니터링단 분들의 결과를 보며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불편을 느꼈던 분들도 있었고, 내가 지나쳤던 장면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포착해낸 분들도 있었습니다. 혼자만의 의문이 아니었구나, 나만 이렇게 보는 게 아니었구나. 함께 보는 시선을 확인하고,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제 시야도 훨씬 더 넓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 내가 더 보고 싶은 콘텐츠, 덜 보고 싶은 콘텐츠
‘잘 하는 사람을 잘 한다고 말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여성이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운동을 잘해서 멋진 장면들이 화면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과장없이, 웃음으로 무마하지 않고 보여주는 장면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모니터링단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력을 중심으로 다루는 콘텐츠, 그리고 여성 출연자가 단순히 신선한 캐릭터가 아닌 주도적인 선수이자 주인공으로 서 있는 장면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훈련과정이 진지하게 그려지고 출연자의 감정이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흐름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의외로 잘 하네”, “귀엽다” 같은 뉘앙스로 편집되는 장면은 이제 좀 덜 보고 싶습니다. 운동하는 여성을 여전히 예외적인 존재로 다루는 방식은 아무래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
스포츠를 즐기고 진지하게 임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서사적입니다. 웃음이나 사연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그들의 경기력과 표정 하나가 충분히 감동을 줍니다. 가볍게 다루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아주는 시선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화면을 바꾸는 건 결국 보는 사람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성의 시선이 더 많아지고, 더 말하고, 더 설치길 바랍니다.
우리 계속 뛰어다녀요! 미디어 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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