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후기] [국회토론회]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 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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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 2019년 3월 28일 출범한 ‘강간죄’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강간죄개정연대)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로 개정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올해 강간죄개정연대는 미국의 ‘동의’ 기준 성폭력 법의 실제를 톺아보고 한국에서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미국 라모나 알빈(Ramona Albin) 샘포드 대학교 컴벌랜드 로스쿨 교수를 초청하여 국회 토론회와 활동가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5월 27일 수요일 오후 2시,
국회에서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를 주제로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사회: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발제1. Ramona C. Albin 교수 (Cumberland School of Law, Samford University)

발제2.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좌장 : 이숙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토론1. 이창환 (서울가정법원 판사, 법원 현대사회와성범죄연구회)

토론2. 소은영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토론3. 전다운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토론4. 신지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 


이번 토론회는 최근까지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 체계로 전환해 온 미국의 사례 발표를 들으며, '동의'를 기준으로 법체계가 적용될 경우 어떤 변화가 있는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적용되어 왔는지 세세히 살펴보았는데요. 특히나, 여전히 형법상 폭행·협박을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는 한국에서 강간죄 개정을 둘러싼 우려와 반론들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지, 미국 사례를 통해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첫번째 발제는 '동의' 기반의 미국 성폭력 관련 법률을 주제로 라모나 알빈 교수가 발표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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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


미국은 50개의 자치주를 가진 합중국으로, 상위법으로 연방법을 따로 가지고 있긴 하나 주별로 다른 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강간죄는 기본적으로 주법에 따라 기소되지만, 전국적으로 통일된 강간 관련 법률은 없다고 합니다.


주별로 다양한 법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곳은 유형력(폭행, 협박)을, 어떤 곳은 유형력과 동의 여부를, 어떤 곳은 적극적 합의(affirmative consent)를 기준으로 하는 등 다양한 법적 모델이 공존해왔습니다. 위스콘신, 버몬트 주 등 일부 주에서는 1970년대부터 동의 기반 모델을 적용하여 강간죄 성립요건을 해석해왔으며, 이후 50년간 이에 기초한 판례가 축적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은 연방법에서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동의'에 기반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게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왜 '동의'를 강간죄 구성요건에서 주요하게 다루게 되었을까요? '유형력'을 기반으로 한 법률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알빈 교수는 '유형력' 기반 법률의 대표적인 네 가지 한계를 지적합니다. 

① 피고인의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저항 여부가 핵심 증거 쟁점이 되는 점, ② 폭행, 협박에 기반하는 강간죄 구성요건은 대부분의 강간 사건을 배제하고, '유형력'만으로 해석되지 못하는 성격의 강간 사건에 대한 다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 ③ 긴장성 부동화(얼어붙는 반응)은 낯선 사람에 의한 강간과 지인에 의한 강간 모두에서 기록되는 트라우마 반응임에도 피해 경험 당시 이루어진 피해자의 행동을 평가하고 외면하는 데에 오남용되는 점, ④ 피해자가 잠들어있거나 약물 등의 영향으로 인해 저항할 수 없었던 경우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저항 여부가 쟁점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쟁점이 되는걸까요? 그리고 입증 책임은 누가 가지는걸까요? 피고인일까요? 그렇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동의' 모델을 적용하는 모든 주에서 주정부 검사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동의가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합니다.


폭행, 협박을 죄의 성립요건으로 하는 법률은 단순히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에 집중하지만, '적극적 합의'를 기준으로 한 법률은 관계 맥락 안에서 동의를 기반으로 어떻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지를 살핀다는 점에서 보다 관계 중심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강간죄 사건을 바라봄에 있어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구조적 전환을 동반합니다. 단순 행위의 유무가 아니라 의사소통 과정을 살피는 것이지요. 때문에 '유형력' 기반 법률은 "유형력이 있었는가?"를 묻지만, '동의' 기반 법률은 "(성관계 당사자들간에) 능동적인 참여가 있었는가?"를 묻습니다.


이후 여러 주에서 시행중인 '동의' 기반 강간죄가 어떤 해석을 통해서 적용되고 있는지 그 사례를 살폈는데요. '동의' 기반의 강간죄 개정을 외칠 때에 주로 나오는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그 사례와 경험을 바탕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Q. 합의된 성관계도 처벌되는 거 아닌지?

A. '동의' 기반, '적극적 합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평범한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다"라는 것이다. '유형력' 모델의 경우, 배심원(또는 수사사법기관)은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 충분한(?)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를 평가하게 된다. (사람들의 의문과 달리) '동의' 기준은 '유형력'(폭행, 협박) 요건보다 판단기준이 훨씬 명확하다. 


Q. '동의' 기준은 너무 모호하지 않은지? 선의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던 부분까지도 부당한 유죄 판결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A. 뉴저지 주의 한 판례(2025)는 피해자가 음주로 인해 무력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동의'가 부재했다는 사실이 명확했다. 또 다른 뉴저지 주의 판례(2021)는 피해자가 잠든 사이에 삽입이 진행되고 있었음으로 이 또한 판단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례다. 버몬트 주의 한 사례(2006)는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위협을 느껴 성관계를 하게 되었는데, '위협'을 받은 경우는 '동의'가 아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입증 책임은 여전히 주 검사에게 있다. 이것들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오해로 인한 사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동의'에 기반한 강간죄 개정이 필요한 걸까요?
이에 대해서는, 두번째 발제자인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이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김혜정 소장은 발표를 시작하며 2022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안전 실태조사 결과 성추행 피해를 겪은 상황에서 피해 당시 폭행, 협박이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각 2.7%, 7.1%에 그쳤다는 통계(복수응답)를 인용했습니다. 응답 중에는 가해자의 속임수(위계)가 34.9%로 가장 높았으며, 갑자기(강제)가 26.6%, 강요 18.7%, 지위에 따르는 권한 및 위력을 이용한 경우가 16.2%였습니다. 이는 성폭력이 젠더에 기반한 권력관계, 조직 및 집단 내 위계구도, 사회적 위치 등을 이용하여 일어나며, 이러한 권력관계를 이용할 때에도 폭행, 협박이 명시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성폭력이 대다수임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곧 한국의 현행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의 여부를 보는 것이 (앞서 라모나 알빈 교수가 '폭행, 협박' 기반 법률의 한계로 지적했던) 실제 피해 사례가 배제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행법에서는 '현저히 저항이 곤란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범죄 구성의 요건으로 하는 최협의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에 따르면 위 실태조사 전체 응답 중 7.3%만이 명확한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강간죄로 규율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은 약물, 알코올 등으로 인한 영향으로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일어난 강간에 대해 준강간이라는 별도의 법조항으로 규율하고 있으나, 이 또한 피해자가 자신의 상태를 입증해야하며 그에 더해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태를 '고의로 이용했다는 점'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협소하게 법이 해석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한편, 대법원은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판결을 통해 형법 298조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 또는 협박에 대한 '최협의 폭행협박설'을 폐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김혜정 소장은 대법원이 사실상 '최협의설'을 폐기한 이유는 ① 최협의설이 실질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 보호법익과 맞지 않으며, ② 피해자의 항거가 없었다고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부정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정조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과 같이 시대착오적이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 ③ (그동안 강제추행 재판 실무와 법원의 판례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것은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변화되어 왔으나) 재판부에 따라 죄의 성립요건을 다르게 해석하여 판단하고 있고, 기존 판례와 현재 재판의 불일치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과 판결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고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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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총궐기’ 행진 모습 ⓒ 혜영


그럼에도 여전히 강간죄를 해석함에 있어 최협의설은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터져나왔던 2018년 "미투운동" 직후 형법상 강간죄 구성요건을 개정하는 법안이 초당적으로 발의되기 시작했습니다. 강간죄개정연대는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Call 21st 캠페인을 통해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에 대해 국회의원 후보에게 물었고, 응답한 203명 중 201명이 "강간죄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이후에도 시민들이 나서서 국민청원을 통해 '동의' 기준으로 강간죄를 개정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으나, 22대 국회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인 상태임을 비판했습니다.


한편,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9차 권고(2024. 6.)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올해 5월 답변했습니다. 답변 내용은 '비동의 강간죄' 취지로 개정하라는 권고에 "국내 성폭력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로 입증 책임의 원칙 및 형사절차상의 부담과 관련한 쟁점,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방식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고려 하여 향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해외 도입 사례를 살피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에 김혜정 소장은 일본, 프랑스 등 해외 '비동의 강간죄' 취지 법개정 사례를 뒤이어 소개했습니다.


🌟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이란?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 철폐를 위한 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통상 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라고 부른다)는 1979년 UN 총회에서 채택되고, 1981년부터 그 효력이 발효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1984년 12월 27일 이 협약을 비준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토론자인 서울가정법원 이창환 판사는 유형력 기반 현행 형법의 문제점으로 "유형력 기반의 우리 형법과 이를 기초로 형성된 법리 및 재판실무가 피해자 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성적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의미에 관한 최협의설의 법리가 유지되는 현실에서 재판실무와 법리의 괴리는 판결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즉 판사의 재량에 따라 문자 그대로의 법률(유형력 중심)에 따라 보수적으로 판단하느냐, 실제 성폭력 범죄 양태를 고려(동의 중심)하여 판단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어떤 판결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워져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간죄로 기소된 상당수 사례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의 (그 자체로는 현저히 중하다고 보기 어려운 정도의 유형력이 수반된) 성적 시도에 놀란 나머지 몸이 얼어붙거나(Freezing), 격렬히 저항할 경우 피고인을 자극하여 더 큰 위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발견됩니다. 이러한 사안에서 어떤 법관은 피해자가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 상황에 주목하여 피고인의 성적 시도가 강간죄의 폭행·협박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 어떤 법관은 최협의설 을 엄격하게 견지하여 강간죄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동의’가 아닌 ‘폭행·협박’과 같은 유형력 요건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유형력 기반의 현행 형법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유형력의 정도 등에 관한 해석의 차원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규정된 유형력의 종류가 다소 한정적이라는 측면에서도 (법원의 적극적인 해석론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다종다양한 사안들을 충분히, 적절히 규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의 모델로의 전환이 낯선 기준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피해자의 '동의', 즉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된 사건의 피해사실이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 그 자체"이며, 이미 성범죄 재판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는 주된 쟁점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만큼 그것을 구성요건으로 명시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자리를 포함하여 국회에서 여러 차례 '비동의 강간죄'와 관련한 행사가 여럿 개최된 것을 통해 정부가 CEDAW에 답변한 것과 달리 이미 '비동의 강간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것은 정부와 국회의 제도적 변화를 위한 직접적인 행동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강간죄개정연대와 함께 이후에도 법망에서 배제되는 성폭력 피해자가 없도록, '비동의 강간죄' 개정이 실현될 수 있도록 더 가열차게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나 하나쯤'이 세상을 바꾸는 법

아무리 작아 보일지라도 우리의 이야기는, 참여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성평등한 세상을 향해 지금 바로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