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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후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요?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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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노동 제도 새로고침' 집담회 참석자가 자신의 일 경험을 "야근수당 없음", "부당해고"의 키워드로 적고 있다.

 

“아…. 저는 노동자가 아니었군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민우회가 지난 15일과 20일 2차례에 걸쳐 개최한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 여성노동자 집담회’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참가자는 회사에 출근해서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남들과 같이 업무 지시를 받고 일하다가 퇴근하지만, 동료들과는 신분이 전혀 다릅니다. 업무 시간도 장소도 내용도 방법도 ‘프리’하게 스스로 정할 수 없지만, 법적으로 그는 ‘프리랜서’입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하나도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전혀 특수하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이 정의한 ‘근로자’의 정의(제 2조 1항)입니다. 이렇게 보면 노동을 하는 사람은 모두 법적인 ‘근로자’일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달라요. 근로계약서를 쓴 노동자가 아닌 경우 근로자의 권리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답니다.

 

특히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을 외주화하고, 사람들의 노동 형태도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근로기준법으로는 보호받을 수 없는 노동자, 즉,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죠. 특정 직장에 속하지 않은 프리랜서, 특수할 것이 없는 그냥 노동자인데 ‘사업자’라고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시장에서 일을 구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은 모두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복잡한 노동 형태를 담느라 집담회 명칭도 엄~청 길어졌습니다.

 

20일에 열린 '비정형노동 제도 새로고침' 집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번의 집담회 모두 첫 프로그램으로 색지에 부당한 일 경험을 적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여자들은 “최저임금 없는 단가”, “임금∙대우 차별”, “일의 강도∙양과 페이가 비례 X”, “부당해고”, “돈은 회사가 위험부담은 내가” 등의 다양한 키워드를 적어주었답니다.

 

근로기준법 바깥의 노동자 유형이 다양하다 보니 참여자의 노동 유형이나 일 경험도 다양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노동환경에서 직간접적으로 기업의 통제를 직접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특정 소속 기업(사용자)이 없이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노동자로 인정받기가 더 어려운 사람도 있었어요.

 

이어진 시간에는 대법원에서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하기 위한 ‘근로자성 판단’ 기준으로 제시한 주요 항목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판례라서 문장도 너무 어렵고 생소한 법률 용어가 많아서 도저히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질문과 설명을 주고받으면서 하나하나 이해해보았어요. (법조인 여러분, 부디 판결문 쉽게 좀 써주세요~)

 

그러면서 자신이 이런 항목에 얼마나 맞는지도 체크해보았어요. 과연 대법원은 우리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해줄 것인가??? 두둥!!!

 

안타깝게도 결과는 썩 좋지 않았어요. 기준에 맞지 않는 사례가 많았거든요. 물론 법원은 여러 기준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실제 인정 여부는 법원에 가서 내용을 잘 따져봐야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판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굳이 법정까지 가서 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불평등한 일이죠. 노동자로 인정받는 게 과연 이렇게 힘들어야 할 일인가요?

 

'비정형노동 제도 새로고침' 집담회 참석자가 자신의 일 경험을 "일의 강도·양과 페이가 비례 X", "복지 X"의 키워드로 적고 있다.

 

민우회가 ‘비정형노동’에 집중하는 이유

 

이렇게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노동자를 ‘비정형 노동자’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정해진 유형이 아닌 노동자라는 뜻이죠. 노동자로 보호받을 수 없기에 아무래도 기존 방식의 ‘정형’ 노동자보다 취약하지요. 기존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비정형노동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정형노동자가 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비정형노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성별임금격차나 성별직종분리가 나타납니다. 오히려 법적인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차별∙성희롱∙괴롭힘 등의 문제에서도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고요. 민우회가 올 한해 비정형노동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집담회는 그 시작입니다. 인터뷰, 토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대안을 고민할 거예요. 워낙 방대하고 너무 어려운 주제인 만큼 여러 페미니스트의 큰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답니다. 꾸준히 지켜봐 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세요.

 

'비정형노동 제도 새로고침' 집담회 참석자가 자신의 일 경험을 "계약 종료" "나의 단가? 가치?"의 키워드로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