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 대해 흔쾌히 수락을 하고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나에게 여성주의 실천은 어떠한 형태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러면서 지난 민우회 어느 뒤풀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어요.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일상에서의 개인의 (여성주의)운동을 고민하게 된다고.
지금도 일상에서의 여성주의 실천은 무엇일지, 가끔씩 널부러진 상태에서 번뜩 시선을 곧추세우고 나의 상태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둘러보며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돌아보고 점검을 하게 됩니다.곧장 실천하거나 문제의식을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이런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의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여성주의적 활동의 연결고리들을 한 땀씩 꿰어 하나의 고리를 만들면 크게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서부터 극심한 반항과 투쟁이 피곤할 정도로 계속이었는데, 단순히 중2병의 일시적이고 단도직입적인 혼란과 불만상태가 아니라 여자/딸이기 때문에 받았던 차별과 보호에서 발생된 불평불만이 호전되지 않는 가족들의 태도에서 지금도 조금은 다른 상태로 표출되고는 해요. 예전엔 설명도 없이 반항과 외침으로 일관 했었다면 20대 이후부터는 내가 왜 불만인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를 부모님께 설명하고 어떠한 태도를 요구 했었던 것도 같아요.
그런데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된 20대 중반 이후에는 이와 같은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가정 내 문제가 아닌 사회와 전 지구적인 문제임을 깨닫고는 한숨이 늘며 부등호가 명확한 사회관계에서 어떻게 표출하고 반항과 투쟁의 태도를 가질 것인지 한숨만큼 고민과 화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째 줄지는 않고 늘기만....
그래서 여성주의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참여하는 것으로 기운도 얻고 약도 얻습니다. 병 주는 사회, 회사, 정부, 자본주의, 도시.... 이런 거대한 것들에서 나를 보호하고 뜻을 함께하여 목소리를 더하고 다양한 교육을 접하며 감수성을 깨우고 이 안에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수다도 늘어놓으면서 친구/동료도 만들 커뮤니티, 네, 민우회 활동을 틈나는 대로 참여하는 것이 저의 여성주의 실천이기도 합니다.(다들 그러고 있는 거잖아요? 나만 아는 거 아니잖아요?) 그 외에도 의료나 예술 등을 기반으로 한 여성주의생활협동조합이 늘어나고 있어서 반갑게 가입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렇게 깨우치고 느끼고 흡수되는 여성주의는 업으로 삼고 있는 사진에 대한 저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있기도 해요. 예술교육활동을 하면서 어떤 대상을 만나던지 그들과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기를 시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말하고 서로를 살피고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참여자와 주고받는 이 활동은 그래서 늘 크게 남기도하고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저의 작업에서의 변화는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대고 그 앞을 내다볼 때에도 아무래도 카메라가 갖고 있는 시선의 권위라는 것이 있기에 이걸 내려놓고자 신경을 쓰며 애쓰는 것, 또 ‘다름의 평등’과 ‘다양성’으로 바라보기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를 욕심내지만 높은 고민의 수위에 비해 부족한 준비성과 미약한 실천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읽는 여러분도 느끼듯) 말만 거창하게 남기는 것 같아 늘 부끄러움과 제 때 실천하지 못한 후회로 점철돼 있습니다. 업이 업보임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휴우~
가장 눈에 띄는 실천력은 아무래도 환경보호를 위한 실천들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성주의와 환경운동은 거리가 멀지 않으니까요. 정희진선생님이 녹색당에서 주최했던 강의에서 하셨던 기억나는 말이 평화와 녹색을 말씀하시면서 약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약자를 옹호하는 사회적분위기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굉장히 공감하면서 지금의 나의 위치와 함께 자본주의의 엄청난 속도감에 의해 개발된 지역에서의 경험이 차례로 떠오르기도 했어요.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쉽게 대하지 않았기에 생긴 습관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얻고 있는 자연환경의 혜택이 큰 만큼 지켜내야 할 생활습관들이 있어야 하는 거겠더라고요. 가령, 가방이 좀 무겁고 씻는 게 귀찮아도 일회용을 덜 쓰기 위해 텀블러를 챙겨서 다니고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고, 회사에서는 머그컵과 손수건을 쓰고, 텃밭을 가꿔서 야채를 키워 먹으려고 시도해보고(독립한 올 여름은 악독한 진딧물 패거리 때문에 수확량 대략실패;ㅅ;), 옷은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사려고 애쓰고 주로 헌 옷 매장이나 벼룩시장을 이용해 구입, 때로는 친구끼리 돌려입기도 해요. 이 외에도 자주 갈아입는 속옷은 손빨래를, 세제는 뜨거운 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친환경비누로 씻는 것 등을 실천하고 있어요. 나중에는 옷도 만들어 입고 싶어서 미싱을 배우려는데 기계라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누구 미싱마스터 있으면 레슨 좀 부탁합니다.(진심으로 간절해요~)
아,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실천하고 있는 것과 실천을 준비하고 있는 것, 지지부진한 실천 등이 보이네요. 제가 꿰고 이어가려는 이 활동들이 상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앞으로든 옆으로든 (뒤로는 안돼! 제발... ㅠㅡㅜ) 크게 이동할 수 있는 튼튼한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하는데 그럴려면 지금부터 더 단단한 뀀을 해야겠어요. 나의 여성주의 일상실천도, 커뮤니티와 나도 모두 탄탄하게 꿰어가리~
*가을에 들으면 좋을 음악 하나 첨부해요. 가을이라고 '가을아침'.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어. 이럴 때 들으면 좋은 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