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역사’로 알고 있었던 내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민우회 회원 말뼉다구 여성민우회 강좌는 언제나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을 보게 해준다. 남성중심적인 사회를 살며, 겪으며 갖게 되는 답답함을 뚫어준다는 점에서 강좌 속 ‘다른 세상’은 짜릿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러나 곧 ‘다른 세상’의 짜릿함은 복잡하고 쉽지 않은 세상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자기반성의 주먹질로 내 머리를 강타한다. 이번 강의에서도 그랬다. ‘간단’, ‘새로움’, ‘하이브리드(hybrid)’, ‘혼종’ 등으로 시작된 강의 내용은 웃음과 속시원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는 순진하리만치 '군위안부’역사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각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인식과 태도에 강한 펀치를 날렸다.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이 민족주의의 이해와 일치될 때에만 정치와 역사로 간주된다는 분석, 그리고 ‘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진술한 다양한 구술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민족주의가 원하는 역사만이 재생산되고 강조되고 있다는 내용은 ‘군위안부’역사에서 당사자인 피해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과 입장이 배제되어 있음을 알게 했다. 또한, ‘군위안부’역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숨겨졌던 사건들까지 듣게 되면서 ‘군위안부’역사는 절대로 간단할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해서는 대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응을 통해 의미 있는 정치적 운동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양성을 위해서,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해서, 성평등을 위해서 가부장주의 사회에 여성주의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습관처럼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군위안부’역사를 다루는 언론보도 속에서 정작 당사자인 피해 여성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번 강의를 듣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다. 그저 ‘군위안부’역사에 대해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이기에 여성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리’정도만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군위안부’와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폭력 피해 사실, 숨겨져 있는 폭력 가해 사실을 들으면서 매우 답답하고 불편해지기까지 했다. “간단한 역사는 없다”라는 정희진선생님 말씀을 빌려 생각해보면, 숨겨졌고 몰랐었기에, 감춰진 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전부일까?’라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언론이 보도하는 대로 ‘군위안부’역사를 민족주의의 이해에 맞닿은 ‘간단한 역사’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의 후반부로 갈수록 ‘혼종’된 ‘군위안부’역사에 빠져들며 더욱 복잡·답답하고 불편했다. ‘군위안부’와 관련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민족주의의 이해의 관점으로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내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는데 자기반성을 시작했으니 내 스스로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을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기에, 나의 어처구니없음이 단번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아픈 만큼 바로 성숙하는 즉각적인 변화는 보이지 못해도, 적어도 이번 강의를 통해 ‘군위안부’의 ‘간단한 역사’를 ‘혼종’이 전제된 ‘새로운 역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내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기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냥 편안하게 듣고 생각하던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가 아니라,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도록 하는 시간이었기에, 그 마침이 아쉬운 강의였다. 앞으로 남아 있는 강의에는 어떤 강펀치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정신 못 차릴 정도의 강펀치를 바라며 유쾌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강의를 기대해 본다. |
정희진의 근현대사- 세번째
[한국현대사와 여성의 성 : '군 위안부'운동과 위치성의 정치학]
"이번 강좌에서 하고 싶은 말은 삶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구술에 의해 구성된 역사이기 때문에 각각의 사람들이 구술한 내용이 일치 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부각될 때는 민족주의의 이해와 일치할 때에만 정치와 역사로 간주된다....피해자의 모습과 일치 하지 않는 구술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종종 다양한 견해는 전선을 흐트린다는 말을 듣지만 다양한 견해는 대응의 방식을 넓히는 것이다."
전시 성폭력 관련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영화.
정희진 쌤의 강력 추천!
영화명 : 그르바비차 grbavica(2005)
감독 : 야스밀라 즈바니치
아래는 열독 강좌를 듣고 있는 민우회 회원 말뼉다구님의 후기입니다.
‘간단한 역사’로 알고 있었던
내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민우회 회원 말뼉다구
여성민우회 강좌는 언제나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을 보게 해준다. 남성중심적인 사회를 살며, 겪으며 갖게 되는 답답함을 뚫어준다는 점에서 강좌 속 ‘다른 세상’은 짜릿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러나 곧 ‘다른 세상’의 짜릿함은 복잡하고 쉽지 않은 세상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자기반성의 주먹질로 내 머리를 강타한다. 이번 강의에서도 그랬다. ‘간단’, ‘새로움’, ‘하이브리드(hybrid)’, ‘혼종’ 등으로 시작된 강의 내용은 웃음과 속시원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후반부에 가서는 순진하리만치
'군위안부’역사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생각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인식과 태도에 강한 펀치를 날렸다.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이 민족주의의 이해와 일치될 때에만 정치와 역사로 간주된다는 분석, 그리고 ‘군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진술한 다양한 구술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지만 민족주의가 원하는 역사만이 재생산되고 강조되고 있다는 내용은 ‘군위안부’역사에서 당사자인 피해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과 입장이 배제되어 있음을 알게 했다. 또한, ‘군위안부’역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숨겨졌던 사건들까지 듣게 되면서 ‘군위안부’역사는 절대로 간단할 수 없으며, 이와 관련해서는 대응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응을 통해 의미 있는 정치적 운동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양성을 위해서,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해서, 성평등을 위해서 가부장주의 사회에 여성주의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습관처럼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군위안부’역사를 다루는 언론보도 속에서 정작 당사자인 피해 여성의 입장은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번 강의를 듣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다.
그저 ‘군위안부’역사에 대해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역사이기에 여성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리’정도만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군위안부’와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폭력 피해 사실, 숨겨져 있는 폭력 가해 사실을 들으면서 매우 답답하고 불편해지기까지 했다. “간단한 역사는 없다”라는 정희진선생님 말씀을 빌려 생각해보면, 숨겨졌고 몰랐었기에, 감춰진 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것이 전부일까?’라고 의심하지 않았기에 언론이 보도하는 대로 ‘군위안부’역사를 민족주의의 이해에 맞닿은 ‘간단한 역사’로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강의 후반부로 갈수록 ‘혼종’된 ‘군위안부’역사에 빠져들며 더욱 복잡·답답하고 불편했다. ‘군위안부’와 관련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민족주의의 이해의 관점으로만 간단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내 자신의 어처구니없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는데 자기반성을 시작했으니 내 스스로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을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기에, 나의 어처구니없음이 단번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아픈 만큼 바로 성숙하는 즉각적인 변화는 보이지 못해도, 적어도 이번 강의를 통해 ‘군위안부’의 ‘간단한 역사’를 ‘혼종’이 전제된 ‘새로운 역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내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기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냥 편안하게 듣고 생각하던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강의가 아니라,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도록 하는 시간이었기에, 그 마침이 아쉬운 강의였다.
앞으로 남아 있는 강의에는 어떤 강펀치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정신 못 차릴 정도의 강펀치를 바라며 유쾌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강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