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저녁, 종로에서스토리파티 <그래, 나 아프다>가 열렸습니다.
스토리파티는 올해 민우회 여성건강팀에서 진행한 인터뷰사업
<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의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를 '대놓고 펼쳐보는' 자리로 준비되었습니다.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가 '즐겁게' 오가는 자리게 되길 바라며 스토리'파티'라 이름붙인 탓에
술과 맛있는음식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도 있었더라는;ㅁ; 의도된 낚시는 아니었씀다;ㅁ;
'오옷 책 나왔다!'
당일날 인쇄되어 민우회 사무실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소책자-
인터뷰 사례집 <아플 수 있잖아>를 나눠드리기는 날이기도 했어요.
여성건강팀 활동가꼬깜이 전체 사회를 맡았습니다.
시간 초과와 대관료의 압박 속에서 유연하고 쫄깃쫄깃한 진행.
민우회를 대표하여, 오신 분들께 감사 인사와 행사 취지를 이야기하며
스토리파티의 문을 연 민우회 활동가박봉과시원.
먼저, 건강팀과 함께 미디어활동가 밀가루 님이 만든 영상<아픔을 마주본 적 있나요?>를 봤어요.
질병에 대한 일률적인 담론들, '만약 내가 큰병에 걸린다면?'이란 질문에 답하는 얼굴들로 시작된 영상은
'우리는 죽은 사람의 수를 셀 때와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서 산 사람의 수를 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오드리로드의 인상적인 문장을 지나,
이번 사업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살짝씩 전하고
'인터뷰는 끝났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쳤습니다.
그렇담 어떤 이야기가 시작된 걸까-
이어 여성건강팀 활동가제이가 이번 프로젝트를 어떤 뜻에서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는지,
인터뷰이 모집과 인터뷰 진행, 사례집 출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결과의 연구를 맡아주신 백영경 선생님이<다시, 삶을 찾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셨어요. 스물 다섯 명 여성들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는
- 병을 진단 받고 치료하는 과정부터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맡겨져 있는 각자도생의 사회.
- 정상가족 중심의 사회, 여성의 역할에 의존하는 가족관계 안에서 중증질환이란 큰 변화를 겪으며
'가족'은 여성의 역할을 재평가하며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원망과 압박을 주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역시 사회적 지원 없이 각 가족/개인의 몫으로만 남아 있다는 것.
- 치열한 경쟁과 몸의 정상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아픔 자체가 부끄럽고 미안한 일로 경험되는 사회.
- 질병 경험이 의료적 경험으로만 해석하고 개인의 건강과 미래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으로 여기기에
결국 사보험이 최고의 질병 대책이 되고 있는 사회.
중증질환을 경험하고 일상에 복귀한다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조정된 역할을 찾고, 투병과정에서 얻은 지혜로 새로운 일상을 꾸려가는 것.
우리 사회가 그 일상 복귀의 과정을 수용하려면투병 당사자들의 경험을 삶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로서 귀기울여야 함.
시급하다고 생각되는 과제를 꼽자면
중증질환자 산정특례 기간이 5년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후 검사와 치료 비용의 부담이 큰 문제에 대한 대안 검토
생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부실하고 환자의 사보험 가입은 제한됨- 치료비 지원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 구축
중증질환자의 일상에 다층적으로 접근하고 당사자만이 아닌 주변인들까지 지원해줄 수 있는 민간 주도의 통합적 센터 설립
*자료집 파일을 첨부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발표에 뒤이은 순서는앓음알음 토크-라는 이상한 제목의 토크였어요ㅎ
사회: 임경선(작가 / <기억해줘>, <나라는 여자> 저자)
게스트: 제이(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백영경(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문화인류학)
송병기(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 인류학)
반다(‘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 인터뷰이)
종횡무진 수다가 이어졌던 터라 그 내용과 분위기를 이 글에 담기란 불가능하겠군요ㅜㅜ
나왔던 얘기들 중 몇 마디만 일부나마 적어 볼게요.
추려서 쓰는 건데 매우매우 길어요; 압박스러우시겠지만... 그래도 쓰렵니다.
압박스러우시면 빠르게쭈욱 내려 주세요;ㅁ;
반: "주변에 위로해주는 지인들도 있고 애인도 있었는데도 되게 많이 외롭고 혼란스런 시간이었다. 투병 3-4년차 지나가면서는 주변에 다른 아픈 지인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이 투병생활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해서 답변을 여러 번 했었는데, 그 경험들이 반복되면서'왜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픈 사람 얘기는 들려오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아픈 사람들 얘기를 아프기 전에 들었더라면 투병 생활에 도움이 됐을 텐데."
반: "인터뷰를 하고 나서 집에 들어오는데 몸이 공중부양하는 느낌이었다. 너무 가볍고, 세 시간 말을 하고 났을 뿐인데 굉장히 추위에 떨다가 사우나 하고 나왔을 때 몸이 쫙 풀리는 느낌.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주변 사람들한테도 얘길 하긴 했지만 항상 '아, 내가 힘든 얘기해서 얘가 마음 아파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다. 솔직하게 얘기하긴 하지만 헤어질 때쯤 되면 '하지만 괜찮아', '어, 작년보단 좋아졌어', '아파서 알게 된 지혜도 있어'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는.감정노동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었다."
송: "중장년 여성 말기암환자 대상 연구 컨퍼런스 키워드는 대부분 '억울함'. 남성의 경우는 '외로움'이었다."
송: "더 이상 집중적인 치료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발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애매한 사람들. 이들의 일상적 목소리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의존적이다, 이상하다라는 모호한 호명을 하고 있다."
임: "애매하지만 불안할 건 또 다불안하다."
백: "사회적 대안들을 실현하는 방법? 꼭 정치권이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 또 하나의 시혜로 접근될 가능성도 크다. 사실 암 관련해서 쓰이는 돈들이 엄청나고,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지금은 딱 치료를 받을 경우에만 지원이 들어가는데,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는 게 필요.우선순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뭔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 끝없이 나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기도."
청중1: 처음엔 내가 왜 아팠나 이런 반성?을 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님 너무 예민해서. 맨날 건강 정보 찾아보고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됐는데,어느날 보니까 내 삶이 그거밖에 없더라. 아픈 몸으로 어떻게 일상을 살아야 되고, 너무 건강에 집착하지 않고 아픈 게 내가 잘못해서 아프지 않다는 거를,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질 수 있나. 전임자분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웃음). 얘기를 듣고 싶었다.
반: "질병을 경험한다는 건, 만약에 어항이 있으면 이 어항에 돌 하나가 들어가는 게 아니더라. 이를테면 핏물을 펑펑 쏟아넣는. 그래서 이생태계가 변하고, 물의 밀도가 변하는 것처럼. 처음엔 나에게 삶 자체가 뒤틀리는 경험이었다."
반: "지금은 나를 탓하거나 건강에만 천착하는 것에서 좀 자유로워졌는데. 내가 성격이 좀 지랄스러웠네?(웃음) 이렇게 수용하게 되고. 근데 내가 지랄스러운 것도 문제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여러 조건들도 있는 거지 않나. 유전적인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구나. 생각을 비우는 연습들을 많이 해서 그게 도움이 됐다."
임: "저는 한 일주일 확 우울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거조차 잊게 만들 수 있는, 몰두할 수 있는 다른 거에 좀 많이 꽂혀서 살았던 것 같다. 그만큼 파워풀한 게 뭔가. 저 개인적으로는 남자. (청중 웃음) 두 번째로는 일. 성취지향적인 일. 물론 몸이 아픈 것 때문에 일이 잘 안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24시간 누워있는 건 아니다. 그럴 때 그 한 시간만이라도 뭔가 생산적인 걸 하고."
청중2: "저도 굉장히 젊었을 때부터 아팠는데,너무 젊어서부터 아프다보면 경제적 생계 문제랑 진짜 많이 연결되더라. 병에서 내가 뭔가 얻었다고 생각하기까지 사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아직 뭘 하기도 전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너무 크다. 그런 불안들에 대한 얘기들이 좀 들리지 않고, 지지해줄 사람이 별로 없다."
반: "너무 공감된다. 아까 보고서 발표 들으면서도 느꼈지만,질병을 경험한다는 게 생물학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너무 달라진다는 거. 어떤 위치가 더 좋고 나쁘고 이런 걸 떠나서,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어서 내가 그 가족이나 아이의 돌봄을 많이 담당하고 있는 엄마 포지션에서 아픈 것에서의 어려움이 있고, 비혼이고 1인가족이고 이런 위치에서 아플 때의 경험이 다르고. 일단은 1인가구나 비혼 여성들의 삶의 경험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얘기되거나 제도적으로 받쳐지지 않은데 심지어 질병이 있는 1인가구 비혼 여성들의 경험들은 더더욱 이야기되어지지 않고. 환우회든 어디든 얘길 하면, '어우 걔가 결혼을 안 해서 아퍼.' 막 이런 얘기 막 너무 많이 듣게 되고."
임: "서로 약간 네트워크 식으로, 며칠에 한 번씩 연락해주기 이런 식으로. 같이 서로 아픈 거라든지 약한 점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든 내가 찾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내가 먼저 아픈 걸 얘기하는 것 자체부터가 중요하고 내가 얘기했을 때 오해받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도 얘기할 수 있게서로 물꼬를 터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나 그런 장소나 그런 사람들. 내가 있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장소를 찾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중3: "저는 지난 2월에 암을 진단을 받았고 지금도 치료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여기 온 것도, 사실 젊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고 정보를 공유한다든지 맘에 있는 얘길 한다든지 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정말 없구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저희 나이 대에는 단순히 암 하나만이 아니라, 다시 세상에 나가야 되는데,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이런 힘듦을 어디 얘기할 데가 없고. 친구들한테 얘기하더라도 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는 거는, 정말 그냥, ‘괜찮니?’ 이런 정도(웃음). 근데 그런 걸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앞으로 니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라는 얘길 듣고 싶은데.그런 얘길 해줄 수 있는 비슷한 걸 겪은 사람을 너무 찾기가 힘들더라. 특히 젊은 사람들.내 병에 대해서 오픈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나, 숨기면서 살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저도 제가 겪은 일들 글로 써내려가고, 사실은 오픈을 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거지 누구랑 대화를 할 수가 없더라."
송: "질병 문제가 개인적인 걸로 환원된다고 할 때 그럼과연 개인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 뭐냐면 환원된 그 개인을 가만히 쳐다보니까책임의 주체로서의 단위다. 그리고역할로서의 개인. 엄마냐, 아빠냐, 가장이냐, 돌봄자냐. 그런 개인은 있는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수다를 떨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개인, 주체적인 시민으로서의 개인은 좀 없는 것 같다."
백: "지리멸렬한 얘기를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 아픈 얘기가 없는 것 같지만 엄청나게 많다. 아침에 방송 켜면 그때부터 밤중까지 그 얘기. 근데 얘기가 되는 방식이, 질병 관련 정보로만 얘기한다든가 아니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사연을 얘기하는 거지, 실제로 그 중간에 있는, 그 지지부진한 지리멸렬한 이 일상의 이야기가 없는 것."
반: "제가 투병생활 하다보니까 몸에 대해서, 몸의 눈치를 너무 보고, 늘 몸을 모시고 살게 된다. 사실 몸이 너무 좋지 않나. 몸이 있어서 이 햇살의 따뜻함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누릴 수도 있고 스킨쉽을 느낄 수도 있고. 근데 내가 몸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구나 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돼서 저는 몸의 행복, 즐거움을 다시 찾기 위해서 뭘 할까 하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투병생활 하고 있거나 끝났거나 그 중간에 있는 분들이, 우리가, 질병을 경험하는 몸으로서 거기에 많이 촉박되어 살지 않나.그런 분들에게 춤이 됐든 뭐가 됐든이 몸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좋겠다."
토크가 끝나고 시간이 늦어져 쉬는 시간 없이 바로 2부가 이어졌어요
'작은 말하기 큰 목소리'
이번 프로젝트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몇몇 분이 앞으로 나오셔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솔직하고 담담한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순간 글썽글썽 했다가, 또 마구 박수 치며 폭소하곤 했습니다.
서로 지지하는 마음을 느끼며, 말해주는 이들에게 고마워하며,
안정감 속에서 말하고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발언자의 이야기가 끝나고는 진심어린 큰 박수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참석하셨던 많은 분들이
작은 말하기 시간이 정말 좋았다, 인터뷰이들이 용기내어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웠다,
큰 공감가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이런 말하기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겨 주셨습니다.
(앗 쓰고나니 '이를 본 네티즌 반응은..'같은 느낌이;;; 하지만 진짜에요!ㅎ)
마지막으로 꼬깜이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천 번을 고민했다며ㅎㅎ
"아플수", "있잖아!"를 다 같이 외치는 것을 제안하여,
정말로 같이, 아플 수 있다고 신나게 소리치며 행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지리멸렬한(!) 일상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여기저기에서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토리파티에 참석해주시고 함께 이야기나눠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덧)
사례집 <아플 수 있잖아>는 수령을 원하시는 분들의 신청을 받아 보내드리고 있어요.
단, 착불 택배로 보내드립니다. 아래 링크에서 신청하시면 되어요!
http://goo.gl/qMPlAV
11월 5일 저녁, 종로에서스토리파티 <그래, 나 아프다>가 열렸습니다.
스토리파티는 올해 민우회 여성건강팀에서 진행한 인터뷰사업
<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의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를 '대놓고 펼쳐보는' 자리로 준비되었습니다.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가 '즐겁게' 오가는 자리게 되길 바라며 스토리'파티'라 이름붙인 탓에
술과 맛있는음식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도 있었더라는;ㅁ; 의도된 낚시는 아니었씀다;ㅁ;
'오옷 책 나왔다!'
당일날 인쇄되어 민우회 사무실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소책자-
인터뷰 사례집 <아플 수 있잖아>를 나눠드리기는 날이기도 했어요.
여성건강팀 활동가꼬깜이 전체 사회를 맡았습니다.
시간 초과와 대관료의 압박 속에서 유연하고 쫄깃쫄깃한 진행.
민우회를 대표하여, 오신 분들께 감사 인사와 행사 취지를 이야기하며
스토리파티의 문을 연 민우회 활동가박봉과시원.
먼저, 건강팀과 함께 미디어활동가 밀가루 님이 만든 영상<아픔을 마주본 적 있나요?>를 봤어요.
질병에 대한 일률적인 담론들, '만약 내가 큰병에 걸린다면?'이란 질문에 답하는 얼굴들로 시작된 영상은
'우리는 죽은 사람의 수를 셀 때와 똑같이 관심을 기울여서 산 사람의 수를 세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오드리로드의 인상적인 문장을 지나,
이번 사업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살짝씩 전하고
'인터뷰는 끝났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쳤습니다.
그렇담 어떤 이야기가 시작된 걸까-
이어 여성건강팀 활동가제이가 이번 프로젝트를 어떤 뜻에서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는지,
인터뷰이 모집과 인터뷰 진행, 사례집 출간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략히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결과의 연구를 맡아주신 백영경 선생님이<다시, 삶을 찾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셨어요. 스물 다섯 명 여성들의 일상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자료집 파일을 첨부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봐주세요!
발표에 뒤이은 순서는앓음알음 토크-라는 이상한 제목의 토크였어요ㅎ
사회: 임경선(작가 / <기억해줘>, <나라는 여자> 저자)
게스트: 제이(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백영경(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 문화인류학)
송병기(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 인류학)
반다(‘아픈 여자들의 일상:복귀 프로젝트’ 인터뷰이)
종횡무진 수다가 이어졌던 터라 그 내용과 분위기를 이 글에 담기란 불가능하겠군요ㅜㅜ
나왔던 얘기들 중 몇 마디만 일부나마 적어 볼게요.
추려서 쓰는 건데 매우매우 길어요; 압박스러우시겠지만... 그래도 쓰렵니다.
압박스러우시면 빠르게쭈욱 내려 주세요;ㅁ;
반: "주변에 위로해주는 지인들도 있고 애인도 있었는데도 되게 많이 외롭고 혼란스런 시간이었다. 투병 3-4년차 지나가면서는 주변에 다른 아픈 지인들이 생기고 그 친구들이 투병생활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해서 답변을 여러 번 했었는데, 그 경험들이 반복되면서'왜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픈 사람 얘기는 들려오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아픈 사람들 얘기를 아프기 전에 들었더라면 투병 생활에 도움이 됐을 텐데."
반: "인터뷰를 하고 나서 집에 들어오는데 몸이 공중부양하는 느낌이었다. 너무 가볍고, 세 시간 말을 하고 났을 뿐인데 굉장히 추위에 떨다가 사우나 하고 나왔을 때 몸이 쫙 풀리는 느낌.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주변 사람들한테도 얘길 하긴 했지만 항상 '아, 내가 힘든 얘기해서 얘가 마음 아파할 텐데'라는 생각이 있었다. 솔직하게 얘기하긴 하지만 헤어질 때쯤 되면 '하지만 괜찮아', '어, 작년보단 좋아졌어', '아파서 알게 된 지혜도 있어'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는.감정노동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었다."
송: "중장년 여성 말기암환자 대상 연구 컨퍼런스 키워드는 대부분 '억울함'. 남성의 경우는 '외로움'이었다."
송: "더 이상 집중적인 치료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발병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애매한 사람들. 이들의 일상적 목소리에는 아무도 관심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의존적이다, 이상하다라는 모호한 호명을 하고 있다."
임: "애매하지만 불안할 건 또 다불안하다."
백: "사회적 대안들을 실현하는 방법? 꼭 정치권이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 또 하나의 시혜로 접근될 가능성도 크다. 사실 암 관련해서 쓰이는 돈들이 엄청나고,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지금은 딱 치료를 받을 경우에만 지원이 들어가는데,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는 게 필요.우선순위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뭔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 끝없이 나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기도."
청중1: 처음엔 내가 왜 아팠나 이런 반성?을 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님 너무 예민해서. 맨날 건강 정보 찾아보고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됐는데,어느날 보니까 내 삶이 그거밖에 없더라. 아픈 몸으로 어떻게 일상을 살아야 되고, 너무 건강에 집착하지 않고 아픈 게 내가 잘못해서 아프지 않다는 거를,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질 수 있나. 전임자분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웃음). 얘기를 듣고 싶었다.
반: "질병을 경험한다는 건, 만약에 어항이 있으면 이 어항에 돌 하나가 들어가는 게 아니더라. 이를테면 핏물을 펑펑 쏟아넣는. 그래서 이생태계가 변하고, 물의 밀도가 변하는 것처럼. 처음엔 나에게 삶 자체가 뒤틀리는 경험이었다."
반: "지금은 나를 탓하거나 건강에만 천착하는 것에서 좀 자유로워졌는데. 내가 성격이 좀 지랄스러웠네?(웃음) 이렇게 수용하게 되고. 근데 내가 지랄스러운 것도 문제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여러 조건들도 있는 거지 않나. 유전적인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럴 수 있구나. 생각을 비우는 연습들을 많이 해서 그게 도움이 됐다."
임: "저는 한 일주일 확 우울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거조차 잊게 만들 수 있는, 몰두할 수 있는 다른 거에 좀 많이 꽂혀서 살았던 것 같다. 그만큼 파워풀한 게 뭔가. 저 개인적으로는 남자. (청중 웃음) 두 번째로는 일. 성취지향적인 일. 물론 몸이 아픈 것 때문에 일이 잘 안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24시간 누워있는 건 아니다. 그럴 때 그 한 시간만이라도 뭔가 생산적인 걸 하고."
청중2: "저도 굉장히 젊었을 때부터 아팠는데,너무 젊어서부터 아프다보면 경제적 생계 문제랑 진짜 많이 연결되더라. 병에서 내가 뭔가 얻었다고 생각하기까지 사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아직 뭘 하기도 전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너무 크다. 그런 불안들에 대한 얘기들이 좀 들리지 않고, 지지해줄 사람이 별로 없다."
반: "너무 공감된다. 아까 보고서 발표 들으면서도 느꼈지만,질병을 경험한다는 게 생물학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서 너무 달라진다는 거. 어떤 위치가 더 좋고 나쁘고 이런 걸 떠나서,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어서 내가 그 가족이나 아이의 돌봄을 많이 담당하고 있는 엄마 포지션에서 아픈 것에서의 어려움이 있고, 비혼이고 1인가족이고 이런 위치에서 아플 때의 경험이 다르고. 일단은 1인가구나 비혼 여성들의 삶의 경험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얘기되거나 제도적으로 받쳐지지 않은데 심지어 질병이 있는 1인가구 비혼 여성들의 경험들은 더더욱 이야기되어지지 않고. 환우회든 어디든 얘길 하면, '어우 걔가 결혼을 안 해서 아퍼.' 막 이런 얘기 막 너무 많이 듣게 되고."
임: "서로 약간 네트워크 식으로, 며칠에 한 번씩 연락해주기 이런 식으로. 같이 서로 아픈 거라든지 약한 점을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든 내가 찾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내가 먼저 아픈 걸 얘기하는 것 자체부터가 중요하고 내가 얘기했을 때 오해받지 않고 또 다른 사람들도 얘기할 수 있게서로 물꼬를 터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나 그런 장소나 그런 사람들. 내가 있어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장소를 찾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중3: "저는 지난 2월에 암을 진단을 받았고 지금도 치료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여기 온 것도, 사실 젊은 사람들이 암 진단을 받고 정보를 공유한다든지 맘에 있는 얘길 한다든지 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정말 없구나 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저희 나이 대에는 단순히 암 하나만이 아니라, 다시 세상에 나가야 되는데,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이런 힘듦을 어디 얘기할 데가 없고. 친구들한테 얘기하더라도 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는 거는, 정말 그냥, ‘괜찮니?’ 이런 정도(웃음). 근데 그런 걸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앞으로 니가 이렇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라는 얘길 듣고 싶은데.그런 얘길 해줄 수 있는 비슷한 걸 겪은 사람을 너무 찾기가 힘들더라. 특히 젊은 사람들.내 병에 대해서 오픈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나, 숨기면서 살아가는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저도 제가 겪은 일들 글로 써내려가고, 사실은 오픈을 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거지 누구랑 대화를 할 수가 없더라."
송: "질병 문제가 개인적인 걸로 환원된다고 할 때 그럼과연 개인이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 뭐냐면 환원된 그 개인을 가만히 쳐다보니까책임의 주체로서의 단위다. 그리고역할로서의 개인. 엄마냐, 아빠냐, 가장이냐, 돌봄자냐. 그런 개인은 있는데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수다를 떨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개인, 주체적인 시민으로서의 개인은 좀 없는 것 같다."
백: "지리멸렬한 얘기를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 사회에 아픈 얘기가 없는 것 같지만 엄청나게 많다. 아침에 방송 켜면 그때부터 밤중까지 그 얘기. 근데 얘기가 되는 방식이, 질병 관련 정보로만 얘기한다든가 아니면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사연을 얘기하는 거지, 실제로 그 중간에 있는, 그 지지부진한 지리멸렬한 이 일상의 이야기가 없는 것."
반: "제가 투병생활 하다보니까 몸에 대해서, 몸의 눈치를 너무 보고, 늘 몸을 모시고 살게 된다. 사실 몸이 너무 좋지 않나. 몸이 있어서 이 햇살의 따뜻함과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누릴 수도 있고 스킨쉽을 느낄 수도 있고. 근데 내가 몸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구나 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돼서 저는 몸의 행복, 즐거움을 다시 찾기 위해서 뭘 할까 하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투병생활 하고 있거나 끝났거나 그 중간에 있는 분들이, 우리가, 질병을 경험하는 몸으로서 거기에 많이 촉박되어 살지 않나.그런 분들에게 춤이 됐든 뭐가 됐든이 몸이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면 좋겠다."
토크가 끝나고 시간이 늦어져 쉬는 시간 없이 바로 2부가 이어졌어요
'작은 말하기 큰 목소리'
이번 프로젝트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몇몇 분이 앞으로 나오셔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솔직하고 담담한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순간 글썽글썽 했다가, 또 마구 박수 치며 폭소하곤 했습니다.
서로 지지하는 마음을 느끼며, 말해주는 이들에게 고마워하며,
안정감 속에서 말하고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발언자의 이야기가 끝나고는 진심어린 큰 박수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참석하셨던 많은 분들이
작은 말하기 시간이 정말 좋았다, 인터뷰이들이 용기내어 이야기해주어서 고마웠다,
큰 공감가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이런 말하기 자리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는 평을 남겨 주셨습니다.
(앗 쓰고나니 '이를 본 네티즌 반응은..'같은 느낌이;;; 하지만 진짜에요!ㅎ)마지막으로 꼬깜이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천 번을 고민했다며ㅎㅎ
"아플수", "있잖아!"를 다 같이 외치는 것을 제안하여,
정말로 같이, 아플 수 있다고 신나게 소리치며 행사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지리멸렬한(!) 일상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여기저기에서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토리파티에 참석해주시고 함께 이야기나눠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덧)
사례집 <아플 수 있잖아>는 수령을 원하시는 분들의 신청을 받아 보내드리고 있어요.
단, 착불 택배로 보내드립니다. 아래 링크에서 신청하시면 되어요!
http://goo.gl/qMPlA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