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사회현안[후기_수요시위] 한 사람이라도 더 이야기할 때

2023-03-27
조회수 1692

 

@ 사진설명 : 수요시위라고 적힌 무대 배경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행사를 소개하고 있고 언론사 기자, 지나가는 시민, 참여자 등 수십명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3월 15일(수),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민우회 주최로 1587차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번 수요시위는 한일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제식민지를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로 명명하며 마치 변화를 준비하지 못해 겪은,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주권자의 안전 보장임에도 도를 넘은 외교, 인권규범에 반하는 강제동원 졸속해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종속외교로 

그간 최소한도로 지켜왔던 인권, 정의, 평화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보라의 사회로 수요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설명: 보라색 가디건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활동가가 한 손에는 핸드폰을 한 손에는 대본과 마이크를 들고 뭔가를 외치고 있다.

 

 

 

@사진설명: 사람들이 '공식사죄 법적배상'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 앉아 있다.

 

 

 

@사진설명: 첫 줄에는 윤석열 정부의 역사왜곡 규탄한다, 둘째 줄에는 한국여성민우회라고 써진 피켓이 있다.

 

 

 

@사진설명: 정의라는 우주, 기억하는 우리, 연대라는 세계란 문구가 써진 스티커가 있다. 

 

 

 

 

@사진설명: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 성평등 사회의 시작이다"라고 적힌 피켓 뒤로 기자들이 서있다.

 

 

 

@사진설명: 민트색 외투를 입고 안경을 쓴 활동가가 핸드폰을 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민초 활동가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제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였습니다.  당시 계속 뇌리에 남아 있던 사진이 있습니다.

바로 만삭의 ‘위안부’ 피해자, 그 여성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 그리고 그 옆에는 웃으며 앉아 있는 일본군이 찍혀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이 사진이 찍히기 전까지 어떤 것들을 겪어야만 했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저는 페미니즘 강의를 듣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더 깊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박수남 감독의 <침묵>인데요, 영화 속에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던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

‘나도 언젠간 이 문제에 대해 꼭 목소리를 내서 이야기해야 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사람이라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소리내어 이야기할 때, 그 목소리는 또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준다고 믿습니다.

 

(중략)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기나긴 싸움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외교적 성과를 자랑하는 것에 급급한 이 시점에서, 그리고 일본 정부가 여전히 사죄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일뿐입니다. 

 

 

@사진설명: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안경을 쓴 한 활동가가 정면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몽실 활동가의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가방을 싸고 온 서울에서 처음 수요시위에 참여하게 됐는 데, 제가 유일하게 직접 만나 뵌 일본군성노예피해자故곽예남님의 가방이 떠오릅니다.

곽예남님은 열아홉살에 친구들과 뒷산에서 나물캐다가 일본순사에게 끌려가서 중국땅에서 일본군성노예 피해를 겪었던 분입니다.

45년에 해방이 되었지만 돌아올 수 없었고 중국땅에서 중국말도 몰라 60여년을 헤매시면서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그러다 일본군성노예피해자임을 밝히시고 2004년에서야 조국의 고향땅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광주에서 광주나비와 연대활동을 하던 중곽예남님이 거처하시던 담양에 가서 뵌 적이 있습니다.

돌보는 분이 말씀하시길 곽예남님은 항상 머리맡에 가방을 두셨다고 합니다.

 

모진 세월 속에서 말과 글을 다 잊어버리신 그분과 소통이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짐작해 봅니다.

선생님은 어떤 마음으로 가방을 머리맡에 두셨을까하고요.

 

 

한치앞을 알 수 없고 언제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긴박감이 몸에 각인이 되어 가방을 머리맡에 두셨을까.

아니면 언제든 고향땅에 가야한다는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가방을 머리맡에 두셨을까.

고향에 오셨지만 그 습을 버리지 못하시고 여전히 고향땅 침대맡에 가방을 두셨다는 곽예남님의 마음에서 그 가방이 그동안의 고초를 내려놓고 편히 품어줄 곳으로 데려다 줄 동아줄이셨나 생각해봅니다.

 

(중략)

 

 

최근에 화제가 된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더군요.

“피해자들이 되찾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영광과 명예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 영광과 명예는 진정한 사과로부터 되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과가 없다면 싸워서 되찾아야 합니다.

가해국의 공식적인 사과와 진상규명을 통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선입니다.

 

 

@ 사진설명: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고 그 모습을 카메라로 기자들이 찍고 있다. 

 

베리 활동가의 성명서 낭독으로 시위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 사진설명: 회색 점퍼를 입고 한 손으로 피켓을 든 활동가가 성명서를 읽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과거를 우리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때문에 기억은 그 자체로 투쟁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어떤 과거도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일제식민지는 우리가 “준비하지 못해” 겪은 문제가 아닌, 다른 나라를 침략함으로써 자신들의 패권을 넓혀가려는 제국주의를 신봉한 일본의 문제다.

 

윤 정부가 정의한 과거에는 우리의 잘못과 전 정부의 잘못만 있다. 21년 만에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도 없다.

 

현재와 미래 어디에도 일본군성노예제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회복은 없다. 회복은 차치하고 존재조차 지우고 있다.

 

(중략)

 

2013년에 세상을 떠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황금주 님은 “이렇게 해 가지고 역사에 뭘 남길 거야?”고 말했다.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가해자의 언어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항한 목소리였다.

 

과거를 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결연한 언어들이 모여, 1587차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언어 앞에서 가해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윤 정부는 비겁함만을 역사에 써가려는 듯하다.

 

∎ 제1587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성명서 ∎<-성명서 전문읽기 

 

 

 

@사진설명: 주로는 갈색, 보라색, 흰색의 옷을 입은 활동가들이 정면을 응시하며 한 손으로 주먹을 들고 화이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