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병순 연임 제물 김제동, 엄기영 보신 제물 손석희
KBS는 가을 개편에서 ‘스타골든벨’을 진행해온 김제동 씨의 출연을 중단했고, MBC 운영진은 ‘100분토론’의 사회자 손석희 씨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두 방송인은 각각 맡은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진행 실력을 보이며 시청자의 사랑과 신뢰를 한몸에 받아왔다. 또한 사회 비판적인 시각과 참여적인 발언으로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는 방송인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KBS와 MBC는 두 방송인의 출연 중단을 통보하면서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KBS 홍보팀은 1년에 두 차례 프로그램의 신설 및 폐지, 출연자 교체가 이뤄지며 김제동의 하차는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대현 KBS TV제작본부장도 김제동 씨가 이 프로그램을 4년 정도 해와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정관웅 MBC 보도제작국장 역시 진행자 교체는 전체적인 프로그램 변화를 위한 고려 사항 중 하나로 손석희 씨 교체 문제는 10월 말쯤 결정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KBS와 MBC는 공히 편성프로그램의 개편 일정과 인사권을 들어 두 방송인의 출연 중단을 설명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편성에 있어 책임있는 인사권자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다만 KBS와 MBC는 편성프로그램 인사의 전권이 경영진에 부여되어 있다. 그런만큼 경영진은 공영방송의 모든 프로그램, 특히 시사.보도.토론프로그램의 주요 인사에 있어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구현에 적합한 인물인지,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사회비판적이면서도 능력있는 인물인지를 준거로 삼아야 한다. 한편 경영진의 인사권의 행사가 얼마나 정당한지, 특정한 인사 방침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를 보고 판단하는 일은 시청자와 시민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두 방송인의 중도 하차 조치에 대한 시민사회와 네티즌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길게 설명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김제동 씨가 진행해온 ‘스타골든벨’은 2004년부터 방송된 KBS의 장수 프로그램으로 평균 8-9%의 안정된 시청률과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더군다나 김제동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맞아 추모의 글을 쓰고 노제 사회를 맡았으며, 트위터에 “쌍용자동차와 이란을 잊지 말자”는 코멘트를 남기는 등 사회 참여적인 방송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왔다. 손석희 씨가 진행해온 ‘100분토론’은 한국 사회 이슈와 쟁점을 두고 격의없는 찬반 토론을 유도해온 대표적인 토론프로그램으로, 손석희 씨는 수준 높은 토론 진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김제동, 손석희 두 방송인의 중도 하차 조치는 일반적인 개편 인사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 KBS에서는 정관용 씨의 ‘열린토론’ 하차, 윤도현 씨의 ‘러브레터’와 라디오 ‘뮤직쇼’ 하차, MBC에서는 신경민 앵커의 ‘뉴스데스크’ 하차, 김미화 씨의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 압박 등이 빚어졌다. 모두 정치권력의 부정과 비합리, 몰상식 따위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회 참여적인 방송인들이다.
오늘날 사회 참여적인 방송인은 정치권력의 홀대와 탄압에서 자유롭지 않는데, 김제동, 손석희 씨의 프로그램 진행 중단도 이들 사태의 연장에 있다고밖에 다른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KBS와 MBC의 경영진에 의해서, 근본적으로는 방송인의 사회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정권의 압력에서 기인한다. 정권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KBS, MBC 경영진들은 그동안 시사.보도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사회비판적인 편성.제작주체의 자율적인 컨텐츠 생산을 가로막았으며, 툭 하면 공정성 시비를 벌이며 방송 컨텐츠 생산 환경을 황폐화시켜왔다. 이같은 환경에서 어느 방송인이 방송인이라는 공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며, 어느 방송인이 마음 속에 품는 진실과 정의의 언어를 시청자와 시민사회를 향해 곧이곧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정권과 직결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재생산 되는 한, 현재의 인사권 제도를 근거로 한 방송인 관리 시스템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김제동, 손석희 씨의 중도 하차는 아무리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점을 강변하더라도 이 정치적 공작의 산물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병순 KBS 사장은 정권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사장 연임의 재물로 김제동 씨를, 엄기영 MBC 사장은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며 보신을 유지하기 위한 재물로 손석희 씨를 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정치 종속적으로 굴욕의 처지에 빠진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극복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제에 공영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의 신설과 폐지, 제작.편성 주체의 자율성의 확대, 방송인의 사회 참여 활동 보장 등에 있어 시민사회의 감시 통제 기능을 획기적으로 높여내는 일이다. 어렵더라도 사회 참여적인 방송인과 시민사회가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길밖에 도리가 없는 일이다.
2009년 10월 12일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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