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사회현안[논평] 123개의 국정운영 과제 중 성평등 과제는 단 2개 뿐, 새로운 정부는 성평등 사회를 향한 광장의 요구를 받아들여라! (25/09/03)

2025-09-03
조회수 864

회색 바탕의 세로로 긴 직사각형에 [123개의 국정운영 과제 중 성평등 과제는 단 2개 뿐, 새로운 정부는 성평등 사회를 향한 광장의 요구를 받아들여라! 성평등 관점으로 본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라는 논평 제목이 적혀있고, 하단에는 한국여성민우회 로고가 배치되어 있다.

[논평]


123개의 국정운영 과제 중 성평등 과제는 단 2개 뿐,

새로운 정부는 성평등 사회를 향한 광장의 요구를 받아들여라!

- 성평등 관점으로 본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지난 8월 13일 이재명 정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이하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새 정부의 국가 비전으로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 제시되었다. 유력 후보자였던 이재명은 “여성만을 위해 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성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며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이해하는 한계적 시각을 드러내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국정운영 계획에서는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하였으나 123개 국정과제 중 성평등을 목표로 둔 과제는 단 2개뿐이다. 그나마 포함된 성평등 과제의 제목은 ‘내 삶에 기회를 여는 성평등’이다.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성차별적 구조와 성별 권력관계에 기인한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기회의 균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난다. 공동체 통합과 불평등 해결을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구조적 성차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국정과제 “통합과 참여의 정치 실현”에서는 사회갈등의 해결책을 찾겠다며, 5대 사회갈등 중 하나로 ‘젠더’를 포함했다. 이재명 정부가 우리 사회의 성차별, 성폭력의 문제를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축소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갈등은 ‘젠더’가 아니라 성평등을 가로막는 일부 혐오 세력과 혐오 세력에 편승하는 정치에 있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젠더에 관한 이분법적이고 협소한 이해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광장에 나선 소수자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차별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젠더’에 대한 확장된 시야 없이는 성평등 정책의 방향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넘어선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여성가족부 차관에게 “남성들 차별 부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젠더’를 사회갈등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점과 여성가족부의 역할에 대한 몰이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발언이다. 윤석열 정부 성차별적 국정운영으로 인해 여성가족부는 유명무실했고, 지난 공백을 채우려면 이재명 정부 여성가족부 역할이 막중하다. 그러므로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국정과제 목표는 긍정적이나 이것이 목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성평등가족부의 필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여성가족부 2026년 예산안으로 올해보다 11.8% 증가한 1조 9,866억원을 편성했고, 이는 정부 총예산(728조)의 0.27%를 차지하는 규모다. 여전히 작은 규모이지만 성평등가족부 확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예산은 반드시 증액되어야 했다. 그러나 예산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가족정책으로 1조 4,019억 가량이 배치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돌봄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에 이를 회복할 필요가 있지만, 성평등가족부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이 여전히 ‘가족’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국가가 해결해야 할 성평등의 영역을 다시 혈연으로 회귀해 여성의 부담을 강화하는 방식이므로 한계적이다.



돌봄, 가족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라

국정운영 과제에서는 돌봄에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사회통합돌봄 강화를 위해 전담조직·인력을 배치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그 대상을 노인,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한정하여 돌봄을 협소하게만 다루는 한계를 보인다. ‘두텁고 촘촘한 주거복지’는 여전히 신혼부부에 맞춰져 있고 ‘다양한      가족 지원’ 역시 ‘한부모, 이주배경 가족, 1인가구’만을 다양한 가족으로 상정한다. 국가가 상상하는 가족의 형태가 여전히 제한적이고 법적·혈연 가족에 머무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재명정부가 제시한 것처럼 ‘인구위기를 극복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면, ‘정상가족’ 내에서 출산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주거지원이 아니라, 돌봄을 주고받으며 관계맺고 있는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적극 받아들이고, 모두가 돌보고 돌봄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지금 필요한 대전환이다.


또한 인구 구조 변화 대응을 강조하고 있으나, 여전히 낡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고수하고있다. 다양한 형태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기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민법 제779조 삭제,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을 통해 현재 혈연, 혼인, 입양으로 협소하게 제한되어있는 가족 규정을 개정해야한다. 또한, 생활동반자법 제정 등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관계와 삶을 법·제도가 포괄적으로 보장해야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한 일터를 보장하라

이재명 정부는 “누구나 존중받는 일터”라는 슬로건 아래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가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노동자 47.3%가 비정규직이며 저임금 노동자 상당수가 여성이다. 이러한 성차별적 노동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노조법 2·3조 개정”,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라는 주요 과제는 여성노동자의 일상을 변화시킬 만한 중요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을 포함해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일터 기본법을 제정하는 방식은 일부 권리만을 제한적으로 보장하여 또다른 제도 공백을 만들 우려가 있다.


여전히 많은 여성노동자가 출산, 양육으로 인해 일터에서 불이익을 겪고 경력단절을 경험하며,  직장 내 성희롱, 성차별 피해자의 상당수는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며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폐지되었던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복원하겠다는 과제는 매우 환영할 일이다.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이 복원된다는 것은 부당한 노동환경에 맞서 함께 싸울 공간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정상가족 모델에 한정된 일·가정 양립 정책은 노동자에게 출산과 양육을 수행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노동자의 다양한 일·생활 양식이 존중받을 때 일터에서의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일터 성평등 구축을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철학으로 삼을 때 비로소 모든 노동자에게 평등한 일터가 열릴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안전 사회 구축 방안을 고민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도 “강간죄 개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라고 말하고, 123개 국정과제에서 강간죄 개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2018년 #METOO(미투)운동 흐름 속에서 20대 국회는 강간죄 개정 법안 10개를 발의했고,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3건을 발의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유엔 자유권위원회도 모든 형태의 강간을 ‘동의 부재’로 정의하도록 권고하였다. 지난 광장에서도 ‘강간죄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고, 강간죄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 2건이 최근 각각 5만 명 넘게 달성했다. 이처럼 강간죄 개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은 이미 충분하다. 강간죄 개정은 시대의 요구이고, 세계적 흐름이다. 이재명 정부는  '강간죄 개정'을 주요 국정운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 강간죄 개정으로 기울어진 성별권력 관계를 바로 잡고, 성평등 한 사회를 기반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5대 목표 중 하나로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주요 목표로 두고, 국민의 안전한 삶을 도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어떤 관점으로 국민의 안전을 바라보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정부는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교제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발생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 정책은 치안 AI·딥페이크 탐지·데이터 집적 시스템 같은 기술적 해결책에 치중한다. 기술적 해결책이 강화되면 젠더폭력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아직도 수사·재판 기관의 성폭력, 스토킹, 교제폭력 등을 다룸에 있어서 피해자 관점과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여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 남성중심적 강간 문화와 그릇된 통념을 기반으로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고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정부는 폭력의 근본 원인인 성별 권력구조를 제대로 직시하고, 사회 인식개선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차별·혐오 금지 정책을 마련하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윤석열은 끝없이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고, 불법적 비상계엄 이후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는 극우집단의 서울서부지방법원 파괴라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묵인·방관한 결과로,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차별·혐오 금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혐오표현 실태 파악, 혐오 방지 범정부 협력체계 구축, 혐오·차별 방지 법제화 검토 및 공론장 마련으로 인권존중문화 확산 등 낮은 수위의 정책만을 내놓았다. 


또한 방송미디어의 공공성과 공익성 제고를 위한 과제에서도 혐오·차별 표현에 대한 대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디지털 미디어 규제의 대상은 여전히 혐오·차별 표현이 아닌 허위 정보와 불법 정보에 한정되어 있다. 규제의 목적 역시 신뢰성과 '건전성' 가치에 그친다는 점에서, 인권 보장과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미디어가 갖는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방송미디어 전 과정 AI 도입, AI 오남용 대응 핵심 기술 개발 및 상용화 지원, AI 기반 디지털 보안 시스템 구축 등의 과제에서 디지털·미디어 환경의 문제에 대한 기술만능주의가 드러난다. AI의 편향성과 차별 재생산, 인권침해 문제가 대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한계적이다.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전인적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학교에서 시민·역사·문화예술 및 체육 교육을 실시하고 생애주기별 경제·금융·노동교육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교육의 영역에 성평등 교육은 부재하다. 민주 시민을 위한 교육은 민주주의라는 공허한 기표만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의 존중과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성평등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므로 혐오와 차별을 중단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성평등이 사회의 기본 가치임을 적극 표방하여야 한다.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성평등 정책을 파괴해 온 윤석열 정부의 2년 6개월을 목격해 온 페미니스트 시민은 성평등이 사회 정의로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요구하며 윤석열을 탄핵시켰다. 이재명 정부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광장의 시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이 그리던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이 정부의 존립 이유이자 방향성이다. 더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성차별, 성폭력이라는 부정의를 바로잡도록 페미니스트 시민은 이재명 정부의 5년을 지켜볼 것이다. 



2025년 9월 3일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