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다이어리📧]너는 창의력이 없어서 안 돼✒️


너는 창의력이 없어서 안돼✒️ 





🐧은수/여성노동팀 

최근 신설된 크로스벨시 자치경찰 특무지원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본가에 대한 대중의 선망의식이 손쉽게 디터 시장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흐름에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하고 있는 게임 「영웅전설 시리즈」 이야기입니다.)



(▲ 이미지: 유치원복을 입고 머리띠를 한 긴 머리의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큰 곰돌이 인형의 팔짱을 끼고 어깨에 기대어 자고 있다. 그림 주위에 그림과 관련한 일화가 쓰여있다. 불교유치원 다닐 적에 크리스마스가 아닌 석가탄신일에 곰돌이 인형을 선물 받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도 그 곰돌이가 부처님이 주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인형은 당연히 부모님이 절에 보낸 것이었다. ⓒ은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 


어릴 때부터 나는 당연히 그림을 그리며 살 거라 생각했다. 언제부터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초중고 12년 동안 몇십 권의 연습장에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오른쪽 검지 가운뎃마디에 혹처럼 생긴 굳은살이 남아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무아지경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는 잠시 뉴욕에 있는 패션스쿨을 가겠다며 유학 계획을 세워 아버지에게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스튜디오 지브리에 들어갈 구체적이고도 이상적인 목표를 세웠다. 아버지도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평생 해왔으니, 반대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나라 🗣️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부모님께 미술학원에 보내 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난색을 보였고, 아빠는 화를 냈다. 애초에 우리 집은 입시 미술학원에 보낼 돈이 없었다. 그 무렵 아빠는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했었나 그림값이 계속 밀렸나 그랬다. 집안 곳곳 절망과 우울, 패배감 따위가 검은 물처럼 넘실거렸다. 내가 무언갈 하고 싶다, 갖고 싶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돈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버지는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겠다는 나의 목표에 벼락처럼 화를 냈다. 고성을 내지르고 울그락불그락1) 달아올라 터질듯했다. 나는 너무 놀라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다 “너는 창의력이 없어서 안 돼!”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돈이 없어서, 애니메이션학과가 설치된 학교는 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대학이라서, 미술로 돈 벌어먹으며 산다는 건 힘든 일이라서…. 그런 이유라면 괜찮았다. 하지만 창의력이 없다는 건, 도무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1) 울그락불그락은 표준어가 아니다. 하지만 이 단어를 대체할, 붉으락푸르락이나 누르락붉으락은 도무지 낯설고 그 어감이 전달되지 않아 오용한 채로 두었다.


(▲ 이미지: 펭귄 캐릭터가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뒤로 단단하게 잠긴 문틈 사이로 검은색 손이 삐져나오고 있다. 어둠 속에 수많은 눈이 열어달라고, 풀어달라고 말하고 있다. ⓒ은수)


그림으로 자기 삶을 꾸려온 아버지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으니 그 말이 가진 힘은 절대적이었다. 한참을 방황하다가 학교 도서실에서 어떤 소설을 읽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건 약 1년 뒤의 일이다. 아빠는 책과 관련된 모든 일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그 꿈은 그럭저럭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도 “창의력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수시로 벽처럼 내려와 나를 가로막았고,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아끄는 무시무시한 ‘언령言霊’2)이 되어 나를 지배했다.

사람들은 흔히 창작을 무舞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천부의 재능이라 여긴다. 천부의 재능을 지닌 ‘작가님’에 대한 사회의 무비판적인 숭배는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했다. 2016년 10월, SNS를 중심으로 #예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다.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사회문화로 인해 문화예술계 내 위계 구도가 남성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 문인이 ‘예술적 허용’을 빌미로 작품의 안과 밖에서 여성 창작자에게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그 속에서 창작에 대한 신화는 깨어졌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또한 그저 사람이 하는 수많은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서서히 ‘아버지의 말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2)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믿어지는 신앙으로, 말에 깃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영적인 힘을 말한다. 언혼(言魂)이라고도 쓴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당시 내가 ‘언령’이라는 말을 쓸 때는 나를 옭아매는 부정의 언어, 저주와도 같은 의미로 자주 사용했다.



새로운 목표 🧩 


원래 이 글을 청탁한 〈함여〉 편집팀의 의도는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원한 게 아니었을 터이다. 민우회 활동가들이 모임을 함께 한 재미있고 귀여운 소회 정도였을 텐데…. 하지만 내게 그림을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처음 모임을 제안한 건 미디어팀 활동가 여경이었다. 〈데일리 드로잉: 낙서를 꾸준히〉(이하 낙꾸모임)은 100일간 하루에 한 점씩 꾸준히 그리고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사부작사부작 모이다 보니 금세 6명이 모였다. 노새, 베리, 바람, 여경, 행크와 함께 낙꾸모임을 시작했다. 모두가 그랬듯이 연초는 집회와 집회와 집회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 낙꾸모임에 올릴 그림을 그리면서, 그나마 일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림이 숙제처럼 느껴지는 날도 당연히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그림에서 공감되거나 궁금한 포인트가 생기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구의 그림이 더 멋지다거나 뛰어나다는 평가에 기반한 이야기는 없다. 내 그림이 다른 사람의 그림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림이 가진 각각의 이야기가 더 소중했다. 동그라미에 선 하나만 그어서 사과를 그려 낸 동료는 그날 유독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던 하루였고, 추억의 사진을 꺼내 그린 동료는 그날 잠시 과거 여행을 다녀왔고, 과자 봉지에 그려진 캐릭터를 따라 그린 동료는 바쁜 하루 중 제법 맛난 간식 시간을 가졌다는 걸 상상할 수 있었다. 지독하게 힘들었던 하루도 그림을 그리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간 그날의 장면들을 다른 마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사회는 남들보다 뛰어날 것을, 그렇지 못하다면 체념할 것을, 무능하다면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경전처럼 속삭인다. 그러나 나는 낙꾸모임을 통해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부디 그가 멋진 하루를 보냈기를 바라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고. 그게 내가 살면서 하게 될 수많은 일 중 하나일 거라고.


(▲ 이미지: 5월 10일 진행된 페미대행진의 한 장면.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쓴 여성들이 현수막의 여기저기를 잡고 당기며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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